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 비키니 차림이라니 실화 맞아" 터키 여행을 준비하면서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는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로 그 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손수 운전으로 이즈미르에서 파묵칼레까지 4시간 정도 걸리는 여정이었다. 터키는 전국적으로 육송 수단이 잘 발달된 나라이다.
자동차전용도로가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구글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파묵칼레로 향했다.
멀리서부터 설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터키를 여행한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꼽는 바로 그곳이다.
파묵칼레는 35~36도의 따뜻한 지하수가 수천 년 동안 산의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물에 포함되어 있는 석회 성분(미네랄)이 지표면에 퇴적되어 마치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이는 기적 같은 곳이다.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35리라 (약 9000원 )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입구에서부터 신발도 벗어야 한다. 환경오염 때문에 그렇단다.
바닥은 물결무늬로 된 고무판을 걷는 느낌이다. 한참 걷다 보면 발바닥에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땐 양말을 꺼내 신으면 훨씬 편안해진다.
원래 이곳은 온천 지대로 유명했던 곳이다. 로마시대에는 황제들의 휴양지 역할도 했었던 모양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이곳에 머물다 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곳의 온천은 산화칼슘이 풍부해 신경통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랭이 논처럼 생긴 곳이 온천욕을 즐겼다는 석회층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직접 몸을 담그고 온천욕을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뒤에는 발만 담글 수 있게 관리인이 통제하고 있다. 석회층의 온도는 대략 섭씨 35도 정도로 그냥 미지근한 정도의 감촉이 전해진다.
석회층은 하루에도 여러 번 색깔이 변한다. 한낮에는 에메랄드빛을 띄우고 점점 옅어졌다가 저녁 무렵에는 붉은빛으로 다시 변한다.
파묵칼레에는 이제 온천욕을 즐기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비키니 차림에 인생 샷을 찍고 있는 여성들의 놀이터가 된지 오래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파묵칼레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변에 온천 호텔들이 들어서면서 푸르고 흰 온천수는 고갈되고 색깔도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파묵칼레 온천 지대에서 10분 정도 더 가면 숙소와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터키 빵 에크 맥을 치즈를 곁들여 토종꿀에 찍어먹어 보는 것도 또하나의 즐거움이다.
터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두 가지를 즐기고 싶었다. 우선은 터키의 문화유적지를 돌아보고 다음은 휴양 도시를 찾아 나만의 휴식시간을 갖고 싶었다.
터키 관광의 핵심 코스인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에페소 ~파묵칼레를 돌아보고 마지막은 터키 서부 해안 최대의 휴양지인 쿠사다시에서 며칠을 보내기로 했다.
쿠사다시에서 3일간 묵었던 곳이 사진에 보이는 카리스마 드 럭스 호텔이었다. 객실의 창문을 열면 에게해의 에메랄드빛 파도가 밀려오고 저녁이면 에게해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의 모습이 환상적인 곳이었다.
쿠사다시는 크루즈, 요트, 해양스포츠 등이 발달한 도시답게 거리는 관광객들로 하루 종일 북적인다. 내가 선택한 숙소도 크루즈 단체 고객들이 주로 이용하는지 식당을 가보면 유럽의 노부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도 로마시대와 비잔틴 오스만 터키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을 갖고 있다. 시내에는 당시에 세웠다는 성벽과 요새도 남아 있다.
쿠사다시라는 지명은 '새의 머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여름철에는 엄청난 여행객들이 찾아와 숙소를 예약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7~8월은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재충전의 시간만을 갖겠다고 카메라를 호텔에 두고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10분도 지나지 않아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 앞에 휴대폰 촬영을 서둘러야 했다.
속삭이듯 밀려오는 에게해의 파도 소리와 언덕 위에 그림처럼 앉아 있는 화이트 하우스의 정경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이었다.
쿠사다시는 휴양도시답게 낮보다는 밤 풍경이 매력적이다. 어둠이 내리면 에게해를 가로지르는 작은 섬들이 불을 밝히고 거리의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에게해의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사랑과 낭만을 좇는 연인들의 발자국이 모래사장에 어지럽게 찍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어느새 평온의 리듬을 찾게 된다.
나는 이제 여행의 참 맛을 전해준 터키를 떠나 신의 나라 그리스로 떠나기로 했다.
[입력 : 2019-10-26]
김용길 여행작가
Copyright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