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유지에 따라 다부동 전투 등 8대 격전지의 흙이 백 장군 유해와 함께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것이라고 조선일보가 7월 14일자 지면을 통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백선엽 장군 장의위원회 소식통은 "백 장군님은 생전에 6·25전쟁 중 잃은 전우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다"며 "전우들과 함께한다는 취지에서 15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리는 안장식 때 8대 격전지의 흙을 함께 매장하는 행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장식에서는 다부동 전투 참전 노병 4명과 육군 및 카투사 대표 4명 등 8명이 백 장군의 관 위에 격전지에서 떠온 흙을 뿌릴 예정이다.
백선엽 장군은 지난해 말 몸이 불편한 상태임에도 다부동을 비롯, 문산 파평산, 파주 봉일천, 화천 소토고미, 안성 입장초교 등 8대 격전지의 지도를 직접 그리며 흙을 떠 올 곳을 전쟁기념관 관계자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쟁기념관 관계자가 세 차례에 걸쳐 해당 지역을 방문해 흙을 떠 온 것으로 전해졌다
1950년 북한군의 8월 공세를 막아낸 1사단의 다부동 전투는 스파르타의 300용사가 마케도니아 해안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막다가 전원 옥쇄한 전사(戰史)와 종종 비교된다. 당시 30세의 나이로 1사단을 이끈 백 장군은 후퇴하려는 한국군 병사들을 가로막고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은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고 말했다. 백 장군의 독려에 장병들은 결국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문산 파평산, 파주 봉일천 전투는 6·25전쟁 개전 초기 육군 1사단이 기습남침하는 북한군에 맞서 싸웠던 격전지다. 화천 소토고미는 6·25전쟁 당시 2군단 창설지휘소, 안성 입장초교는 1사단 반격 준비 지역이었다고 한다.
영결식을 하루 앞둔 14일 현재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서울 광화문광장 시민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분향소 천막이 설치된 세종대왕 동상에서 해치 마당을 지나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출입구에 이르는 200m 구간에는 한 줄에 6명씩 추모 인원이 죽 늘어섰다. 추모를 마친 한 시민은 "헌화를 하는 데 2시간 가까이 기다린 것 같다"고 했다. 이곳 서울 광화문 광장에 백선엽 장군의 시민 분향소를 차린 이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김수현 공동의장이다. 그는 "정부가 (국민장을) 안 하니까 우리라도 대신 영웅을 영웅으로서 예우해 드리고 싶었다"며 "그게 분향소 설치 이유의 전부"라고 말했다.
전대협은 지난 10일 별세한 백 장군의 장례식이 국민장보다 격이 낮은 육군장으로 치러진다는 소식이 11일 발표되자 그날 밤 광화문광장에 '천막 분향소'를 설치했다. 공식 빈소는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지만, 12일 하루에만 1만명이 넘는 시민이 광화문 분향소를 찾았다. 현재 영남대 대학원생인 김 의장은 2018년 말 1980년대 전대협을 풍자해 같은 이름의 '전대협'을 세우고 대학가에 대자보를 붙이는 등 과거 전대협의 운동 방식으로 현 정부 비판 활동을 해왔다.
김 의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역사 교과서, 국내외 정부와 수많은 언론이 예외 없이 백 장군을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으로 평가한다"면서 "그래서 당연히 정부가 그를 국민장으로 예우할 줄 알았는데, 이건 호국 영웅에 대한 예우가 아니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고 봤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우리가 대신 국민장을 해보면 어떨까' 했는데 다들 '콜(좋다)!'이라고 해서 삼삼오오 모이며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대전현충원이 고(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안장지로 사실상 굳어졌지만 장지(葬地)를 둘러싼 논란은 13일에도 계속됐다. 조선일보는 “국방부는 ‘만장(滿葬) 상태인 서울현충원에 백 장군을 모시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과거 국방부 스스로 수차례 예외를 만들었다"면서 “정부가 정권 '코드'와 의지에 따라 '선택적 안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공식적으로 서울현충원은 10여년 전부터 만장 상태"라며 "하지만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채명신 장군 등은 별문제 없이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두 전직 대통령은 국가원수 묘역이 다 찼지만 산을 깎아 자리를 만들었다. 김형기 전 서울현충원장은 "엄밀히 말하면 두 전직 대통령도 모두 대전현충원에 갔어야 했다"고 했다. 2013년 별세한 월남전 영웅 채명신 장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채 장군은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장됐다. 당시 국방부는 만장 상태였던 사병 묘역 맨 앞줄 빈 장소에 채 장군의 묘소를 별도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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