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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명론자다

“운명론자는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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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자는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재하는 운명을 겸허히 실천해 나간다. 진정한 운명론자는 충실하고 겸허하다. 오직 그것만이 희망이므로. 사진=김재홍

운명은 천부적이어서 운명이다. 자의성(恣意性)이 제거된 지점에 운명이 있다. 그러므로 운명을 탓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운명은 고요한 밤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같이 또렷하게 빈틈없이 뚜벅뚜벅 육박해 오는 하늘의 율법과 같다. 운명은 한 치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 눈곱만큼의 관용도 인정하지 않는다. 무정하고 냉철한 무표정의 표정을 한 보이지 않는 운명이 보이는 세계를 주관한다. 운명은 주재적(主宰的)이며 일의적이고 절대적이다.

  

나는 운명론자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렇게 살아서’ 나의 운명은 이렇다고 말하는 운명론자다. 나는 ‘나를 이렇게 살게 해서’ 나의 운명은 이렇다고 말하는 운명론자가 아니다. 운명은 귀납적이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총합이 나의 운명이다. 그렇다면 나의 운명은 자의적인가. 나는 나의 의지대로 살아가는가. 아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재하는 것은 운명이다. 나는 이렇게 태어나 저렇게 살다 가지만, 그런 운명을 품부(稟賦)한 사람일 뿐이다.

  

여기에 운명론자의 갈등이 있다. 천부적 운명과 주체적 운명은 모순된다. 형용 모순의 말장난 같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운명의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천부적인 운명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떻게 해도 나의 삶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운명은 연역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표현된 운명은 필연적이다. 나를 통해 나를 이끌어 가는 나의 운명을 나는 믿는다.

  

능동적이니 수동적이니 하는 잣대로 운명론자를 재단할 수 없다. 운명론자는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유물론자와 관념론자가 서로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는 현실주의자일 뿐이다. 한때 나는 천상의 어느 궁전에 살다 무슨 죄를 짓고 졸지에 이 험한 세상 나락에 떨어져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는 더 이상 어느 천상의 불운한 왕자가 아니며, 세상은 처음부터 누구를 위한 게 아니었고, 하늘은 특별히 누구를 귀애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한때 유물론자였다
     분노 가득 찬 열혈 청년이었다
     혈서로 독재에 항거한다거나
     반동의 병영 교육을 거부한다거나
     유력 정치인 사무실을 염병으로 때렸다

    

     - 중략 -

    

     그러나 너무나 실재적인 실재가
     너무나 현실적인 현실이
     세상의 본래적 불평등을
     세상의 본질적 차별을
     두드리며 주무르며 돌아간다는 것을
     세상은 본성적 특권을
     세상은 본능적 특혜를
     꿈꾸며 누리며 굴러간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인정하지 못하는
     나는 관념론자였다
     - 졸시, 「나는 유물론자였다」 중에서

  

   

진정한 운명론자는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일상의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따라서 운명에 맹종하지 않는다. 운명론자는 현실주의자이지 신비주의자가 아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는 명구는 운명에 대한 체념적 수용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표현되는 무한한 가능성의 실재화를 당당하게 인정하라는 전언이다. 때문에 아모르 파티는 ‘신을 사랑하라’(Amor Dei)는 말의 상대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운명의 신격화에 가깝다.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하지도 않지만 저주하지도 않는다.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총합으로서의 내 운명을 담담히 그러나 솔직히 받아들이며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므로 나는 나를 위하여 내 운명을 충실히 따른다. 운명론자는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재하는 운명을 겸허히 실천해 나간다. 진정한 운명론자는 충실하고 겸허하다. 오직 그것만이 희망이므로.

  

불가항력의 세상을 향한 저주의 칼날이 인간에게 있는 바로 그만큼 운명론자에게는 깨끗하게 씻고 닦은 공손한 두 손이 주어져 있다. 운명론자여 손을 들어 기도하라. 운명을 믿으라, 운명을 따르라, 운명을 행하라.

  

  

  

[입력 : 2019-07-11]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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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트리트저널 문화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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