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법과 원칙에 비추어볼 때 지난 8월 29일 선고된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위 판결을 오로지 법과 원칙, 증거와 팩트에 입각한 '법리적 판결'이 아니라 권력과 여론에 좌고우면한 '정치적 판결'로 평가한다. 정의의 여신상처럼 두 눈을 감고 오로지 명징(明徵)한 법리와 법관으로서의 직업적 양심에 의한 '소신 판결'이 아니라 법관 개인의 정치적 이념에 따른 '코드 판결'로 평가한다. 세 가지 쟁점에 대해 살펴본다.
첫째, 삼성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와 관련한 말 세 마리의 소유권 문제다. 다수의견은 “최순실이 윗선에서 삼성이 말을 사주기로 다 결정이 됐는데 왜 삼성 명의로 하냐고 화를 내는 태도를 보인 건 말 소유권을 원했기 때문"으로 보이는 점, 그 뒤 “삼성은 최씨에 대해 말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실질적인 처분권한이 최씨에게 있는 걸 인정했으며 이후 삼성에서는 마필 위탁관리계약서가 작성되지 않고, 자산관리대장에 말이 등재되지도 않았던 점" 등을 근거로 유죄를 인정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최순실이 말의 소유권을 넘겨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 것은 말의 소유권이 삼성에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무엇보다 정유라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가 네 말처럼 타라고 했다"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네 말'이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이 아닌가? 말의 소유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삼성이 다 가지고 있는데 단지 삼성이 비선실세(秘線實勢)인 최순실에 대해 계속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가?
결국 필자는 “최씨가 삼성측으로부터 마필 위탁관리계약서를 작성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화를 낸 것은 삼성 측이 최씨에게 소유권을 명시적으로 확인하려고 한 행동에 대해 화를 낸 것이지 소유권이나 실질적 처분권한을 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막연한 사정들만으로 말의 소유권 또는 실질적 처분권을 이전하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 소수의견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둘째,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의 제3자 뇌물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의 문제다. 이에 대해 다수의견은 “부정한 청탁은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하고, 청탁의 대상인 직무 행위의 내용이 구체적일 필요도 없다"고 전제하며 “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포괄적 권한에 비추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행위 정도면 묵시적 부정 청탁을 인정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반면 소수의견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승계작업에 관한 대통령의 직무집행 내용과 영재센터 지원금이 그 직무집행의 대가라는 점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필자는 개별적·구체적 청탁이 없었지만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과 관련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으므로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다수의견은 한 마디로 '나무는 없는데 숲은 있다'는 주장에 비견할 만한 논리모순으로 본다. 형사법에서 가벌성의 요건과 관련한 모든 문언과 판단은 평균적인 상식을 가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큰 그림으로 대충 유무죄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개별적·구체적으로 범죄의 구성요건과 이에 대한 해당성 여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결국 대법원이 개별적·구체적 청탁이 전혀 없다면서도 막연하게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한 것은 논리와 경험법칙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사실인정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백번 양보해서 가사 말 세 마리의 소유권이 최순실에게 넘어가고, 묵시적 청탁을 하고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했다고 해도 이것이 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직접 뇌물 내지 제3자 뇌물이 되며, 삼성측이 어떻게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경제적 공동체 여부를 알 수 있느냐의 근본 문제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모를 통해 기능적 행위지배를 했기 때문에 무조건 둘 다 뇌물죄가 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즉, 대법원은 공무원과 비공무원이 공모한 이상 뇌물 전체가 비공무원에게 귀속된 경우에도 ‘경제적 공동체’ 여부와 무관하게 ‘직접 수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직접 수뢰죄의 구성요건을 근거 없이 확장하는 것으로 뇌물죄의 체계와 입법취지에 반하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직접 뇌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의 경우 이는 스포츠 공익재단에 대한 지원으로 위 재단이 전적으로 최순실의 개인 소유라는 입증이 부족한데 무조건 제3자 뇌물을 인정한 것도 문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삼성측이 승마지원을 하고 센터에 후원금을 냈다고 해서 이를 과연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다는 인식 내지 의사, 즉 뇌물 공여의 고의가 있었느냐의 문제다. 상식적으로 삼성이 정유라를 박 전 대통령의 딸로 인식하지 않은 이상 승마지원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인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재단의 경우도 이를 전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개인 소유로 보지 않은 이상 뇌물 공여의 의사는 없지 않은가? 결국 대법원은 이 부회장의 입장에서 뇌물 공여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면밀한 법리 검토도 없이 무조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만을 고려하여 뇌물 공여의 고의를 인정한 잘못이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대법원 판결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살펴봤는데, 그럼에도 이미 법리적인 쟁점들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었고, 공은 항소심에 넘어갔다. 항소심에서 양형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누누이 강조하지만 절대 권력이나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법적인 양형요소에 충실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법앞에 누구나 평등한 이상 재벌이라고 해서 부당한 특혜를 받아서도 안 되지만 혹여 국민 일부의 반재벌정서에 편승하여 재벌총수라는 이유만으로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좌파 일부에서는 위 판결을 마치 부당한 사익을 취하려는 정치권력과 부패한 권력에 뇌물을 제공해 현안 해결을 시도한 경제권력이 유착한 '정경유착'의 전형적인 범죄로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견해도 있으나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수시로 대기업 총수들을 소집해 대북 사업, 대일 대책 등에 협력을 요구하거나, 투자·고용 확대를 독려하는 등 정책 협조를 요청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청와대 요청을 받아들이면 ‘묵시적 청탁’을 한 범죄자가 되고, 거부하면 정권에 찍히게 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법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는 이러한 정치논리에 절대 휘둘려서는 안 된다. 진정한 법치는 사법부가 권력이나 광장의 여론 등 유형무형으로 쏟아지는 법정 밖 압력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법과 원칙, 증거에 입각해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법치의 생명은 어떤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잡든, 어떤 검찰이 수사를 하든, 어떤 판사가 재판을 하든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는 동일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국민들의 신뢰다.
“저는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제 실력과 노력으로 더 단단하고 강하고 가치 있게 삼성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제 자신에게 달려있는 일입니다. 제가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도와줘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파기환송전 항소심에서 한 이 부회장 '최후진술'의 핵심이다. 부디 항소심이 권력과 여론의 압력에 두 눈을 감고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자랑스러운 우리 자유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이 한국 경제에 밀어 닥치고 있는 시계제로(視界zero)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