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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자의 매우 실용적인 삶

“잉여에서 필요로, 소외에서 주체로 나아가는 길”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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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곧 카메라를 내려놓겠지만 앞으로도 빈손은 아닐 것이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그를 찾더라도 왼손에는 도면이 오른손에는 톱이나 끌이나 대패가 들려 있을 것이다. 귓바퀴에는 연필을 콧잔등에는 돋보기를 건 채 조심스레 장비를 조작하는 그의 눈은 번뜩이고 있을 것이다. 사진=김재홍

그는 카메라감독이었다. 카메라로 대상을 촬영하는 사람을 사진작가라고 한다면 그도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를 사진가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그가 다닌 회사가 방송사였으며, 그 회사에서 명명한 직종이 방송카메라였기 때문이다. 그는 34년 동안 현역 카메라맨으로 드라마와 예능과 다큐멘터리와 각종 교양물을 촬영해 왔다. 그의 눈에 잡힌 영상은 이미 수많은 프로그램이 되어 공중파를 타고 시청자들을 찾아갔다. 그러는 동안 그의 이름이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그가 잡아 낸 영상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자극을 주었다. 카메라맨은 그렇게 카메라 뒤에서 카메라 앞의 사람과 사물을 주목받게 하고 사랑받게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는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다. 순식간에 34년이 지나고 어느덧 갑년(甲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의 회사는 정년퇴직을 앞둔 1년간 ‘안식년’을 보낸다. 그래서 그는 지금 안식(安息) 중이다. 결코 안식이 될 수 없는 안식년을 강제로 맞이해야 하는 건 그의 회사 탓이지만, 그 시간을 진짜 안식의 기회로 삼을지 말지 역시 스스로 정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 실용주의자의 매우 실용적인 ‘안식의 삶’을 살고 있다. 실용적이기 때문에 분주하고 바쁘다. 안식의 삶이기 때문에 땀 흘려도 기쁘고 즐겁다. 그의 공방에서는 오늘도 톱과 대패와 끌이 움직이고, 집진기가 톱밥을 빨아들이고, 각종 장치들과 장비들이 으르렁거리며 작동되고 있다.

  

그는 현역일 때부터 필요한 장치를 구할 수 없으면 아예 만들어 쓴 사람이었다. 촬영과 특수촬영을 넘나들며 그가 고안하고 설계하고 만들어 낸 장비만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 과정을 논문으로 써서 학위도 받았고, 출판을 해서 동료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가령 그는 드론(drone)이 없을 때도 헬리콥터와 같은 거대 장비의 도움 없이 부감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근접 항공 촬영을 가능케 한 많은 장비와 장치가 새로이 등장했지만, 그 이전에도 그는 와이어를 이용하거나 독특한 발상을 통해 그와 같은 영상을 만들었다. 수중 3D 촬영을 고안해 카메라 세트를 직접 제작했고, 곤충의 미시세계를 초접사 3D로 촬영해 내기도 했다. 심지어 트러스와 와이어와 우퍼와 3D 고글을 이용해 ‘4D 체험장’을 설계하고 제작하기도 했다.

  

끝이 없다. 그가 한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끝이 없다. 스쿠버 다이빙과 패러글라이딩과 스카이다이빙처럼 많은 카메라감독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그도 해 왔고, 마치 타임 슬라이스(time slice) 영상처럼 단속적이면서도 연속된 그의 34년간의 방송 카메라감독으로서의 삶은 할 수 없는 것도 가능케 한 생활이었다. 그런 그가 공방을 만들어 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그의 손과 그의 장비를 거쳐 만들어진 크고 작은 공예품들만 아니라, 그런 공작을 가능케 하는 장치와 기구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예가이면서 동시에 ‘공예가의 공예가’이다.

  

그의 공방은 우선 공간 효율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장비 배치가 돋보였다. 물론 그의 설명에 따른 것이지만, 목재를 사용하는 작업 특성상 톱밥과 먼지로 인해 지하의 작업장이 화생방실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비와 집진기를 효과적으로 배치했다고 한다. 또 고가의 국내 장비를 구입한 게 아니라 저렴한 외국 부품을 조달해 기계를 직접 조립했다고 한다. 그런 기계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프로그램을 입력한 단말기를 장착하기도 했고, 큰 장비 사이로 작은 장비들을 배치하고, 작은 장비들 사이로 부품들을 배치하고 수납했다. 그래서 그의 공방은 마치 어떤 기자재 전시장처럼 깨끗하고 단정하다.

  

그는 말했다. “좋은 목재가 있대서 갔는데, 그곳이 톱밥과 먼지로 뒤범벅이 되어 있으면 두말 않고 그냥 돌아왔다."며 목재를 대하는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그 목재 역시 좋을 리 없다고 했다. 나무를 쓰는 사람이 나무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 나무가 품고 있는 고유한 내력이나 특질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나무와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은 애당초 그릇된 일이라는 말이었다. 비록 나무의 생장과 목재화와 가공(加工)의 연결선은 분절되고 욕망화 됐지만, 그렇다고 각 과정을 아무렇게나 다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묘목을 심어 가꾸고 재목이 될 만큼 키워서 자르고 말리고 깎고 다듬어서야 사람 편의 어떤 이로운 물건으로 탄생되는 것이니 분절된 연결선에 관여하는 누구라도 나무에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은퇴를 앞둔 실용주의자의 매우 실용적인 삶은 어느덧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겸허한 윤리학이거나 사람 편의 어떤 인간주의적 방법론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발을 움직여 좋은 목재를 찾아내고 자신의 머리로 작업 계획을 짜고 장비를 준비해서 자신의 손으로 땀 흘려 작업하는 것은 파편화되고 형해화(形骸化)된 인간을 종합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분화와 배치와 재배치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능적 인간을 종합적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잉여에서 필요로 소외에서 주체로 나아가는 길은 김수영(1921-1968)의 말처럼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아가는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나가는 것이다.
     - 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송시열(1607-1689)의 소중화주의가 병자호란의 참상을 극복하기 위한 이념적 구축물이자 노론 집권의 정파적 무기 이상이 아니었던 것처럼 실질과 실용을 포괄하는 전일적 체계가 존중되지 않는다면 국가도 민족도 세계도 다시 한 번 거대한 고통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명(明)은 이미 망했고 중원은 벌써 강력한 청(淸)의 차지인데도 실력도 없이 무기도 없이 이념만으로 싸우다가 죽어 나간 사람이 도대체 얼마인가. 마찬가지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도도한 물결 앞에서도 척화만이 살길이라며 무대책 버티기로 일관한 왕조는 끝내 제국주의자들 앞에 무너졌고 백성들은 길고 긴 시간 말할 수 없이 참혹한 고통을 겪었다.

  

그는 곧 카메라를 내려놓겠지만 앞으로도 빈손은 아닐 것이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그를 찾더라도 왼손에는 도면이 오른손에는 톱이나 끌이나 대패가 들려 있을 것이다. 귓바퀴에는 연필을 콧잔등에는 돋보기를 건 채 조심스레 장비를 조작하는 그의 눈은 번뜩이고 있을 것이다. 이념이 아니라 실상을 좇고,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그의 어깨는 넓고 당당할 것이다.

  

  

  

[입력 : 2019-08-18]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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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트리트저널 문화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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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
  • morzin (2019-08-21) 수정 삭제
    2 0

    역시 뭔가 다른 사람입니다.
    같이합시다.

  • 우훗 (2019-08-18) 수정 삭제
    2 0

    은퇴 후 제2의 삶을 찾으신것 같네요!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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