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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을과 세 개의 ‘ㄹ’

“올바른 정신 ‘얼’, 바르고 고운 ‘글’, 우리가 해야 할 ‘일’”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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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을은 내게도 탈출이자 해방이었다. YMCA 강당에 맨발로 앉아 잘 알지도 못하는 문학이론을 들먹이는 재미가 좋았고, 무엇보다 합법적으로 여학생들과 웃고 떠드는 게 좋았다. 사진=김재홍

시란 표현주의자의 은유의 체계도 아니고 주지주의자의 논리의 체계도 아니다. 시는 언제나 어떤 탈출이자 해방이다. 그런 점에서 시를 찾아 주말마다 서둘러 찾아가던 울산YMCA 회관은 우리에게 분명 탈출이거나 해방이었다. 지방 소도시의 남녀 고등학생에게 아직 시는 그 정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았지만 토요일 수업을 마치자마자 점심도 거른 채 바삐 찾아가던 세리을 집회는 언제나 설레는 푸른 축제와 같았다. 시는 그렇게 세리을을 매개로 우리의 일상을 축제로 탈바꿈시키고, 만성적 우울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세리을은 ‘세 리을’이다. 세 리을은 얼, 글, 일의 받침들이다. ‘얼’은 세리을에 속한 청년 문사(文士)들의 올바른 정신의 줏대를 뜻한다. ‘글’은 발라서 힘 있고, 창조적이어서 고운 작품을 말한다. ‘일’은 그런 줏대 있는 정신으로 고운 작품을 적는 바로 그 행위다. 올바른 정신 얼, 바르고 고운 글, 우리가 해야 할 일, 그렇게 리을이 세 개여서 세리을이다. 80년대 초 출범한 고등학생 문학 동아리 세리을은 그로부터 20년 이상 지속되어 많은 시인과 소설가를 배출했다.

  

그렇다, 세리을은 내게도 탈출이자 해방이었다. 세리을을 통해 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때문이 아니다. 시는 여전히 내게 하나의 추상이었으며 겉멋이었으며 몽상이자 도피였을 뿐이다. 주말마다 찾아가는 그 시내버스의 향기가 좋았고, YMCA 강당에 맨발로 앉아 잘 알지도 못하는 문학이론을 들먹이는 재미가 좋았고, 무엇보다 합법적으로 여학생들과 웃고 떠드는 게 좋았다. 심지어 방학 때면 단체로 1박2일 캠핑을 떠났고, 밥을 지어 먹었고, 백일장을 열었고, 노래를 불렀다. 크리스마스에는 통기타 연주를 배경으로 촛불을 켠 채 감미로운 선물 교환식을 가졌다.

  

그런 청춘의 잡다한 에피소드 사이로 어느 순간 시가 찾아왔다. 역사학과에 가서 민족의 미래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소박한 다짐을 하던 고등학생은 어느새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시에서 기쁨을 얻고 시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비록 그것은 겉멋이었지만 자신의 제1 정체성을 시인으로 확정하는 데 세리을은 근원이 되었다. 그런 세리을은 숫기 없는 한 청년의 진정한 탈출구이자 해방구였다.

  

     길 잃은 포성 몇이 날아온다

     

     더러 들풀처럼 일어서는 바람과
     임진강변 청청한 하늘로
     그 시절 아픔들이 되살아온다.
     - 졸시, 「정거장」 중에서

  

‘정거장’은 이주민의 자산이다. 떠나지 않는 사람은 정거장을 경험하지 못한다. 이 어설픈 작품은 역사학과를 지망했던 어느 소심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시인을 지망하기로 마음먹은 다음 적었다. 이 시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민족 현실을 정거장에 빗대어 표현했고, 1986년 경상남도 학예발표회 고등부 장원 상을 받았다. 겉멋일지언정 이런 작은 성과들은 어린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세리을은 이런 얼치기도 구성원으로 받아줌으로써 위민 사업을 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세리을이 청춘의 열정을 품어 줄 수 있는 몇 가지 장치를 구비하지 못했다면, 아마 시는 나의 탈출구이자 해방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세리을은 우선 학교 밖에도 내가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또 집이 아닌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 주었고, 아주 가끔은 소주를 마실 수 있게 해 주었고, 가족이 아닌 ‘진정한 여자들’을 합법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의 청소년기는 결핍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중학교 때 집을 나간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에야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어머니는 울산의 한 컨테이너 생산 공장 잡역부로 일하며 아들 하나를 위해 자신을 바쳤다. 여동생들도 대학을 포기한 채 부실한 오라비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희생했다. 그렇게 늘 불안하고 곤궁한 나에게 세리을은 얼치기라도 당당한 주체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케 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세리을은 단지 세 개의 리을이 아니다. 얼도 시요, 글도 시요, 일도 시인 한 불민한 시인에게 세리을은 단 하나의 리을이다. 그런 세리을은 언제나 나의 '길을 찾는 여행'의 이정표이자 기준점이다. 시란 얼과 글과 일이 따로 놀아도 되는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여, 어서 오라.

  

[입력 : 2019-04-15]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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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트리트저널 문화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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