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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예술의 구조적 원리

김재홍 「순간을 위하여」 vs 황인찬 「더 많은 것들이 있다」

글  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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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세계를 향한 시인의 시선과 감각의 반응은 대체로 풍경을 통해 들여다볼 때 더욱 다양하고 상이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이때 그려지거나 혹은 쓰이는 풍경은, 시인의 고유한 인식의 틀을 구성하는 동시에 작품 안에서는 예술적 형상화를 지탱하는 구조적 원리로 작동한다. 그 풍경의 내면에는 시간과 공간의 주어진 체계를 받아들이는 시인만의 고유한 문법과 기획이 스며있다. 물론 정서의 움직임이나 그 내력(內力)과 시적 묘사력이 균형을 잃은 경우도 간혹 있지만 시인은 하나의 풍경을 발견해 의미를 조직화하는 일에 자신의 치열함을 다한다. 오늘 읽을 두 편의 시는, 시인이 애초 풍경에 대한 경험과 그 감각적 인상의 상투성에서 벗어나 있는 정도가 작품의 완성도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경험하게 해주는 귀한 시편이 될 것이다.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끝없는 심연으로 쪼그라드는
찢어지고 갈라지고 작아지는 혹은
환각이거나 마비를 넘어서는 고요한

 
“진드기의 삶이 유난히 풍요로워 보이는 그러한 밤"*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알 수 없는 느낄 수 없는 소멸되는 자신을 생각하는
 
무한히 쪼개지는 정신을 위하여
잘게 부서지는 영혼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위하여
휘날리는 바람과 같이 흩어지는 먼지와 같이 연기와 같이 입김과 같이 보이지 않는 볼 수 없는 무수한 쭈글쭈글한 주름과 같이
 
흐느적거리는 다리와 늘어진 팔과 널브러진 몸통을 상상하는
 
무너지는 침몰의 시간을 뒤집는 간절한 순간이 있다면
정신의 순간을 위하여
영혼의 순간을 위하여
 
차라리 나를 버리라 나를 잊으라
말하는 간절한 순간이 있다면
 
-김재홍, 「순간을 위하여」 전문  *질 들뢰즈,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중에서
    
  
김재홍의 작품은 질 들뢰즈의 철학에 기대어 있다. 들뢰즈에게 ‘주름(pli)은 이질적인 힘과 제도, 생각의 체계들이 촘촘하게 맞물려 있는 세상에 대한 은유이며, 잠재성에 대한 비유이다. 이 주름에는 외부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펼쳐질 에너지들이 내장되어 있으며, 이미 지나간 관계의 흔적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펼치고자 하는 주름은 다른 이의 주름과 맞물려있어서 내가 원하는 방향만으로 펼쳐지지 않기 때문에 들뢰즈는 이것을 삶의 복잡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화자는 현실적이거나 감각적인 맥락을 부인하고 배제하는 자리에 자신의 입체적인 심상 공간을 마련한다. “쪼그라"들고, “작아지"고, “찢어지고", “쪼개지"고, “부서지"고, “휘날리고", “흩어지는" 이미지와 뉘앙스의 맥락은 낯설면서도 치열한 풍경으로 그려진다. 이때 독자는 화자가 구사하는 뉘앙스가 어떤 부재의 아우라로부터, 혹은 부재로부터의 탈주를 위해 형성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화자가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가 “말하는 간절한 순간"임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현실적이거나 감각적인 국면의 생략과 함축을 통해 화자는 시적 지각을 입체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정신과 영혼, 환각과 마비를 통해 화자는 의도적으로 현실적 국면을 소거시키고 관념의 배후에 있는 관념의 풍경을 되살린다. 화자는 자신이 감각하는 배후에 있는 부재의 존재, 혹은 정신과 영혼의 “간절한 순간"에 도달하게 되는 실존을 위해, 시 전체를 인식론적 전략으로 밀고 간다. 들뢰즈의 표현처럼 존재의 벼랑에서 생성과 소멸은 하나이다. 현존을 향한 비상의 끝간 곳은 소멸의 미래적 기억일지도 모른다. 생성은 소멸의 흔적을 삼키고 주름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진드기의 삶이 유난히 풍요로워" 보인다는 화자에게 삶은, 논리적 구조가 해체되고 새로운 의미론적 지평 앞에 서기를 원한다. 들뢰즈의 주름처럼, 소멸과 생성이 되풀이되는 단속적 시간, 부재와 현존이 공존하는 불연속 공간에서, 화자는 존재론적 탈주를 통해 새로운 감각적 리듬을 재구조화 하고자 한다.
 
