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1. 칼럼
  2. 이인식 칼럼 Review

사람 잡는 텔레비전 폭력물

"미디어 폭력 방지책은 게임을 가까이 할 시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뿐"

글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2005년 미국 앨라배마의 한 경찰서에서 18세 청년이 차량 절도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경찰관의 총을 빼앗아 세 명의 머리에 난사했다. 그는 체포된 뒤 “인생은 비디오 게임 같다"고 외쳤다. 현재 사형수 감방에 앉아 있다.
 
1999년 4월, 미국 리틀턴의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이 12명의 동급생과 교사 한 명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했다. 두 학생은 날마다 몇 시간씩 ‘둠(최후의 심판)’을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둠은 천하무적의 전사가 되어 적을 살해하는 비디오 게임이다. 두 학생은 둠 게임을 흉내 내서 집단학살을 저지른 것이다. 리틀턴 참사는 다섯 시간 동안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도됐다. 사건 이후 수백 건의 모방범죄가 발생했다.
 
두 사건은 미국 청소년들이 전자오락의 폭력문화에 물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텔레비전, 영화,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의 폭력적인 내용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 영국 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미국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텔레비전에서 8000건 이상의 살인과 10만 건의 폭력 장면을 보며 자라난다.
 
이러한 미디어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효과, 이를테면 지적 능력 향상에 기여하고 유익한 학습정보를 제공하는 이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폭력 등 부정적 측면을 이구동성으로 걱정한다.
 
1961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앨버트 밴듀라 교수는 어린이들이 폭력적 행동을 아주 세밀하게 모방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취학 전의 아이들에게 짧은 영화를 보여주었다. 절반에게는 한 남자가 어릿광대를 구타하는 모습을, 나머지 절반에게는 평범한 장면을 관람시켰다. 영화를 본 뒤 인형 등 온갖 종류의 장난감을 갖고 놀도록 했는데, 구타 장면을 본 어린이들은 영화에서처럼 인형을 학대했다.
 
2007년 5월 뉴욕 정신의학연구소의 제프리 존슨은 텔레비전 시청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17년간 뉴욕 북쪽에 거주하는 678 가구를 대상으로 어린 시절의 텔레비전 시청이 학습 능력과 공격적 성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먼저 14세 어린이와 부모를 면접해서 텔레비전 시청 습관, 학교 성적과 품행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이어서 그 어린이가 16세와 22세가 됐을 때 다시 똑같은 면접을 해서 정보를 분석했다.
 
14세의 어린이 77%가 날마다 1~3시간씩 텔레비전을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4시간 이상은 13%, 1시간 미만은 10%였다. 이러한 시청 습관은 16세와 22세에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존슨은 14세에 하루 3시간 이상 텔레비전을 본 학생은 30%가 훗날 주의력 저하 문제가 발생한 반면에, 1시간 미만 학생은 15%만이 그런 문제가 나타나는 것을 밝혀냈다. 또 하루 1시간 미만 시청 학생은 10%가 학교 성적이 나빴지만 3시간 이상 본 학생은 3분의 1 정도가 22살까지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존슨은 14세에 하루 3시간 이상 텔레비전을 가까이 한 청소년이 1시간 미만 시청한 학생보다 다섯 배가량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존슨의 생애를 건 연구는 텔레비전 시청으로 비롯된 집중력 저하가 학교 성적을 떨어뜨릴 수 있음을 밝혀낸 최초의 보고서로 평가된다. 또한 존슨의 연구는 텔레비전의 폭력물이 미국 사회의 폭력 문화를 조장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음을 학문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앨라배마에서 18세 청년에게 피살된 경찰관 가족들은 이 끔찍한 범죄의 책임이 그 젊은이가 즐긴 비디오 게임을 만들거나 판매한 기업체에도 있다고 주장하고, 가령 게임기 제조업체인 소니 컴퓨터 등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들은 법정에서 게임이 그 청년을 살인자로 길들였다고 항의할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게임은 어린이들의 정신을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괴력을 지니고 있다. 아이들을 미디어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최선책은 운동경기나 과외활동에 바빠서 텔레비전과 게임을 가까이 할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뿐이다. 출처=조선일보 '이인식의 멋진 과학' 2007년 6월 16일자

 


 


 

[입력 : 2020-05-27]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more article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Copyright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KAIST 겸직교수, 문화창조아카데미 총감독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과학칼럼니스트 1호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선데이, 매일경제 등 국내 주요언론은 물론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 발행 월간지 PEN에 칼럼을 연재하며 국제적 과학칼럼니스트로 인정받았다. '2035미래기술 미래사회' '융합하면 미래가 보인다' '미래교양사전' 등 수십권의 책을 출간했다.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한국출판문화상, 서울대 자랑스런 전자동문상을 수상했다.
독자댓글
스팸방지 [필수입력] 왼쪽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포토뉴스

Future Society & Special Section

  • 미래희망전략
  • 핫뉴스브리핑
  • 생명이 미래다
  • 정책정보뉴스
  • 지역이 희망이다
  • 미래환경전략
  • 클릭 한 컷
  • 경제산업전략
  • 한반도정세
뉴시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