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역대급으로 돈이 풀려났지만 제대로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 속에서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소비와 투자 심리가 잔뜩 움츠러든 영향이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돈이 얼마나 잘 도는지를 보여주는 통화승수는 올해 1분기 15.3배로 역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2017년 1분기 16.4배에서 지난해 1분기 15.7배로 떨어진 뒤 한동안 정체됐다가 올들어 다시 하락 속도가 가팔라진 것이다.
통화승수는 시중에 풀린 통화량인 광의통화(M2)를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현금통화인 본원통화로 나눈 값이다. 한은이 본원통화 1원을 시중에 풀었을 때 투자 등을 통해 창출되는 통화량을 나타내는 것으로 수치가 낮을 수록 돈이 잘 돌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금회전율도 뚝 떨어졌다. 1분기 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18.4회로 전분기(19.2회)보다 상당폭 낮아졌다. 예금회전율은 예금 인출액을 예금 잔액으로 나눈 것으로 금융위기 이후 대체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최근 그 폭이 커졌다. 회전율이 낮다는건 예금 인출이 덜 일어났다는 것으로 은행에 그만큼 돈이 묶여있다는 얘기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고,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한 정부의 막대한 재정 투입 등으로 시중에 풀린 돈이 불어나고 있지만 실물 경제에 제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불안한 경제 상황에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현금 보유를 늘리고 있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시중에 맴돌고 있는 단기 부동자금은 올해 1분기말 기준 1100조원을 돌파한 상황이다. 풀려난 자금이 증시나 부동산 시장 등으로만 흘러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박승호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최근 '통화승수 하락 원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고령화 추세와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 코로나19 등 불확실성 확대로 민간의 현금 보유가 늘어나면서 신용창출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며 "통화정책 효과에 대한 모니터링과 경제 주체별 금융 여건을 고려한 정책 효과 제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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