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1등'을 하면서도 항상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싸워야 한다며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위해 새롭게 출발할 것을 독려했던 이건희 회장.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1995년 베이징 특파원 간담회)"라는 특유의 당당하고 직설적인 촌철살인의 메시지로 삼성뿐 아니라 우리 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했던 이건희 회장.
고인이 6년의 투병끝에 향년 78세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개관사정(蓋棺事定)',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군불견(君不見)'이라는 싯구처럼 모든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관뚜껑을 닫고서야 비로소 정당한 평가가 가능한 것,
이제야말로 고인에 대해서도 지공무사(至公無私), 대공지정(大公至正)한 '포폄(褒貶)'이 필요하고 가능하다.
"산업의 주권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도전을 멈춰서는 안 된다(삼성전자 40년사 발간사)"는 불굴의 도전 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주춧돌을 놓고 4차 산업혁명의 선도국가로 견인한 것,
경영을 맡은 27년 동안 그룹의 매출은 40배, 시가총액은 300배 이상 키웠고,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 개 이상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낸 것,
"한 명의 천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경영'과 협력업체의 수준이 세계 일류일 때 비로소 삼성도 세계 일류가 된다는 신념으로 상생의 경영 문화를 만든 것,
수많은 공익사업을 통해 사회와 함께 하는 기업시민으로서 소외된 이웃에 눈을 돌리고 따뜻한 情과 믿음이 흐르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온 것,
IOC 위원으로 국격을 높였으며 특히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하여 10차례에 걸쳐 170일 동안 지구 5바퀴가 넘는 21만km를 이동하여 민간외교관으로 헌신한 것,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고인의 위대한, 빛나는 업적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는 것, 이는 고인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이자 운명이다.
선대부터 고수한 무노조 경영,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칭 속의 제왕적 경영, 정경유착과 비자금 의혹 등.
고인에 대한 '일부'의 부정적 평가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의 평가에 있어서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경영 환경'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필자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그의 '과(過)' 또한 일부는 '공(功)'으로, 또 일부는 '어쩔 수 없었던 시대 상황'으로 이해한다.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비자금 의혹 등이 지금은 비록 어둠의 역사로 비판받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과 '현재의 결과적 성과'를 보면 보면 이 또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사재를 털어서까지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강력한 리더쉽이 없었다면 어떻게 흑백TV를 만드는 아시아의 작은 기업이 글로벌 ICT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겠는가.
항상 '초일류'라는 하나의 목표하에, 눈은 세계로, 꿈은 미래에 두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던 이건희 회장,
변화의 주도권을 잡고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항상 남보다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봤던 이건희 회장,
필자는 고인이야말로 "경영자는 알아야(知) 하고, 행동해야(行) 하며, 시킬(用) 줄 알아야 하고, 가르칠(訓) 수 있어야 하며, 사람과 일을 평가할(評) 줄도 아는 종합 예술가로서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1995년 아시아미래 국제포럼)"는 그의 신념에 가장 부합하는 위대한 기업가로 평가한다.
마하 속도를 내려면 제트기의 엔진, 기체, 부품을 모두 새로 설계해야 하는 것처럼, 삼성의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이건희 회장,
필자는 고인이야말로 '우리나라를 기술 식민지에서 해방시킨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평가한다.
고인의 영면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 아울러 '이재용호(號)'의 삼성이 내우외환의 위기를 잘 극복하여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선도하는 국민기업으로 계속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