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1. 칼럼

‘보낼 수 없는’ 편지

“뉴욕의 이승재 형께”

글  김재홍 기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형께 편지를 씁니다. 형이 형의 형께 편지를 썼던 것처럼 저도 형께 편지를 씁니다. 형이 형의 형께 갖은 욕설로 비아냥거리며 그 형의 책을 신랄하게 옹호했던 것처럼 저도 형께 편지를 씁니다. 묵은 수단이라고 짜증내지 마십시오. 갈수록 심중에 쌓이는 무거운 돌덩어리를 달리 전할 방법이 없어 그나마 적합하다 싶은 편지라는 형식을 동원한 것뿐입니다. 표절이라고 타박하지도 마십시오. 형식은 표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풍이 상륙한다는 이런 여름밤에는 바람도 비도 형과 같이 우렁차게 밀려옵니다. 형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시고자 하는 영화를 시작하셨나요? 비운의 왕손 이구(李玖, 1931-2008)와 벽안(碧眼)의 여인 줄리아의 사랑 이야기는 아무래도 아직 영화로 만들기 어려운 건가요? 읽던 책들은 다 읽으셨나요? 이도 저도 아니면 거대 도시 뉴욕의 거대한 룸펜이 되었나요? 그렇다면 제가 바라던 대로 된 것입니다. 어쩌면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의 세계처럼 잔혹한 우발성 속에서 룸펜은 진정한 혁명가, 참다운 선구자가 아니겠습니까?

  

형이 한국을 떠나던 날 저는 형을 만나지 못한 채 “형의 건강과 행복과 아름다운 영화를 위하여 / 형의 또 다른 때를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제게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떠나고 사람의 것들도 떠나고 기억도 떠나고 인정도 떠나 버렸었습니다. 이것은 수식도 아니고 수사도 아니고 비유도 아닙니다. 갑작스런 상실 속에서 빈 주머니로 형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으로 저를 더는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형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때 저에게는 한 가지 송별의 수단이 있었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형과의 만남을 기록하는 것이었죠. 그 기억은 제게 매우 강력한 시적 동인(動因)이었기에 그것을 오직 사실대로 적는 것은 영화제작자인 형과의 송별에 매우 어울리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감동적이지도 않았고, 입체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연전에 작품을 담은 시집을 보내드렸으니 이미 형도 아시겠지만, 졸시 「사이」는 송별보다는 ‘사이’에 주목한 시편이었습니다.

  

  

     형,
     말 등에 손을 얹었습니다
     이 말은 2200년 전에는 살아 꿈틀대는 엉덩이를 가졌었습니다
     용갱의 말 엉덩이에 손을 얹고
     형께 문자를 보냅니다
     여기는 부암동,
     부침바위가 아이들 셋을 한번에 점지한 곳입니다
     거북과 해태가 골목에서 빗돌을 지키는 밤
     저는 형의 얼굴과 흰 머리와 어깨를 생각하며
     맨해튼이라든가 롱아일랜드라든가 브룩클린을 떠올립니다
     형은 곧 떠나시지만
     저는 다시 컴컴한 골목에서
     문자를 보내겠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춥고 아이들은
     그래도 애비라고 늦도록 기다립니다
     눈앞의 진실 앞에 진실해지겠습니다
     - 졸시, 「사이」 중에서

  

  

치킨집 ‘사이’는 주인장이 몇 번 바뀌는 속에도 여전히 성업 중입니다. 바싹 튀겨 맛깔스러운 치킨보다 간장 소스를 베이스로 씹는 맛을 극대화한 숙주나물은 ‘사이’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부암동은 ‘자하 손만두’보다는 ‘클럽 에스프레소’와 ‘사이’가 대표선수입니다. 졸시 「사이」는 ‘사이’가 성업 중인 골목 주변에 구체적인 물질성으로 놓여 있는 말과 거북과 해태를 주목한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형을 만나지 못하고 송별하는 처지를 한탄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으나, 적으면서 더욱 담담해져 외려 사실대로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럽습니다. 미비하든 부족하든 형을 만나 형의 앞날을 위해 마음을 보태어야 했습니다. 불비(不備)한 것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넉넉한 것을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어느 모로 보아도 부끄러운 짓을 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코린토2서)라고 했습니다. 형, 어쩌면 그때 제게 진정으로 부족했던 것은 사람도 금전도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와 사유였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금전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시간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오히려 기쁘게 자랑할 줄 아는 사유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야만 형이 뉴욕으로 떠나는 심정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래야만 마음을 다해 형의 ‘또 다른 때’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미국행을 결정한 형에게 필요한 것은 저의 사람과 금전과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1그램도 되지 않는 마음을 다한 기도였을지 모릅니다.

  

형, 밤 깊을수록 더욱 흔들리고 덜컹거리는 마음으로 쓰는 이 편지는 불행히도 형께 보낼 수 없습니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 형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을 것이고, 또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알량한 부끄러움의 고백은 이제 시효를 다했습니다. 그러나 추호라도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언제고 다가올 형과의 만남 때문입니다. 만나는 그날까지 건강히 지내시다 뵙겠습니다.

  

파주 운정(雲井)에서, 여불비(餘不備)~!

  

  

  

[입력 : 2019-07-23]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Copyright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댓글
스팸방지 [필수입력] 왼쪽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포토뉴스

Future Society & Special Section

  • 미래희망전략
  • 핫뉴스브리핑
  • 생명이 미래다
  • 정책정보뉴스
  • 지역이 희망이다
  • 미래환경전략
  • 클릭 한 컷
  • 경제산업전략
  • 한반도정세
뉴시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