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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의 집들이

“오지 않은 미래까지 모시는 게 진정한 집들이”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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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란, ‘이사한 후에 이웃과 친지를 불러 집을 구경시키고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다. 따라서 집들이는 최소한 한 번 이상의 이사를 의미하고, 이웃과 친지라는 정다운 사람이 있음을 뜻한다. 집들이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된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필연적 양상이자, 한 혈연 공동체의 유대감 확인과 사회 관계망의 비정기적 실태 점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두루마리 화장지와 세탁기용 세제의 소비자 가격 인상률을 파악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집들이는 집의 소유를 지칭하지 않는다. 자기 집만 아니라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도 집들이는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수십 년을 모아야 집 한 채 겨우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월급쟁이 바로 곁에 수십 채의 집을 가진 재력가가 있다. 이사는 소유와 거주의 불일치가 유발한 연쇄 이동이다. 바늘 하나 꽂을 땅이 없다는 사람들은 예나 이제나 넘쳐나고, 월세와 전세와 전월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사도 줄어들지 않는다.

  

집들이는 너나없이 반복되는 이사의 고충을 달래는 위약(僞藥)인지 모른다. 이사는 단지 집을 옮기는 일이 아니며, 단지 학교를 옮기는 일이 아니며, 단지 주소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이사는 생활환경을 일거에 뒤바꾸고, 이웃을 바꾸고 친구를 바꾸고 길을 바꾸고 하늘과 바람을 바꾸는 일이다. 이런 근본적 변화에 수반되는 수많은 스트레스를 달래주고 위로해 주는 게 집들이다. 정다운 이웃과 친지와 서로를 격려하면서 조촐하고 거친 음식일망정 함께 나눠 먹는 집들이는 잠깐이나마 우리를 행복감에 젖게 한다.

  

누가 집들이의 행복감을 플라시보(placebo) 효과라고 부른다면, 그는 이사가 주는 고통의 크기를 제대로 인지한 현실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사는 자발적인 경우보다 부득이한 경우가 많을 것이며, 긍정적 상황보다는 부정적 상황이 많을 것이다. 언제나 이사는 매우 사회학적인 현상이며 경제학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집들이의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 이사를 하지는 않는다.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
     아내가 운다
     반지하 네 평 방을 모두 치우고
     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 눈금을 만질 때 풀석
     습기 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
 
     - 중략 -
 
     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
     어두워지는 한강을 건넌다 (닻을 올리기엔
     주인집 아들의 제대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
     중력을 벗어난 새떼처럼 눈이 날린다
     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
     중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
     덜컹거리는 서랍들이 떠다니고 있다
     - 원동우(1963- ), 「이사」 중에서

  

  

서울시 중랑구 묵동에서 시작한 살림이다. 외삼촌의 보증으로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연립주택 2층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대학원에서 문학이론을 전공하며 입시생에게 국어를 가르치던 남자와 보습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동기 동창 여자의 10년 연애의 종말이자 결혼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묵동에서의 집들이는 학년 MT거나 작은 동창회와 같았다. 누구나 미래를 걱정했지만 아직 청년이었던 우리는 현실의 압력을 하루쯤은 쉽게 잊을 수 있는 나이였다. 소주와 맥주에서 소주와 맥주로 이어진 기나긴 집들이였다.

  

전세 계약 기간이 다 되기도 전에 울산으로 이사를 한 것은 뜻밖에도 취업을 했기 때문이다. 나들이 겸 서울에 들른 한 선배의 권유로 모 지역방송사 신입사원 공채에 응시한 결과였다. 비록 대학원에 몸을 의탁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변치 않는 꿈은 시인이었기에 취업은커녕 학위논문 쓸 생각도 없던 차였다. “되든 안 되든 시험이나 쳐 보라."는 선배의 권유에다 당시만 해도 선망되던 방송사였기에 잠깐 고민하다 바로 하행을 결정했다. 논문제출자격시험을 통과한 대학원도 노량진 입시학원의 고임금도 더는 중요치 않았다. 그래서 울산에서의 첫 집들이는 입사 축하까지 곁들여져 더욱 흥성했다.

  

하지만 그해 연말 국가적인 외환위기로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사태가 촉발되면서 우리 가정에도 일대 파란이 일었다. 직원 1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지역방송사에서 거의 40여 명이 이른바 ‘희망’퇴직을 했으니 내핍 경영을 외치는 회사 방침을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집주인과 그 일당이 서로 연대 보증을 통해 아파트 몇 채로 수십억 원을 편취한 사기 행각을 벌인 사실은 지방검찰청에서 보낸 긴급체포동의서를 받고 알았다. 전셋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채권 순위 상 전세금 회수는커녕 막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을 위기가 찾아왔다.

  

유찰될 게 뻔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로 초래된 고금리를 각오하고 경매에 응찰하여 낙찰을 받았다. 무리한 끝에 집은 가지게 됐으나 그로부터 수년 동안 혹독한 고통이 따랐다. 차라리 노량진 학원가로 돌아가고 싶었고, 차라리 시시한 시업(詩業)로 돌아가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모진 인내의 시간은 흐르고 흘러 다시 집을 옮겨야 하는 순간이 왔다. 회사에서 방송정책 업무를 부과하면서 근무지를 서울로 지정한 때문이다. 지역방송사가 힘을 합쳐 만든 ‘정책연합’이라는 조직이 근무처였다. 그리하여 또 한 번의 집들이가 추가되었다. 이번에는 동창회가 아니라 직장 동료들과의 단합대회와 같았다.

  

그렇게 2년간의 파견 업무 기간이 종료되어 울산으로 복귀하면서 집들이, 지역방송사에서 서울의 모 방송사로 전직하면서 집들이, 서울에서 서울의 다른 집으로 옮기면서 집들이, 그 집에서 경기도 파주로 이사하면서 집들이, 그렇게 일곱 번의 집들이 끝에 ‘운정’(雲井) 일기를 쓰게 되었다. 집들이의 위약 효과로 에너지를 얻으면서 청년은 중년이 되었고,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다가올 장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경험을 따른다면 삶은 불규칙적 이동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이동에 수반되는 간헐적 집들이로 위안을 삼는 게 인생인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집들이는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다. 세파를 겪으며 안으로 굳게 닫히는 마음의 문을 열어 내 영혼에 귀한 사람을 귀하게 모시는 일이다. 집들이를 찾아 온 정다운 이웃과 친지만 아니라 오지 않은 사람까지 귀하게 모시는 일이다. 오지 않은 사람만 모시는 게 아니라 오지 않은 미래까지 모시는 게 진정한 집들이다. 그런 점에서 집들이는 위약이 아니라 행복한 미래를 갈망하는 영원한 바람이다.

  

  

  

[입력 : 2019-07-09]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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