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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마음의 또다른 窓

이상국 「오늘 하루」 vs 임경묵 「우산 수리 전문가」

글  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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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란 단순히 자연 풍광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로 가능한 객관적 재현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정서와 무의식 혹은 이념이나 욕망이 반영되는 과정에서 특정한 문화적(문학적) 의도를 동반하게 된다. 사진=뉴시스DB

지난 원고에서 한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시에서 ‘풍경’이란 용어는 낯설지 않다. ‘시적 풍경’이나 ‘내면 풍경’이란 용어가 별다른 정의나 거부감 없이 용인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일반적으로 ‘풍경’은 그 속에 공간적인 것뿐만 아니라 시간적 요소도 포함하게 된다. 풍경에는 자연과 인공을 함께 포함한 환경과 인간 공생의 존재 방식이 지닌 다양한 국면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풍경’을 보고 묘사하거나, 경관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반추하며 스스로 삶의 방식을 비판하고 수정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유지하게 된다. 현상학적 측면에서도 ‘풍경’은 기본적으로 대상 또는 대상군에 대한 하나의 시각장(視覺場)이며, 그것을 계기로 형성되는 인간 또는 인간 집단의 심리적 현상을 포함해서 의미한다.
 
이때 풍경이란 단순히 자연 풍광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로 가능한 객관적 재현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정서와 무의식 혹은 이념이나 욕망이 반영되는 과정에서 특정한 문화적(문학적) 의도를 동반하게 된다. 이런 연유로 ‘풍경’은 시를 이야기할 때 별개로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와 용어로 작동하는 것이다.
 
 
마당을 파고 막힌 배수구를 찾는데
집 지을 때 묻힌 스티로폼이 아직 제집처럼 누워있다
사람만이 슬프다
앞집 능소화는 유월에 시작해 추석밑까지 피고진다
립스틱 같은 관능이 뚝뚝 떨어진다
꽃도 지면 쓰레기일 뿐
유럽의 길바닥에는
시리아 난민들이 양떼처럼 몰려다니고
폐지 줍는 노인이 자전거로 골목을 돈다
누가 울든 죽든 지구는 아무 생각이 없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폐지 갑을 대폭 인상할 것이다
지구도 원래는 우주의 쓰레기다
대낮에 무슨 음모라도 하는지
동네 개들이 대가리를 주억거리며
골목길을 돌아다닌다
반세기가 넘게 평화가 지속되는데도
누가 또 별을 달았다고 거리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나는 벌써 오래전에 시인이 되었다
동네 빈집 마당에 풀이 무성하다
한나절 뽑아주고 싶다
-이상국, 「오늘 하루」 전문
 
 
 이상국은 작품의 내재적 구조에 밀도를 더하는 동시에 시적 풍경의 구조를 강화하는데 능한 시인이다. 스티로폼에서 능소화로, 시리아 난민으로, 폐지 줍는 노인으로, 시적 자아의 정서를 점층적으로 증폭시키면서 시적 풍경의 구조성과 논리성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의 화자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표현을 강화함으로써, 주관적 서술이 지닌 정서의 장악력과 객관 서술이 지닌 표현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따라서 반세기 넘은 평화와 잡초 무성한 동네 빈집의 마당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에는, 추상적 진술의 울림 속에 고착되지 않는 이미지의 여운이 남게 된다. 이는 시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유지되는 정서적 통일감이, 개별 대상의 묘사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며, 감각적 이미지의 전개가 독자의 정서적 흐름에 역동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꽃도 지면 쓰레기일 뿐"이라는 화자의 투박한 인식이 시 전체를 통괄하는 추상적 주제로 환기되는 것처럼 말이다. 
 
“누가 울든 죽든 지구는 아무 생각이 없다/내가 대통령이 되면 폐지 갑을 대폭 인상할 것이다"라는 시행은 화자의 위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주관적 서술과 객관적 서술의 결합을 통해 기계적으로 만들어내는 풍경에서는 시의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낼 수 없다. 화자가 구사하는 점층적 시행들은 경험의 연관들이 갖추게 되고, 정서적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오히려 서로의 행간을 간섭하는 물리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상국 시인이 의도하는 시적 풍경은, 독자들의 개별적인 추경험을 통해 비롯된 정서와 느낌이 어떤 언술 체제의 제한에 강요받지 않고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배려의 공간이다. 화자는 오래전에 시인이 되었는데, 이제야 장군이 된 어떤 이와의 비교를 통해 화자는 무정형의 전언을 생성해낸다. 그것은 평화다. 화자는 지시성이 소거된, 일정한 추상성의 힘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세계를 제시한다.
 
