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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초월의 욕망

조용미 「영역」 vs 조은길 「직립을 소원하다」

글  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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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갈등과 모순, 혹은 내면의 존재적 갈등과 모순은,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필연성과 있어야 할 당위적 필연성에 의해 형성된다. 심연희의 작품 '휴'. 예당저수지에 잠겨 있는 버드나무. 사진=Zone5 흑백사진연구회

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단순히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자기 이월적 특성을 전제로 한다. 독자들이 시를 읽는 이유에도 이러한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갈등과 모순이 혼재된 현실은 그 영향력을 지속적 흐름으로 반영하고자 하고, 시는 이에 맞서 현실에 대한 내적 작동의 필연성을 갖추게 된다.

 

현실의 갈등과 모순, 혹은 내면의 존재적 갈등과 모순은,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필연성과 있어야 할 당위적 필연성에 의해 형성된다. 단순히 현실이 지닌 모순의 단편성만으로 그것을 이월할 수 있는 계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당위 이 두 필연성의 충동에서 야기되는 긴장으로 예술적 계기가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저수지 안의 섬에 검은 새들이 앉아 있다
나무들이 허옇게 변했다
 
나무가 말라가는 이유는 새 때문일까
 
가까이 저수지 안쪽 길 따라가 보니
나무들이
쏘아보는 눈길이 있다
 
새가 시끄럽게 악을 쓰는 것이
나무 때문일 것 같다
 
작은 섬 전체가 검은 새로 덮여 있어
흉흉하다
 
지나가는 사람은 생각한다
나무를 떠나면 될 것을
 
저수지 안의 섬, 나무가 말라가고 있다
 
민물가마우지와 까마귀가 반반씩
물속의 섬을 차지하고 있다
 
각각의 영역 속에서 그들이 차지한
나무들을
욕망하고 있다
 
저수지는 새와 죽어가는 나무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 조용미, 「영역」 전문
  
  
조용미의 작품은 전형적 울림에 근접해 있다. 묘사를 통한 대상의 인식도, 내부의 충일한 감정도 충분하게 엿보이지 않는다. “저수지 안의 섬, 나무가 말라가고 있다"는 풍경을 통해 교묘한 시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 풍경 역시 시적 감흥이나 도전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썰렁한 복고의 분위기에 안착한다. ‘욕망’의 공간으로서, “새와 죽어가는 나무의 목록을 가지고 있는" 저수지는 쓸쓸한 현실 인식의 단면을 상징한다. 도저한 절망이 즉물적으로 그려진 작품 안에서 시인은 욕망을 통해 허무를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시인은 저수지 안의 나무와 검은 새들을 하나의 정물로 그려낸다. 그런데 시인이 압축해하는 이 세계는 무채색의 세계다. “작은 섬 전체가 검은 새로 덮여 있어" 색을 잃어버린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조용미 시인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채색의 회화성은 시인 특유의 인식론과 시적 공간의 순수성에서 비롯된다.

 

그의 시가 표면상 낡은 비유적 세계를 그리고 있음에도 복고적이거나 고리타분한 느낌을 주지 않는 까닭도 이러한 회화적 성격이 강하다. 무심한 듯 강렬한 메시지는 일단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읽히기 쉽지만 화자가 지닌 동요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교감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연을 풍경으로 오려내고, 그 안에서 메타포를 배치하는 수법은 작품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 긴장은 어휘 하나하나에 대한 섬세한 배려의 공력과 관계되어 있다.
   
시인은 단호함과 엄숙함 속에서 시적 대상을 존재론적 차원으로 소환한다. 욕망과 관계의 굴레 속에서 진행되는 이미지의 조형과 파괴는 내공이 깊다. “지나가는 사람"으로 상정된 화자가 지닌 언어와 사고는 범상하고 평이하지만, 시의 대상이 된 사물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고, 그 관계를 낯설고 새롭게 만들어낸다. 아무튼 진지성의 과분한 무게도 있지만 시적 사물에 대한 차분한 묘사를 통해 은밀하게 메시지를 시화(詩化)하는 대신에 직접적 서술을 시도하는 조급함이 엿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의 본질과 그 한계에 대한 천착은 시가 지닌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며, 읽는 이들을 순간 경건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동휠체어를 탄 노부부가 막 비 그친 아스팔트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고 있다
 
가지런히 접힌 무릎 위에는 조그만 손가방 하나
 
손가방 속에는 귀가 다 닳은 성경책과 꽃무늬손수건과 돋보기안경이 착하디착한 표정으로 포개져있다
 
절벽을 지나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가는 노부부를
 
어떤 이는 가엾다 하고
어떤 이는 그래도 둘이라서 다행이라 하고
어떤 이는 저렇게라도 다닐 수 있는 것이 부럽다 하고
 
나는 그들을 따라 교회 문 앞까지 가다 되돌아오고 만다
 
아직 다리가 성하기 때문이라며 나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두 발로 걷게만 해달라고 밤낮없이 기도하며 착하디 착하게 살아가는 저 부부의 다리를 기어코 분질러 앉혀놓는
 
저들의 신이 지옥보다 더 무섭기 때문이다
- 조은길, 「직립을 소원하다」 전문
 
 
위 작품은 내성과 현실이 안팎으로 교차하면서 생겨난 현실감과 구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인은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긴장에 주목한다. 시 속의 인물은 고통을 감싸 안고 있으며, 시인은 그 고통에 가깝게 가지 못하는 뼈저린 자탄(?)을 내뱉는다. “신이 지옥보다 더 무섭기 때문이다"는 고백은 “나는 그들을 따라 교회 문 앞까지 가다 되돌아오고 만다"라는 자탄에서 시작해서 고통을 감내는 회생 또는 대속의 차원으로 넘어간다.
 
신의 영역인 아득한 거리가 인간의 능력 바깥에 있음을 받아드릴 때, 화자는 어떤 절대자를 향한 우울하고, 낮은 절망을 감추지 않는다. “절벽을 지나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가는 노부부"에 대한 절망적 인식은 시를 통한 구원의 전망을 허투루 내보이지 않는다. 현실에 절망하고, 시나 노래 혹은 예술의 힘에서 구원을 발견하는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신에 대한 회의와 거부의 감정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이는 단편적인 신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현실 자체의 신산(辛酸)으로부터 유래한다. 이러한 반응은 현실적이며 정서적인데, 화자가 보이는 신산의 현실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정서적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내성과 현실이 어우러진 진한 언어의 틀 안에 갑갑하게 자신을 가두지 않고 오히려 현실 인식을 강화시켜 절망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밤낮없이 기도하며 착하디 착하게 살아가는 저 부부의 다리를 기어코 분질러 앉혀놓는" 신은 자신의 신이 아닌, 노부부의 신이다. 그래서 화자는 감히 맞설 수가 없다. 한 편의 시가 만들어질 때, 시인이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개진과 은폐의 힘이 어떠한 관계로 배치되어 긴장을 최대화하느냐에 따라 그 시의 특이성이 만들어진다. “지옥보다 무서운 신"을 발견하고 “교회 문 앞까지 가다 되돌아"오는 화자와 “절벽을 지나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가는 노부부"이 만들어내는 텍스트 바깥의 현실은 시를 넘어 새로운 시적 세계를 펼쳐놓게 된다. 이러한 조형 방식이 조은길 시의 시적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입력 : 2019-06-09]   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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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71년에 광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징검돌이 별자리처럼 빛날 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달 안을 걷다』, 『밤새 이상을 읽다』 가 있으며,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詩) 전문 계간지 '시인수첩'주간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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