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영학에서 생물학을 융합하는 연구가 성과를 거두고 있다. 3월 초 미국 경영학 교수 스콧 쉐인이 펴낸 '타고난 기업가, 타고난 지도자(Born Entrepreneurs, Born Leaders)'는 행동유전학을 경영학에 접목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부제가 '당신의 유전자는 당신의 직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인 것처럼 유전과 직업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분석에 활용된 방법은 쌍둥이 연구(twin study)이다. 행동유전학의 핵심 기법인 쌍둥이 연구는 유전자 전부를 공유한 일란성 쌍둥이와 유전자의 절반을 공유한 이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유전자가 특정 형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요컨대 쌍둥이 연구는 유전과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탐색한다.
쌍둥이 연구는 국립싱가포르대 비즈니스스쿨(경영대학원)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9월 25일자에 따르면 기업가나 지도자가 어느 정도 자질을 타고나며 얼마만큼 후천적으로 길러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 1285쌍, 이란성 쌍둥이 849쌍을 연구했다. 싱가포르대 비즈니스스쿨는 분자생물학과 신경과학을 경영학에 융합하는 시도를 하여 눈길을 끌었다. 경영학자에게 세포를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이나 뇌를 탐구하는 신경과학은 이질적인 분야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유전자가 행동에 미치는 한 가지 형태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이므로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연구했다. 신경전달물질은 신경세포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이다. 도파민은 뇌의 쾌감 중추에서 기쁨과 행복을 불러일으키고, 세로토닌은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물론 신경전달물질 말고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호르몬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영학자들이 내분비학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호르몬 중에서도 테스토스테론이 가장 많이 연구된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기업가의 행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창의성, 위험을 감수하는 능력, 새로운 사업에의 도전 정신 등 기업가의 중요한 기본 자질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 밝혀졌다.
경영학에서 행동유전학·분자생물학·신경과학·내분비학처럼 언뜻 동떨어져 보이는 과학 분야와 지식 융합을 시도하는 목적은 가령 직업 만족도나 경영 능력이 유전적 요인에 의해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지 파악하는 데 있다. 만일 최고경영자의 자질이 상당 부분 타고나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설픈 사람을 공들여 키우는 것보다는 될성부른 재목을 고르는 편이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올 법하다. 출처=조선일보 '이인식의 멋진 과학' 2010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