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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재홍의 길을 찾는 여행

그를 통해 나를 보다

“그의 매우 외향적인 내면 여행”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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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다 한반도의 여름 풍경은 아름다웠다. 고장마다 특색 있는 자연과 사람 이야기가 물씬 풍겼다. 동반자가 없는 여행이니 그의 얼굴을 찍은 사진은 물론 ‘셀카’였고, 같은 휴대전화를 보며 찍으니 표정과 각도는 모두 그만그만 엇비슷했다. 그는 낯선 고장을 돌면서 결국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인지 몰랐다. 사진=김재용

잡범 취급당하며 해고된 뒤 경영진과 회사를 상대로 고통스런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 선배가 느닷없이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보령, 대천, 광주, 목포를 거쳐 부산, 울산, 경주를 구경하고 다시 북상해 포항, 울진, 강릉까지 한반도 남쪽을 모두 순례하는 ‘나 홀로 찜질방 투어’라고 했다. 보내 준 사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새파란 바다와 그 바다를 푸르게 푸르게 추어올리고 있는 금빛 모래사장이 선명한 경계선을 긋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바다는 그 푸르름으로 지구를 상징하며 수십 억 년을 이어져 왔다.

  

“해변 3킬로미터를 걷는 중"이라는 문자에 “명사 7.5리, 빛나는 소요(逍遙)"라고 덕담을 했더니 “명사십리가 아니라, 멍 때리며 생각하는 발병 나기 직전의 7.5리?"라는 탄식이 돌아왔다. 또 “목요일에 강원도 횡성 계곡으로 가요. 애들이 저마다 나가니 이번 가족여행은 아마 함께 어울려 떠나는 거의 마지막이 될 듯해요."라고 약을 올렸더니 “난 혼자 다녀야 할 정도로 버림당하고 있는데요."라며 “찜질방에서 달궈 땡볕을 걸으니 땀이 비오 듯 한다."는 푸념이 쏟아졌다.
  
이튿날에는 선운사 가는 길이라며 사진을 보내왔다. 이번에는 진초록의 눈부신 들녘과 차밭이 날아왔다. 선운사라면 미당 서정주 시인이 나고 묻힌 고창군의 으뜸 명소로 그로 하여 문학적 흥취가 더욱 깊어진 사찰이다. 25년 전 은사님들을 모시고 남도 졸업 여행을 떠났을 때 그 기점이기도 했다. 소주를 두 상자 80병이나 들고 갔는데, 민박집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고작 예닐곱 병밖에 남지 않아 당혹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야구계에서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통하던 김동엽(1938-1997) 전 MBC청룡 감독과의 대결에서 당당히 승리했다는 두주불사 교수님의 혁혁한 전과(戰果)였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습디다.
     - 서정주(1915-2000), 「선운사 동구」 전문
  
  
그 다음에는 광주를 거쳐 목포로 해남으로 여수로, 이어서 부산으로 울산으로 경주로, 포항과 울진과 강릉으로 그는 정말 한반도 남쪽을 순례하면서 틈틈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사진마다 한반도의 여름 풍경은 아름다웠다. 고장마다 특색 있는 자연과 사람 이야기가 물씬 풍겼다. 동반자가 없는 여행이니 그의 얼굴을 찍은 사진은 물론 ‘셀카’였고, 같은 휴대전화를 보며 찍으니 표정과 각도는 모두 그만그만 엇비슷했다. 그는 낯선 고장을 돌면서 결국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인지 몰랐다.
  
