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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도 끝난 건 아니다

"쏟아지던 눈발과 맑디맑은 청량한 하늘은 불과 한 시간 시차를 두고 이어졌다"

글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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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곳 예버덩의 최저 기온은 영하 4도였다. 꽃샘추위가 닥쳐 서울 기온도 0도였으니 강원도라면 이 정도는 평년 기온이었다. 강 건너 산언덕 선계 마을 쪽으로 아침 해가 비껴 뜨고 차가워서 외려 맑은 아침이었다. 모처럼 미세먼지니 뭐니 걱정 섞인 기상캐스터들의 예보는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속단 엄금, 끝나도 끝난 건 아니었다. 자연에 무슨 끝이 있으며 한계가 있을까만 아무래도 맑은 날의 판공성사를 운운한 것은 속단이었다. 또 내리는 봄비를 두고 겨울과 봄 사이를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드는 두꺼운 경계선이라고 표현한 것도 지나치게 성급한 태도였다. 3월 하순 들어 이렇게 폭설에 가까운 눈발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눈은 강골바람을 타고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쳐 내렸다.

     

기약한 시간이 다 되어가는 때라 아침부터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한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지만, 눈과 바람이 함께 내지르는 괴성에 가까운 소리는 여간만 자극적인 게 아니었다. 눈바람은 사방으로 소용돌이치다 나뭇가지를 뒤흔들다 나뭇잎을 날리고 창을 때렸다. 어떤 극한의 혼돈과 같았다. 만일 루크레티우스(Lucretius, BC 94?-BC 55?)가 봤다면 분명 클리나멘(clinamen)의 실체화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세차게 내린 눈은 성급한 나의 오판을 매섭게 질타했다. 그러다 한 순간 눈부신 햇살이 눈 위로 내렸다. 쌓인 눈은 햇빛을 다시 반사시켜 세상을 온통 하얗게 빛나게 했다. 만일 천국의 이미지가 있다면 꼭 그럴 것 같은 흰 색이었다. 언제 그랬나 싶게 하늘은 하늘색으로 맑아졌고, 눈은 또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건물 곳곳 처마 같은 데서 녹은 눈은 빗물처럼 뚝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한치 앞을 볼 수 없게 쏟아지던 눈발과 맑디맑은 청량한 하늘은 불과 한 시간 시차를 두고 이어졌다. 그러니 대자연의 운행을 어찌 함부로 판단하랴. 그저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일만이 사람의 몫인 것을. 그런데 운 좋게도 나는 짧은 한두 시간 만에 두 계절과 두 기운을 모두 누릴 수 있었으니 이 또한 행복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봄의 파종을 앞두고 밭에 퇴비를 주던 농부들에게 오늘 같은 눈은 유익한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제설차를 모는 인부들은 한시름 놓았다가 졸지에 바빠졌을 것이다. 고개를 넘어가며 이어진 한적한 지방도로의 가파른 기울기는 그들의 제설 작업을 재촉하고 있을 것이다. 농부든 제설 작업자든 자연의 운행을 예측할 수 있다면 여간 유익하지 않겠지만, 도무지 자연은 자신의 속내를 보여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컴퓨터 모니터에 띄운 원고들과 씨름하던 나만 횡재한 듯 행복감까지 누렸다. 졸지에 내린 눈으로 하여 고된 일상이 더 힘들어진 많은 이웃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눈과 햇빛 사이에서 누린 이런 짧은 기쁨도 어떤 우발적인 창조적 순간의 맛일까.

  

  

   

[입력 : 2019-03-23]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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