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두 번 째 삶입니다. 프랑스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1808-1855)’이 말한 것처럼 우리네 삶의 다채로움과 복잡성을 보여 주고, 우리가 아는 것 같은 사람·물건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터키의 오르한 파묵(Orhan Pamuk·68)이 쓴 <소설과 소설가>라는 책에 담긴 내용이다. 이 책은 그의 하버드대 강연록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는 “이 두 번 째 삶이 우리에게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소설과 현실의 삶에 혼돈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상상의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것은 소설로서의 역할(?)이 미흡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일 듯싶다.
여섯 위인들이 ‘얼큰’의 등 뒤로 왔다. 닥터 왕인이 말했다. 우리는 꺼질게. 그들은 그의 등 안으로 스며들었다. 돌풍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얼큰’은 힘이 넘치는 척추를 곧게 세우고 큰 바위 앞으로 바람을 뚫고 뛰어갔다. 청룡이 그의 뒤를 천천히 따라왔다.
“거인아! 깨어라."
“오! 얼큰! 친애하는 얼큰! 나는 널 잘 알고 있다. 기다렸다. 태곳적부터 너를 보려고 버티며 기다렸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것이 뭐니? 다 들어 줄게."(312-313쪽)
‘얼큰’은 외쳤다. 엄마 배에서 태어날 때처럼 기를 모았다. 청룡리 고인돌이 공중에 떠서 회오리처럼 돌았다. “지혜로 워라." 큰 바위 얼굴이 외쳤다. ‘얼큰’은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뜨거운 가슴, 합리적인 머리, 위풍당당한 배짱, 큰 바위 얼굴이 추임새를 넣었다. 바다건너 제주도의 돌하르방이 눈을 번쩍 떴다.
‘얼큰’은 여덟 개의 구슬을 구정봉 우물에 하나씩 넣었다. 사랑·기쁨·공감·평화·친절·진실·양심 ·희망. 마지막 파워스톤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얼큰’은 그래도 걱정하지 않았다. 여의주가 자기를 찾을 것이므로.
<‘얼큰’의 몸에서 번개가 치고 강력한 전기가 감아 돌았다. 이집트의 돌무덤과 피라미트 장군총이 흔들렸다. 이스라엘 통곡의 벽이 대각선으로 금이 갔다.(315쪽)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322-23쪽).
필자는 타고르(R. Tagore, 1861-1941)의 시(詩)처럼 코리아가 ‘동방의 등불’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작가에게 물었다. 예선영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소설 주인공의 이름을 ‘얼큰’ 이라고 작명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얼이 큰, Grand Soul, 큰 바위 얼굴은 위대한 인물·거인·미래의 인간·초인·신인(神人)·위버멘쉬(Ubermensch)영웅·큰 인물을 상징합니다. ‘얼굴이 크다’는 뜻의 ‘얼큰’이라고 요즈음 재미로 많이 쓰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몸은 기본이고 얼이 큰, 정신이 큰 영웅입니다. 기(氣)가 엄청난 큰 바위 얼굴이 낳고 키운 인물, 세계를 매력적으로 이끌 시원하고 ‘매운 정신’을 가진 인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얼큰’이라는 어감은 김치나 고추장처럼 코로나19도 이길 큰 힘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얼큰’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지금까지 세계를 이끌어왔던 서양·물질·황금·자본 중심에서 동양의 황금률과 ‘홍익(弘益) 사랑’ 정신을 더해 균형을 이룬 세상일 것입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찾아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나답게 주인으로 살 수 있는 세상 말입니다."
?작가님의 경력 중에 ‘삶 꼬시기 전문 예술가’가 있더군요. 어떤 의미입니까?
“나는 산 자다. 우리는 삶이다. 산 인간은 죽으나 사나 다들 삶을 ‘꼬시며’ 산다. 나는 살면서 삶을 매혹적으로 꼬시기 위해 나를 표현한다. 삶이 나의 매력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 진짜가 되기 위해서. 생명과 존재들과 바람이 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 모든 방법을 그림이나 글이나 춤이나 말 등 모든 표현 방법들을 총동원하는 융합형 예술가입니다. ‘이제는 삶이 나를 이끌고 간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따라간다. 그랬더니 진짜가 되었다’는 것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또 다른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
“저렇게 생긴 사람을 만나면 틀림없이 나도 아주 좋아하게 될 거야."
“옛날 예언이 정말로 들어맞는다면, 언젠가는 똑같은 분을 만나게 되겠지."
너대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54)의 소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김병철 옮김)에서 어니스트(Ernest)와 그의 어머니가 나눈 대화다.
<어니스트의 이마를 장식하는 백발과도 같은 흰 저녁안개가 그의 얼굴에 길게 끼어 있었다. 깊은 자애로 가득한 표정은 세상 모두를 가슴에 안고 있는 것 같았다. 자애로 넘친 그 표정을 보고 시인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외쳤다.>
“보라! 어니스트야말로 큰 바위 얼굴을 빼닮았다!"
<사람들은 모두가 눈을 들어 통찰력을 지닌 시인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예언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자 시인의 팔을 잡고 조용히 돌아갔다. 그는 자신보다 현명하고 훌륭한 인간, 큰 바위 얼굴과 빼닮은 인간이 앞으로 틀림없이 나타나기를 여전히 기다렸다.>
시인이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치켜세워도 어니스트(Earnegt)는 ‘자신보다 더 현명하고 더 훌륭한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겸손해 한다.
우리에게도 정직하고 올곧으며, 근면하면서 자비로운 성격을 지닌 어니스트 같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큰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본다. 이는, 필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염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