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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종교분쟁보다 이슬람 국교를 포기한 터키의 한 수

글  김용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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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나서자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눈이 부시다.  "어쩜 저렇게 하늘이 파랗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스탄불의 랜드마크인 술탄아흐메드 자미로 향했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슬람 사원이다.  아야소피아(aya Sofya)  성당 맞은편에 있다. 터키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이슬람 사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술탄아흐메드 자미는 크고 작은 돔이 층층이 겹쳐진 우아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오스만 제국의 제14대 술탄인 아흐메드 1세가 1609년에 착공해 1616년에 완공시켰다.
 
그러나 아흐메드 1세는  건물을 완성시킨  1년 후에 세상을 떠난다. 이곳은 이후 술탄의 이름을 딴 마지막 자미로 남았다.
   

 

 

       
아침부터 방문객들의 줄이 길다. 입장료는 없지만 입장하려면 복장 등에 주의해야 한다. 피부가 드러나는 노출이 심한 옷은 피해야 한다.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가려야 한다. 입구에서 여성들에게 파란색 히잡을 대여해 준다.
 
신발을 벗은 채 기다렸다가 입장한다. 외벽은 공사 때문인지 보호막으로 가려 놓았다. 가운데 보이는 작은 돔이 몸을 씻을 수 있는 목욕용 우물이라고 한다.
 

 

 

       
중앙에 위치한 돔은 직경 27.5미터, 높이 43미터의 거대한 크기를 하고 있다. 술탄아흐메드 자미는 블루 모스크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벽과 기둥이 푸른색 이즈니크 타일 2만여 장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내는 수백 명이 동시에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바닥에는 붉은색 양탄자가 깔려 있다.
 
기도 시간이 지나서인지 몇 사람만이 남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평온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이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묵은 때가 씻길 것만 같았다.
    
  


실내는 스테인드 그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푸른색 타일이 어우러져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미 안쪽 중앙에 설치된 미흐랍(Mihrab, 메카 방향을 향해 있는 벽감)에는 메카에서 옮겨온 성스러운 돌이 보관되어 있다. 당대 최고의 서예가가 타일 위에 쓴 코란의 구절도 눈여겨볼 만하다.
 

 

 

       
술탄아흐메드 자미를 둘러보고 맞은편에 있는 아야소피아 박물관으로 향했다. 정식 명칭은 박물관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 그림이나 전시품은 별로 없고 건물 자체가 아름다운 성당이자 이슬람 사원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단체 방문객이 유난히 많았다.

 


 

 

       
아야소피아 성당은 360년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2세 황제 때 세워졌다. 원래는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의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건축됐다. 
 
그러나 이후 두 번의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고 532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5년간의 개축 공사로 현재의 성당이 완공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헌당식에서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솔로몬 신전을 능가하는 성당을 세웠다는 자부심으로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에게 승리했도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아야소피아 성당은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제국에 정복 당한 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된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2세는 이 도시를 정복한 날 성당을 찾아와  "이제부터 그리스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라고 외치면서 모스크로 사용할 것을 선언했다.
 
성당 내부에 있던 십자가는 떼어지고 성당 건물 주위에  이슬람 사원임을 상징하는 네 개의 첨탑(미나레)을 세워 위용을 과시했다.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된 아야소피아 성당은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매주 금요일 예배하러 방문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가장 격식 높은 모스크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1923년 오스만제국이 무너지고 터키공화국이 수립되면서 그리스를 비롯해 유럽 각국이 아야소피아 성당으로의 복원과 반환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된다.
 
1935년 터키 정부는 아야소피아 성당을 인류의 공동 유산인 박물관으로 지정하고 이곳에서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일체의 종교적 행위를 금지시켰다.
 
현재 이곳의 정식 명칭은 '아야소피아( Ayasofya) 박물관'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성당과 이슬람 사원으로 변화를 겪어온 탓에 지금도 수많은 기독교와 이슬람 교인들의 성지 순례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중앙 돔은 직경 31미터, 높이 54미터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돔 아래 걸린 직경 7.5미터 크기의 검은색 원판에는 금색 글씨로 이슬람의 4대 칼리프의 이름을 써넣었다. 
 
현재 이 원판은 이슬람에서 가장 큰 서예 원판이라고 한다.
 

 

 

 
내부의 기둥이나 벽면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할 때 성화를 가리기 위한 회벽과 코란의 문자들로 뒤덮여 있다. 천장의 모자이크화는 추상적이다.
 
상당 부분이 색이 바랬거나 지워져 형체를 살피기가 어렵다. 기둥과 벽면에 사용된 대리석은  무늬와  조화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자연 채광이 되도록 벽면에 커다란 창문들이 나있다.
    

 

            
창문 너머로 철로된 돔과 철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야소피아 성당은 외부 복도와 내부 복도, 본당 1~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한창 보수 공사로 어수선하지만 주요 시설물을 관람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입구 왼쪽 안에 있는 나선형  통로를 지나 2층의 갤러리로 올라가면 빛바랜 모자이크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돔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무늬들도 현란하다. 원래는 성당 자체의 구조적 결함과 세월이 무게 때문에 이미 11세기경부터 버티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고딕 양식의 성당처럼 버팀대를 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2층 갤러리에는 최후의 심판에 임하는 예수와 성모마리아,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 걸려 있다. 아래는 복원시켜 놓은 그림을 걸어 놓았다. 
 
출구 뒤편에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들이 성모마리아에게 콘스탄티노플과 아야소피아 성당을 봉헌하는 모습을 나타낸 모자이크화가 있다.
 

 


 

아야소피아 박물관을 둘러보고 톱카프 궁전으로 향했다.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이때 구슬픈 듯한 남성의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남성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가냘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슬람에서 행하는 하루 다섯 번의 예배를 행하기 전에  기도문을 낭송하는 아잔이라 불리는 일종의 노래라고 한다. 소리가 얼마나 구슬프고 아름다운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톱카프 궁전을 향하는 길목에서 본 아야 소피아 성당의 뒷모습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겹겹이 쌓은 듯한 돔 지붕과 하늘로 치솟은 철탑, 옆의 부속건물의 지붕 곡선이 파란 하늘에 그림처럼 걸쳐 있다.
 
 

 

[입력 : 2019-09-20]   김용길 여행작가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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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 여행작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홍보실을 거쳐 중앙일간지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다. 이후 편집회사 헤드컴을 운영하며 국내 공공기관·기업체 사보 등 2000여권의 홍보물을 편집·제작해왔다. 현재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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