위의 작품을 촘촘하게 읽어보면 화자의 진술은 경험적 질료와 주제적 정념이 아니라 오히려 절제된 언어의 여백으로 감흥을 경험하게하려는 화자의 의도임이 다분히 전달된다. 현실의 지시적 의미에서 탈각하여 일정한 경지에 고양되는 시적 현실이 시인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등굣길에 비가 온다는
우산 수리 전문가의 예언이 적중했다
그가 우산을 건네자
끝말잇기를 하듯 빗방울이 떨어진다
엊그제 비를 맞으며 나와 함께 등굣길을 나섰던 우산 한 개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그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는 날마다 고장 난 우산을 수거하고
그는 날마다 고장 난 우산을 수리한다
그가 수리한 우산의 팔구십 퍼센트가 나를 위해 쓰였다
한 번은 다 저녁에 예고도 없이 소나가기 퍼부었는데
당황한 우산 수리 전문가가
빗속을 뚫고
학교까지 나를 찾아와 불쑥 우산을 건넸다
비 맞고 다니지 말아라
돌이켜보니,
배후에 우산 수리 전문가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우울한 세계에서
비 한 방울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저녁상을 물린 우산 수리 전문가가 툇마루에 앉아
구름의 방향과 색깔을 살피고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새로 수리할 우산을 펼쳐 빙글빙글 돌린다
작년보다 잔 고장이 더 많아진 그가 우산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일기예보에 내일 비가 올 확률은
팔구십 퍼센트.
-임경묵, 「우산 수리 전문가」 전문
 
 
위 작품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빚어진 서사적 속도감과 영상적 생동감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또다른 경지를 보여준다. 화자의 삶의 배후에는 화자가 “비 한 방울 맞지 않"도록 보살펴 온 ‘우산 수리 전문가’가 있다. 그는 “구름의 방향과 색깔을 살피고/바람의 냄새를 맡"아 팔구십 퍼센트의 정확도를 갖추고 있는 ‘우산 수리 전문가’다. 단아하고 정갈하게 운용되는 행간에는 내적 서사를 향한 치열한 성찰이 담겨 있는데, 상투적 서정을 거부하는 섬세하고 고요한 비유와 이미지로 육친과의 관계를 그려내고 있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자가 보여주는 이 서정성의 요체는 보편적 공감의 영역보다는 개체적 경험의 내적 통찰이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하는 모습에서 비롯된다. “우산 수리 전문가의 예언이 적중"하면서 화자는 “이 우울한 세계에서/비 한 방울 맞지 않을 수 있"었다는 깨달음은 공감과 통찰의 층위에서 만들어내는 또다른 풍경이다.
 
더불어 이 시의 공력이 안고 있는 시적 감응력과 완성도 역시 만만치가 않다. 나지막하나 완고하고, 부드러운듯 읽히나 끈질긴 자기 탐구로 열어 보이는 세계와 존재에 대한 성찰은, 체험적 진실성의 풍경과 깊이를 담보해 낸다. 육친은 “작년보다 더 잔고장이 많아진" 상태이지만 일기예보를 통해 여전히 슬하의 자식을 보살핀다.
 
예고 없던 소나기에, 학교까지 우산을 가지고 온 육친의 모습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고유하고 특수한 상황이라기보다는 공감 가능한 계기로서의 풍경이 된다. 그래서 “비 맞고 다니지 말아라"라는 ‘우산 수리 전문가’의 발화가 체험적 진실성을 보여주면서 둔중한 울림과 발화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자아가 세계로부터 떨어져 버림받았다는 비극적 세계관과 달리 육친과의 연대를 유지하고 있는 평온함의 세계는 존재의 자족적인 근거가 된다. 훼손된 자기 자신을 회복하고 세계와 화해하고 합일하고자 하는 낭만적 포즈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는 화자가 “예고 없는 소나기"와 같은 스스로의 존재론적 한계를 뛰어 넘어, 조화롭고 행복한 세계로 초월할 수 있다는 원심력으로 추동된다. 육친과의 긍정적 관계성은 스스로의 상처나 훼손된 세계에 갇히지 않고 세상 소중한 것들의 관계를 찾아 스스로를 재생하는 치열한 긍정의 길임을, 화자는 기꺼이 시로서 보여준다.
 
 
 

 

[입력 : 2019-05-19]   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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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71년에 광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징검돌이 별자리처럼 빛날 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달 안을 걷다』, 『밤새 이상을 읽다』 가 있으며,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詩) 전문 계간지 '시인수첩'주간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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