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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메히아와 ‘구원’의 메시지

“그는 무엇을 위해, 누구의 구원을 위해 한국까지 왔는가”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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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헬멧 속에 모자를 또 쓰고 있었다. 머리통이 작은 것인지 모자가 너무 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갸름하고 시커먼 중남미의 얼굴에 눈동자는 유난히 커서 마치 놀란 사슴이거나 공포에 떠는 개구리 같은 인상이었다. 운동선수라기에 너무 마른 몸이었던 탓에 바지를 감은 허리띠도 아랫배에서 엉덩이 쪽으로 오버런 돼 있었다. 그는 정말 말을 탄 듯한 자세로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터널 입구처럼 두 다리를 크게 쩍 벌리고 서서 마치 도끼질을 하겠다는 듯 여차하면 야구공을 부술 것처럼 방망이를 휘둘러댔다.

  

그러니까 그의 인상은 잠실야구장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안타를 치겠다는 다부진 의욕의 눈빛이라기보다 어딘가 겁먹은 듯 초조한 듯 두리번거렸으며, 타격을 위한 상하체의 적절한 준비 각도라기보다 두 손으로 움켜잡은 방망이의 기울기가 여느 야구선수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또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서 자신의 체격과 체형에 맞는 스탠스를 구축하고, 연이어 오랜 훈련 속에서 다져진 최상의 타격 궤적을 끌어내기 위해 연습 스윙을 하는 일련의 준비 과정도 거의 없었다. 그냥 말 탄 자세로 두리번거리며 배트를 어깨 위로 높이 들어올린 채 떡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너무 낯선 모습이어서 오히려 무료한 나의 두 눈을 잡아끌었다. 그날 나는 거실 소파에 반은 앉고 반은 누워서 자는 둥 안 자는 둥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켰으나 맥 풀린 멍한 눈으로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그의 낯선 외양과 생경한 몸짓이 비록 주목되기는 했지만 단지 그것만이라면 나는 굳이 일어나 자세를 바로잡고 화면을 응시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순간 그의 맹랑한 방망이가 휘돌더니 쨍그랑 하고 백구(白球)의 이마빡을 정통으로 거세게 때렸다. 공은 멀리 멀리 날아가 외야 담장 바로 앞까지 희고 굵은 포물선을 그렸다.

  

그의 강력한 타구는 안타깝게도 담장을 넘어가지 못했지만 확실하고 당당한 2루타였다. 잠실야구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파도를 타는 열렬한 응원 속에서 베이스를 밟고 선 그의 두 다리는 떨리는 듯했다. 장타를 친 선수들의 그 흔한 만세 동작도 없었고 허공에 대고 주먹을 휘두르는 짜릿 짤막한 세리머니도 없었다. 타석에서와 마찬가지로 좌우 수비수들을 살피며 얼굴을 돌리기 바빴다. 그의 큰 눈동자는 거기서도 번뜩이며 왠지 놀란 듯 겁먹은 듯 두려운 듯했다. 그렇게 메히아라는 선수는 그날 밤 흐리멍덩한 나의 내면을 일깨워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그는 당당하게 2루타를 쳤다

  

  
     베이스를 밟고 선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수천 개 눈동자가 일순 그의 몸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파도처럼 술렁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거대한 솥단지가 되어 펄펄 끓다가
     더 작은 체구의 다음 타자가 안타를 칠 수 있을지 의심한다
     (관중석에 앉으면 왜 선수들은 모두 야구공처럼 보일까)

  