“차라리 나를 버리라 나를 잊으라"는 발언은 그의 갈증이 얼마나 치열하며 심각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화자는 자신과 자신의 시간을 소멸시키면서도 자신의 온전한 의미와 존재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존재의 거리와 의미의 자리가 상실되었음에도, 그저 불가능한 가치를 투사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화자로 분한 시인이 말하는 “말하는 간절한 순간"은 결국 시이며, 자기 존재 증명의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밤도 보았고 지난밤의 폭죽불꽃도 보았고, 그런 기억이 나에게는 있습니다 지금은 까마귀 소리가 들립니다 서울에서는 듣기 힘든 소리군요
 

 

 

 폭죽이 터질 때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뜨거운 물이 바닥에 쏟아져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분명 손을 잡고 있었는데,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벌써 어두운 밤입니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여름에도 다다미는 서늘하군요
 
 나는 지난밤의 축제를 기억합니다 죽은 사람의 차를 타고 식사를 하고 온 것도 기억합니다 축제의 인파 속에서 죽은 사람과 입을 맞췄던 것도
 
 횡단하는 것이군요 횡단이 불가능한 것이군요
 
 밖에서는 외국어가 들려옵니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즐거운 것 같습니다 지난밤의 한국어를 생각하면 슬픔이 찾아옵니다만
 
 실내에는 저 혼자뿐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황인찬,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전문
 
 
일반적으로 집착의 근원은 욕망 자체라기보다는 욕망을 고정하려는 아집에서 비롯된다. ‘나’의 집착은 ‘나의 욕망’ 혹은 ‘나의 기억’을 절대화하고 그럼으로써 ‘주체적 의식’을 강화시킨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나’와 ‘지난밤의 축제’는 ‘나’의 절대성을 고정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오히려 자유롭다. 마지막 연에서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일은 없습니다"라며 자아를 고집하지 않고, 스스로 자아의 욕망과 그 움직임이 고착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시행을 통해 윤동주의  「쉽게 씌여진 시」에 귀속되면서, 화자가 의도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죽은 사람의 차를 타고 식사를 하고 온 것도 기억"하고 “축제의 인파 속에서 죽은 사람과 입을 맞췄던" 것도 기억하고 있는 화자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혹은 삶과 죽음의 ‘사이’는 ‘폭죽불꽃’처럼 생성과 흔적과 소멸의 미래적 기억을 끌어당기는, 완강한 경계의 토포스(topos)이다. 창작자의 주체적 의식과 현실의 경계에서 존재론적인 경계의 사유를 펼쳐온 것은 예술의 오랜 전통이다. 즉 예술가는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발언한 표피적 의미의 틈새를 메우고 그 사이를 스며가는 것이다.
 
황인찬의 위 작품은, 인간 내면과 사물의 표피들이 일으키는 미세한 마찰음을 독자적인 상상력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경계’에 대한 성찰을 심화시킨다. “외국어가 들려옵니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즐거운 것 같습니다 지난밤의 한국어를 생각하면 슬픔이 찾아옵니다". 밤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죽임이다. 밤의 권력은 사물의 윤곽을 흐리게 하고 인간의 감각을 예민하게 한다. 이는 밤이 근원적으로 폭력을 내재하고 있어, 디오니소스적 상상력이 발현되는 파괴와 소멸의 직접적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꽃놀이’는 상실의 또 다른 은유이고, 화자는 이것을 ‘죽음’에 비유한다. “횡단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화자의 깨달음은 죽음에 대한 경계를 인식하게 된다. 느닷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풍경은 ‘폭죽불꽃’과 다르지 않고, 풍경 속의 인물은 “실내에는 저 혼자뿐 아무도 없습니다"라는 비극적, 혹은 존재론적 인식에 가닿게 된다. “실내에는 저 혼자뿐 아무도 없습니다"는 화자의 생을 지탱하고 있는 화자 혼자만의 문장이 된다.
 
 
 
 

 

[입력 : 2019-06-02]   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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