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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2. 김재홍의 길을 찾는 여행

나는 아직 모른다

“왜 시인의 여행은 언제나 ‘길을 찾는’ 여행인지…”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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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랬을 것이다. 참다운 시인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짊어져야 하는 숙명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시의 길을 걸어가라 말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들뻘 후배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시인의 숙명과 시의 본질을 전하는 외에 다른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서정춘 시인(1941- )의 ‘일엽란’(一葉蘭)은 그의 덕담과 함께 내게로 왔다.

    

“새해에도 건강하시어 더 좋은 詩 많이 쓰시기를" 바라는 선생의 마음은 힘겹게 화병을 빠져 나온 한 줄기 난이었다. 꽃은 피웠으나 윤기 없는 한 가닥뿐이다. 화면 왼쪽 위로 가늘게 뻗어 가는 한 줄기는 힘찬 동세라기보다 한 몸 겨우 지탱하고 있는 듯하다. 화병의 테두리 선은 그나마 진하게 그어 강인함과 입체감을 주었지만 난 줄기는 흐린 먹색으로 연약한 느낌까지 준다. 그 화병마저 허리춤에서 주둥이까지 울퉁불퉁 홀쭉하기만 하다.
  
어쩌면 이런 메마르고 외롭고 각박한 데 사는 자가 시인이며, 그 몸에서 가늘게 뻗어 나오는 것이 시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한 줄기에 핀 다섯 송이 꽃은 형형(炯炯)하다. 선생은 꽃송이의 작은 선까지 세밀하고 정확하게 그렸다. 춥고 배고프고 쭈글쭈글한 몸에서 간신히 뻗어 나온 한 줄기 난의 다섯 송이 꽃이야 말로 진정한 시적 본질인지 모른다. 확실히 시는 영광의 궁전에 무늬를 덧대는 예술이 아니라 상처 받은 영혼에 희망을 되새기는 손길이다.
  
그러고 보니 때 묻은 듯 보이는 화병의 다리받침 부분은 '徐廷春솟을合掌'이라는 글씨였다. 한 줄기 난을 뽑아낸 울퉁불퉁 쭈글쭈글한 화병을 받치는 것은 바로 선배인 서정춘 시인 본인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증이라도 하는 듯이 시뻘건 낙관 세 개가 찍혀 있다. 더는 아무 것도 없다. 화면 대부분은 텅 비어 있다. 그렇게 시인은 일엽란처럼 어디에도 의탁하지 않고 혼자서 묵묵히 뻗어가는 존재인지 모른다. 또한 시인은 시인만이 받쳐 주고 지지해 주는 것인지 모른다.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난 김규동 시인(1925-2011)은 1974년 자유실천문입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통일 문제와 노동 문제 등 사회 현실에 깊이 천착한 시편들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1950년대에 박인환, 김경린 등과 ‘후반기’ 동인을 하며 모더니즘적 시세계를 추구한 열혈 청년이었다. 또한 김규동 시인은 후배 문인들의 작품집을 받으면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손수 붓을 들어 주목되는 작품의 한 구절을 적은 다음 축하 인사를 보태어 우편으로 보내줬다.
  
     뱃머리가 묶인 발동선은 원을 그리며
     떠나야 할 거리를 재고 있다
     - 졸시, 「처용암에서」 중에서
  
나의 첫 시집은 2009년 봄에 발간됐으니 김규동 선생은 작고하기 불과 2년 전에 안면도 없는 손주 같은 후배 시인에게 손수 글을 써서 축하를 해 준 것이다. 흔한 휴대전화 문자 한 줄이라도 감지덕지할 것을 화선지에 곱게 써서 보낸 축하 인사는 놀랍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위와 같은 시 구절을 직접 인용했다는 것은 연로한 원로 시인이 시집 한 권을 다 읽었다는 뜻이어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통일이 오면
     할 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 놓아 울고 나서
     흰 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 김규동, 「豆滿江」 중에서
  
어쩌면 김규동 시인에게 ‘발동선’은 얼어붙은 두만강에서 씽씽 썰매를 타는 ‘흰 머리’의 노인일지 모른다. 뱃머리가 묶인 채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둥그런 원만을 그릴 뿐인 작은 배와 같이 실향민들의 처지는 실향의 꼭짓점인 고향을 중심으로 커다란 동그라미만 그리는 신세인지 모른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고향과 자신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정치ㆍ외교적 거리를 어림하는 신세 말이다. 어떻든 노시인의 육필은 철없는 후배 시인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비평가 유종호 선생(1935- )도 만년필로 손수 편지를 써서 보내 주었다. “표제도 독특하고 시상도 독특"하다며 “계속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시편을 보여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등단 무렵 그의 시론서 『시란 무엇인가』를 읽고 크게 감화 받은 시인으로서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백일장이나 쫓아다니며 몇 장 받은 상장과 트로피로 인해 겉멋만 잔뜩 든 불한당이었던 내게 그의 시론은 분명 이정표였다. 그로 인해 비로소 겉멋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시를 대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내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가 나를 통해 세상에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모 월간지에서 밝힌 대로 『시란 무엇인가』는 유연하면서도 분명했고, 넓으면서도 깊었고, 지적이면서도 자상했다. 시를 바라보는 눈은 사랑과 믿음과 경외와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를 이해하는 기술적 맥락과 시를 대하는 자세와 시의 미래를 예감하는 전인격이 그대로 들어 있었던 것이다. 유종호 선생은 “맹목과 겉멋을 간신히 벗어난 한 늦된 시인"에게 “그 빚을 노래로써 갚기 위해 평생을 걸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 평론가다. 그러니 그의 편지는 실로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모른다. 왜 시인은 ‘일엽란처럼 어디에도 의탁하지 않고 혼자서 묵묵히 뻗어가야 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또한 왜 시인은 ‘뱃머리가 묶인 채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둥그런 원만을 그릴 뿐‘인지 모른다. 그리고 또 왜 시인은 ‘그 빚을 노래로써 갚기 위해 평생을 걸겠다는 다짐’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의 여행은 언제나 ‘길을 찾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입력 : 2019-04-25]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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