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억만장자 기업인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훗날 상응하는 보답도 기대하기 어려운 불특정 다수를 위해 피땀 흘려 번 돈을 선뜻 투척하는 까닭은 도대체 뭘까?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의 블라다스 그리스케비시우스와 로버트 치알디니, 뉴멕시코대 제프리 밀러 등 심리학자 6명은 트럼프가 밸런타인 데이에 기부를 발표한 사실에 주목했다. 이 날 연인들은 사랑의 선물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심리학자들은 부자가 기부 사실을 시끌벅적하게 선전하는 행동이 인간의 짝짓기 심리와 관련됐을 수도 있다고 전제했다. 인간은 짝짓기에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과도한 선물과 과도한 외모 가꾸기를 한다.
이를테면 '비용이 많이 드는 신호(costly signal)'를 사용하여 상대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선 행위도 비용이 많이 드는 신호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7년 '인성과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월호에 발표된 논문에서 자선은 짝짓기를 위한 과시 행위의 일종으로 진화됐다고 주장하고 '노골적 자선(blatant benevolence)'이라고 명명했다. 노골적 자선은 '경쟁적 이타주의(competitive altruism)'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인간은 가족을 위해, 또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이타적 행동을 하지만 사회적 명성을 얻으려고 남을 돕기도 한다는 것이 경쟁적 이타주의이다.
지난 4일 억만장자 사업가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이끄는 자선사업 운동인 '기부 약속(The Giving Pledge)'은 미국 갑부 40명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경쟁적 이타주의 심리를 자극하면 갑부들의 기부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선 행위는 돈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기기 쉽다. 궁핍한 생활을 꾸려가는 사회 밑바닥 서민은 남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 폴 피프는 실험을 통해 사회적 신분과 자선 심리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사회적 지위와 타인에 대한 배려는 반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신분이 낮을수록 남에게 더 많이 베풀었다는 뜻이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기부에 대해 더 적극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상류사회 부자는 수입의 2.1%를 기부할 수 있다고 응답한 반면 하위계층 서민은 5.6%가 적절하다고 했다. '인성과 사회심리학 저널' 온라인판 7월 12일자에 실린 논문에서 남보다 적게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베풀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출처=《마음의 지도》, 조선일보 '이인식의 멋진 과학' 2010년 8월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