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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의 두 필연성

하린 「투명」 vs 심상옥 「봄이 되니 알겠다」

글  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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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예술적 긴장 속에서 우리 현실에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 현실과 상상이 대립되고 일치되면서 더 크고 넓은 세계로 진전하여 나가는 것이다. 2017년 덕수궁미술관에서 개최된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전시회 작품. 사진=뉴시스DB

지난 글에서 필자는 시가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자기 이월적 욕망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즉 현실 세계의 갈등과 모순은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필연성과 있어야 할 당위적 필연성에 의해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두 필연성은 각각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것들이 서로 부딪쳐 다른 그 무엇으로 지양될 때, 시는 예술의 초월적 계기와 자기 지양의 계기를 획득한다. 작품 안에서의 현실 역시 온전한 상태의 것이 아니라 고쳐져야 할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는 예술적 긴장 속에서 우리 현실에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 현실과 상상이 대립되고 일치되면서 더 크고 넓은 세계로 진전하여 나가는 것이다. 오늘 살펴볼 두 편의 작품은 이러한 관점에 주의하여 골라보았다.
  
 
인공눈물을 화분 속에 떨어뜨리고
싹트길 기다려 볼까요
개밥바라기별을 처음 사랑한 사람이 나였으면 하고
서쪽 하늘이 무표정을 버릴 때까지 우는 시늉을 해볼까요
혼자 밥을 먹는데 익숙한 허무를 위해
D-day를 표시하며 하루에 세 번 웃어볼까요
바짝 마른 그리움을 풀어 국을 끓이고
숨이 적당히 죽은 외로움을 나물로 무쳐내고
꼬들꼬들한 고독을 적당히 볶아 식탁을 구성해 볼까요
빈 의자와 겸상해볼까요
자, 이제 주말연속극이 시작됩니다
고지식한 시어머니나 파렴치한 악처를 옹호해볼까요
두 사람이 짧은 식사를 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긴 식사를 하는 것이
더 낭만적이라고 다짐해볼까요
입맛을 다시거나 잃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독백을 방백처럼 늘어놓으며
접시를 지속으로 더렵혀 볼까요
다리를 떨면서 신문을 봐도
먹기를 멈춘 채 눈물을 흘려도
잔소리할 사람 없습니다
시계를 보며 과장되게 늦은 척을 해 볼까요
예감이나 확신을 믿지 않게 해준 당신
공백은 있어도 여백을 찾을 수 없게 만든 당신
오늘 차려놓은 투명한 기척, 눈물 나게 웃으며 먹어볼까요
- 하린, 「투명」 전문
 
  
작품에서 시인은 인간관계를 통한 마음의 상처와 그 상처에 대한 예민한 반응을 감추지 않는다. 타자에 대한 절망이나 자신에 대한 비애와 같은 감정의 여지도 숨기지 않는다. “혼자 밥을 먹는데 익숙한 허무"와 “숨이 적당히 죽은 외로움" “꼬들꼬들한 고독" 등의 표현을 통해 화자는 훼손된 인간관계를 그려낸다. 이 훼손은 정상적 관계에서 벗어난 것으로 작품 안에서 일정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자기연민에서 시작해서 자기반성, 어설픈 자학으로 이어져 자아의 동요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원래 시적 자아란 경험적 일상적 자아와 구별되는 것으로, 평범한 일상인인 화자가 시를 통해 특정한 감정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때 시인이 선택한 대상으로서의 사물이 경험계 안에서 형상을 벗고 시적 상징에 의해 다른 형상으로 태어나는 과정 자체가 시가 되며, 하린의 경우 위축된 자아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부각된다. 이때 우리가 관심을 기울어야 할 부분은 경험적 자아에서 시적 자아에 이르는 회로에 있는,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사물인 ‘빈 의자’다. 경험적 자아는 시적 대상이 된 ‘빈 의자’를 매개로 하여 시적 자아로 건너간다. 화자와 사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서 이루어가는 공간이 바로 진실로 연결되는, 하나의 정서적 통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더 낭만적이라고 다짐해볼까요/입맛을 다시거나 잃어갈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화자를 통해 시인은, 이성에 의탁하지 않고 고독을 받아들이면서 실존으로 살아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실존을 오래 오래 새겨 새로운 형상으로 탄생시킨다. 하린은 ‘당신’을 통해 부재를 실존으로, 삶의 한 증거로 밀고 나가면서 시적 형상을 얻는데, 이때 실존적인 것은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특이한 것이 된다. 그러나 고독한 내면을 표현하는 시적 방식에는 결코 고립되고 폐쇄된 자아의 심정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심리적 배경을 유발한 사회적 맥락이 행간에 녹아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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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종범·뉴시스DB

 
봄이 되니 알겠다
소나무는 왜 늘 푸른지
물은 왜 아래로만 내려가는지.   

왜 너는
내가 나에게 이르름이 이름이라는 말에
고개를 떨구는지.
봄이 되니 알겠다
나무는 왜 바람이 흔들어도
흔들리면서 그 자리에 서 있는지.
우리는 왜
물음은 많고 대답은 가난한지
그런데 너는 왜
달빛에 마음 내다걸고*
화들짝 놀라는지.
세상에는
무엇도 단순한 게 없다고
끓다 끓다 터지는 화산처럼
그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때문이지.
봄이 되니 알겠다
- 심상옥, 「봄이 되니 알겠다」 전문
 
  
작품 속 화자는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허무를 느낀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 어느 순간 자기 앞에 놓인 삶의 한 지점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적어도 자기가 살아온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순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허무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것과 대결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정열을 쏟아 붓기도 한다. 심상옥이 그렇다. 일상적 삶은 대부분 순간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헛되고 과장된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화자는 삶의 허상에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자기 존재가 지닐 수 있는 허구성에 대해 의심을 한다. 
 
“봄이 되니 알겠다"라는 시행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면서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가 도달한 깨달음은 삶에 있어서 시간의 불가역성일지도 모른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지만, 시는 덧없고 불가역한 삶이 영원히 잊혀지는 것을 바라만 보지도 않는다. 그것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이고 전통적인 의미의 현실적 모험이 없고 서사의 선명성도 없어 보이지만 정신의 모험, 삶의 한복판에서 맞부딪친 존재에 대한 물음은 비극적인 인간 조건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루한 일상적 삶에서 존재적 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건이나 모험 없이 갑자기 찾아온 ’시적 순간‘에 시인은 스스로를 소외했던 자신의 삶에서 자기 삶에 간섭했던 폭력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다.
  
심상옥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내성(內省)의 시다. 삶의 흐트러진 질서 속에서 시 쓰기는 기쁨보다 고통에 가깝고 어느 순간 삶이 홀연해지기를 욕망한다. 이때 시인은 세속적 안식 안에 안주하지 못하며 이런 안식을 거부하는 자의 이름이 된다. 내성의 시는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자칫 추상적 관념에 머물기 쉽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징후를 거둬내면서 정신과의 가혹한 싸움에서 일정한 거리를 확보한다. ‘봄’이라는 시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봄’을 시적 필터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인식과 깨달음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나간다. 
 
 

 

[입력 : 2019-08-11]   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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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71년에 광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징검돌이 별자리처럼 빛날 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달 안을 걷다』, 『밤새 이상을 읽다』 가 있으며,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詩) 전문 계간지 '시인수첩'주간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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