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며 ‘항서 매직’을 완성한 박항서 감독은 이제 베트남에서 ‘기적(miracle)’ 그 자체가 됐다.
12월 15일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1대0으로 이겨 10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자 베트남 현지는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기적의 중심에 박항서 감독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번 축구경기를 통해 우리 스스로의 잠재력을 깨닫기 시작했다" “단결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1억 베트남인들이 애국심으로 뭉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역시 박항서 감독이 우뚝 서 있다.
박 감독은 16일 현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사랑과 격려로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며 공(功)을 베트남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스즈키컵 우승은 지도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지만 이제는 지나간 일"이라며 “우리는 오는 20일부터 곧장 아시안컵 준비를 시작한다. 우승의 기쁨을 누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우승 다음날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박항서 감독의 말에 취재진도 놀랐다. 박 감독의 머릿속에는 벌써 내년 1월 UAE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으로 가득 찼다.
“아시안게임과 스즈키컵을 치르며 3-4-3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의 전술이 상당 부분 노출됐다고 느낍니다. 체격적인 경쟁력이 떨어지는 수비진의 경우 민첩하고 영리한 미드필드진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변화의 핵심은 선수들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는 겁니다."
박 감독은 “매 경기마다 똑 같은 전략·전술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스즈키컵에서 ‘공격적 3백’으로 우승을 차지한 박 감독은 다음 대회에서는 다른 전술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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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은 “매 경기마다 똑 같은 전략·전술은 통하지 않는다"며 내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새로운 전략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사진=KFA |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인기를 끌고 존경까지 받는 데는 단지 베트남 축구팀의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지도자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훌륭한 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파파(아빠) 리더십’이 바로 그것이다. 박 감독은 선수를 대할 때, 아버지가 자식을 대하듯 또는 할아버지가 손주를 대하듯 한다. 그 따듯한 ‘사랑’에 개성 강한 젊은 베트남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고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다. 좋은 성적은 자연 따라오게 마련.
박 감독은 이번 스즈키컵 우승 축하금으로 받은 10만 달러(한화 1억1400여만원)를 베트남 축구 발전과 불우이웃을 위해 내놓았다.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베트남에서는 더욱 큰 금액이다. 박 감독에게 축하금을 건넨 쪽은 베트남 자동차업체 ‘타코그룹’이었다. 이 그룹은 베트남 축구대표팀에게는 20억 동(약 1억원)을 전달했다.
축하금 전달식에는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도 함께했다. 푹 총리는 “어젯밤 온 나라가 베트남 국기로 뒤덮였고 감동이 넘쳤다. 최선을 다해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박 감독과 선수들에게 감사하다"고 격려했다.
한편 지난 3월 베트남을 공식 방문해 박 감독과 베트남팀을 만났던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박 감독님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2018 아세안축구연맹 대회(스즈키 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크게 축하한다"며 “어제 결승전에서 베트남 관중들이 베트남 국기와 태극기를 함께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축구를 통해 양국이 더욱 가까운 친구가 되었음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 3월 베트남 국빈방문 때 훈련장에서 만난 박 감독님과 베트남 선수들이 이룩한 쾌거여서 더욱 뜻깊다. 앞으로도 멋진 모습 보여주기 바란다"면서 “베트남과 한국이 각별한 우정을 다지며 밝은 공생번영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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