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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일본판 ‘쉰들러’ 후세 다쓰지...“살아서도, 죽어서도 민중과 함께”

글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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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정의(正義)의 법들이 상당한 정도 준수되지 않는다면 존속할 수 없고, 서로를 해치려는 행위를 모두가 자제하지 아니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교섭(交涉)도 생길 수 없다."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또 다른 저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담긴 글이다. 스미스는 ‘사회의 정의를 강조하면서 처벌의 적정성과 적합성이 사회의 질서유지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 자주 확인할 때가 있다’고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30여년이 됐으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정의의 법들이 준수되지 않고 서로를 해치려는 행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고향 마을의 울림
 
일찍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일생을 바친 변호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1880~1953). 사람들은 그를 ‘일본의 쉰들러’라고 부른다. 인권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9월 14일 도쿄(東京)역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는 센다이(仙台)행 신칸센 열차를 탔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야마비코(메아리)라는 기차는 이름에 걸맞게 울림과 함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차창 밖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고, 하얀 구름들도 기차와 경주하는 듯 빠르게 흘렀다.
     

필자는 지난 9월 14일 도쿄(東京)역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는 센다이(仙台)행 신칸센 열차를 탔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야마비코(메아리)라는 기차는 이름에 걸맞게 울림과 함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일본의 논과 들판의 모습.

  
도쿄 출발 두 시간 만에 미야기현(宮城縣) 센다이에 도착했다. 센다이 역에 있는 관광센터에서 지도와 안내 팸플릿을 들고서 이시노마키시(石卷市)로 가는 고속버스 승차장에서 줄을 섰다. 버스는 정류장에 1cm도 틀리지 않으려는 듯 온 몸을 틀면서 정차했다. 출발 후 1시간 20분 여 만에 이시노마키 시에 도착했다.
 
이시노마키 시에 내려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생가였다. 생가 터를 알리는 비석도 있었다. 건물 옆 모퉁이에 비집고 서있는 비석의 글씨들이 또렷하지 않았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후세 다쓰지를 현창(顯彰: 개인의 공적이나 선행 등을 기리고 널리 세상에 알림)하는 모임’이 주최하는 ‘비전제(碑前祭)’가 열리는 장소로 갔다. 아케보노 미나미(南) 공원에는 커다란 현창비(顯彰碑)가 근엄하게 서 있었다. 비(碑) 또한 흘러간 세월을 대변하는 듯 고색창연했다.
 
변호사 후세 다쓰지 현창비(辯護士布施辰治顯彰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살아서는 민중과 함께, 죽어서도 민중을 위하여"
 
‘살아서도, 죽어서도, 설움을 받고 있는 민중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 한마디에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철학과 목표가 담겨 있었다.
 
후세 다쓰지를 기리는 사람들
    
“순수하고 자발적인 모임입니다. 지난해부터 이 모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올봄에 ‘후세 다쓰지를 현창하는 모임’으로 결정되어 회원들이 오늘 정식으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현창회의 사무총장 산조 노부유키(三條辛幸·69) 씨의 말이다. 행사가 시작되려면 한 시간 이상 남아 있는데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를 기리는 첫모임. 현창비(顯彰碑) 앞에서 행사가 시작됐다.
 
오후 1시 30분. 변호사 후세 다쓰지 현창비(顯彰碑) 앞에서 행사가 시작됐다. 가을이 가까워졌다고는 해도 아직은 뜨거운 날씨였다. 사회자의 개회 선언에 이어서 마쓰우라 겐타로(松浦健太郞) 회장, 주(駐)센다이 대한민국총영사관 박용민 총영사와 이창훈 부총영사, 미야기현 의회의 사이토 마사미(齊藤正美·65) 의원, 미우라 가즈도시(三浦一敏·69) 의원, 요코타 유시(橫田有史·75) 회장, 친족 대표 등이 소개됐다.
  
 
인사말을 하는 박용민 센다이 총영사
 
주(駐)센다이 박용민(53) 총영사의 인사말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주(駐)센다이 대한민국 총영사 박용민입니다. 2019년도 ‘후세 다쓰지를 현창하는 모임’ 비전제(碑前祭)의 개최를 축하드립니다. 오늘의 비전제를 개최하기 위해 진력 주신 후세 다쓰지를 현창하는 모임의 마쓰우라 겐타로(松浦健太郞) 회장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미야기 현 의회 사이토 의원과 미우라 의원께도 감사드립니다."
 
“세상에는 좋은 것을 말하는 분은 많이 있습니다. 좋은 글을 남긴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말 한대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한 받지 않아도 좋은 핍박을 받아가면서 까지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후세 다 쓰지 변호사를 현창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선 문제는 결코 조선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의 문제이며, 전 인류의 문제이다.’ 그의 말은 제가 좋아하는 영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존 단(John Donne, 1572-1631)의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라는 유명한 시를 연상시킵니다. ‘아무도 고도(孤島)가 아니라 아무도 혼자서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모두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한 조각. 사람의 죽음도 이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떨어진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인류의 일부이니까. 때문에 묻지 말라. 왜냐하면, 나 또한 인류의 일부라서. 그러므로 묻는다.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냐고. 그것은 너를 위해 울린다면."
 
“우리가 후세 변호사를 현창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일본인이거나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아무도 섬이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후세 변호사처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람도 드뭅니다."(계속)

 

 

[입력 : 2019-10-08]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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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30년 넘게 현해탄을 넘나들며 일본인들과 교류하고 있는 홍보컨설팅회사 JSI파트너스의 대표다. 일본비즈니스 전문가로도 정평이 나있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육군 제2훈련소 교관(ROTC11기)으로 군(軍) 복무했다.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대우에서 보냈다. 대우건설 재직시절 철옹성 일본 건설시장의 문을 열었다. 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에 이어 팬택계열 기획홍보실장(전무)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지금의 JSI 파트너스 대표이사로 있다. 일본의 정계·관계·업계·언론계 등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다. 한편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칼럼니스트로 여러 매체에 일본 관련 글을 쓰고 있다. 특히 일본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현장을 직접 보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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