     비쩍 마른 붉은 눈의 게바라를 읽고 싶었다
     국경을 뛰어넘는 공화국의 깃발을 보고 싶었지만
     그는 너무 작았고 액정 화면에 잡힌 그의 헬멧에는
     국적 불명의 독수리 이니셜만 코를 벌름거리며 박혀 있었다
     - 졸시, 「메히아」 중에서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야구선수 메히아는 비교적 작은 체구에 가늘고 호리호리한 몸을 가진 선수였다. 작고 검은 얼굴에 여드름인지 피부 질환의 흔적인지 얽은 자국이 선명했다. 안정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그의 외모와 동작과 연이은 행동 탓에 그가 왜 한국까지 와서 야구를 하는지, 경기가 끝나면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그의 가족과 형제들은 어떻게 사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중앙아메리카의 온화한 기후 속에서 나고 자란 그가 시즌을 앞두고 한겨울 인천국제공항 청사를 빠져 나올 때 느꼈을 맹렬한 추위와 거대 도시 서울에서 겪었을 싸늘한 풍경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등단작 「메히아」는 그가 ‘무엇을 위해, 누구의 구원을 위해 한국까지 온 것인가.’를 생각한 시편이다. 그날 잠실구장에서 ‘확실하고 당당한’ 2루타를 치고서도 왠지 놀란 듯 겁먹은 듯 두려운 듯 했던 메히아에 대한 짐작과 유추와 어림의 결과가 「메히아」인 것이다. 물론 출발 지점은 메히아와 메시아라는 유비적 언어 감각이다. 그는 대체 누구의 구원을 위하여 이 먼 나라까지 오직 ‘메히아’란 이름으로 온 것인가. 구원을 위하여 온 자는 어찌 하여 저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인가. 안타를 치고서도 연신 얼굴을 돌리며 두리번거리는 저 행동은 무슨 신호일까.

  

메히아를 통해 메시아적 구원을 유비한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쿠바혁명의 영웅이자 남미의 ‘전사 그리스도’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를 연상한 것도 사실이다. 아르헨티나의 엘리트 의사로서 현실의 안락과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39세의 젊은 나이에 죽어간 게바라의 삶의 궤적은 남미는 물론 유럽의 청년들에게까지 환호의 대상이었다. 게바라의 신념이 정당했느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그는 그의 신념에 목숨을 걸었고, 그 진실성에 많은 청년들은 지지를 보내었다. 그렇다면 메히아의 두려움 혹은 낯섦도 ‘안락과 권력’을 추구한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신념을 지향한 것이어야 했다.

  

  

     중남미의 어느 공화국 시민인 그는
     동란과 쿠데타를 딛고선 아시아의 작은
     공화 정부의 취업비자를 받아
     뜨끈뜨끈한 잠실야구장 타석에 섰다
     (왜 중남미 선수들은 교범에도 없는 말타기 자세를 하는지 몰라)

     

     메시아가 어디 사는 지도 모르면서
     검게 붉게 얽은 얼굴을 하고 그는 처음에
     야구공과 방망이를 손난로처럼 품고
     한겨울 국제공항 청사를 두리번거리며 어슬렁거리며 나왔을 것이다
     (머리통이 얼마나 작으면 헬멧 속에 모자를 또 썼을까)
     - 졸시, 「메히아」 중에서

  

  

그러나 메히아가 그 이름으로 하여 누구를 구원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중남미 출신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걸고 공산주의 혁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듯 오직 자신과 가족을 위해 머나먼 한국에서 안타를 치고 홈런을 친다면 그것으로 족한 일이다. 그를 통해 메시아를 떠올리고, 체 게바라와 같은 이념적 투쟁성을 유비한 것은 어쩌면 나의 과도한 자의성이었다. 야구선수 메히아는 차라리 자신의 ‘안락과 권력’을 추구함으로써 진정한 구원의 신호를 보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정당하다.

  

스포츠 기자도 아니고 프로야구단의 프런트도 아닌 나는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영상과 중계진이 제공하는 정보 이상으로 메히아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그가 ‘무엇을 위해, 누구의 구원을 위해 한국까지 온 것인가.’는 끝내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한 사람의 문청을 시인으로, 한 명의 실패자에게 다시 살 생명을 준 것은 명백하다. 그날 그의 경기를 보면서 사실대로 기록한 작품 「메히아」는 그해 모 일간지의 문학상 공모에 당선되었고, 그것으로 나는 자부심 하나로 먹고사는 시인이 되어 다시 힘차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메히아의 참다운 ‘구원’의 메시지였다.

  

   

     나는 아내와 자식에게
     그 어떠한 물질적 부와 명예도
     남겨 놓지 않았으며
     또한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것을 행복으로 여깁니다
     - 체 게바라, 「행복」 전문

  

  

  

[입력 : 2019-08-08]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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