회사가 발령한 부서에서 회사가 명한 업무를 회사의 지시에 따라 실행한 그가 해고를 당한 것은 명백히 부당하다. 해고를 하려거든 차라리 솔직했어야 한다. 전 경영진 휘하에서 보직을 맡아 열심히 일한 바로 그것이 죄라며 ‘적폐’로 몰아붙였어야 한다. 언론의 정치적 독립을 외치면서도 뒤로는 정권에 손을 내밀어 자리를 차지한 경영진이 아니라면 정정당당하게 사실대로 말했어야 한다. 그러나 ‘사업체를 차려 수익사업을 시도하려 했다’, ‘특정 연예인을 홍보해 주는 보도를 했다’는 등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오직 의심만으로 그를 두 번이나 해고를 했다. 매우 위중한 ‘잡범’ 취급을 한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어떤 뼈에 사무친 원한이 맺혀 더욱 비열하게, 더욱 큰 고통을 주기 위하여 일부러 그렇게 했을 수 있다. 정치범을 정치범이라 하지 않고 공인 의식도 신념도 없는 삼류 잡범으로 몰아붙인다면 당사자가 받는 고통은 더욱 가혹하고 처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해고한 경영진은 의도한 대로 그에게 더 큰 고통과 모욕을 주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데 법제적 민주주의의 미덕이 있다. 이미 고용노동부 지방노동위원회는 그의 건에 대해 두 번이나 똑같이 ‘부당 해고’ 결정을 내렸다.
  
이제 남은 일은 회사가 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따라 그를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동안 받은 제반 피해를 보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도 알고 나도 안다. 회사는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불복하여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것이다. 거기서도 동일한 결정이 내려지면 다시 소송을 제기해 더욱 길고 지루한 싸움의 고통을 그에게 안겨 줄 것이다. 법원의 1심, 2심, 3심이 진행되는 시간을 회사나 조직이 아닌 개인이 감당하는 것은 실로 고통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짧으면 3, 4년 길면 10년 가까운 긴 시간을 거대 조직을 상대로 개인이 법적 쟁투를 벌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이다. 그런 일을 겪는 사람들이 가끔씩 극단적 길로 내몰리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하반도 남순(南巡)은 매우 외향적인 내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고개 들어 멀리 하늘과 바다를 보면서도 망막에는 내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여행, 저마다 고유한 역사와 전통과 문화와 활력을 가진 지방의 소도시들을 주유하면서도 가슴에는 천만 근 돌덩어리가 짓눌러 앉은 여행.
  
사진 속에서 여행지의 풍경을 배경으로 해맑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통해 내가 보는 것은, 어쩌면 그를 향해 돌진하는 베엘제불(Beelzebul)의 형상인지 모른다.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폭력과 권력의 압제가 악마의 형상이 아니라면, 우리는 더 이상 죄를 반성할 수도 고백할 수도 없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견해차를 해고의 사유로 들먹여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같은 일에 대해 어느 때는 유공사원으로 어느 때는 해고자로 뒤바뀌는 자체가 언론의 정치적 예속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는 지금 지방의 어느 작은 항구에 있을 것이다. 불빛 일렁이는 바다가 보이는 뜨거운 찜질방에서 사이다를 놓고 구운 계란을 까먹고 있을지 모른다. 그에게 달려드는 흉악한 악마의 몰골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일 갈 고장과 내일 잘 찜질방을 검색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한여름 무더위 속 뜨거운 찜질방에서 차디 찬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그럴 만한 역량과 자격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다.
  
그의 뜨거운 내면 여행을 통해 나는 나를 본다. 그가 보내 준 사진에서 그가 응시한 풍경을 보고, 그 앵글에서 그의 내면을 어림해 본다. 그가 왜 남순을 결행했는지, 왜 내륙보다는 해안을 따르기로 한 것인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지만, 그의 내면 풍경을 세밀하게 언어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그의 대강을 통해 나는 나를 본다. 분노도 울분도 탄식도 회한도 아니다. 그 모두다. 뒤죽박죽 뒤섞인 감정의 골짜기, 단언할 수 없는 다층적 심리의 진동, 절망과 의욕과 희망과 상실의 모순적 상황에 빠진 나를 본다.
  
  
  

[입력 : 2019-07-25]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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