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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으로 분석한 세계 금융위기

미국인의 타고난 낙천주의와 無知가 금융위기의 主犯

글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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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인간의 합리성과 이기성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시장주의 경제학은 한계를 드러냈다. 케인스가 주장한 것처럼 경제 활동이 ‘합리적 동기’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야성적 충동’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현실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로 여겨지는 작금의 경제 침체가 쉽게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경제학에 인지심리학이 융합된 행동경제학은 주류경제학과는 달리 인간의 실제 행동을 파악하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행동경제학의 도전을 받고 있는 주류경제학은 인간의 심리에 무게를 두지 않지만, 18세기 경제학이 확립될 무렵에는 심리학과 연관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의 경제사상가인 애덤 스미스는 1776년 고전경제학의 출발점이 되는 <國富論(국부론)>을 펴내기에 앞서 1759년 내놓은 <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인간의 경제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다. 스미스의 첫 번째 저술인 <도덕 감정론>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인간에게는 이기적인 본성이 있다. 인간의 내면에는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고 싶은 마음,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
 
  그러나 신고전파 경제학이 주류 경제학이 되는 과정에서 경제학자들은 심리학과 멀어졌다. 1870년대에 태동한 신고전파 경제학은 1930년대에 학계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경제학의 주류가 됐다.
 
  스미스 이후 인간 심리의 중요성에 대해 주목한 경제학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앨프리드 마셜(1842~1924)은 경제학은 일종의 심리과학이라고 주장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인간 심리가 경제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1936년에 펴낸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밖에도 몇몇 걸출한 경제학자들이 심리학을 경제학에 도입하려고 시도했지만 주류 경제학으로 자리 잡은 신고전파 경제학에 떠밀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경제학의 논리에서 심리학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경제활동을 하는 우리 모두가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곧 경제적 인간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경제적 인간은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존재다. 첫째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최대화하려는 인간이며, 둘째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제적 가치(효용)를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인간이다. 말하자면 신고전파 경제학은 경제 주체가 이기적이며 완전히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전제한다.
 
 
  경제학과 심리학의 융합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경제 행동을 심리적으로 분석했다.
  주류 경제학의 표준 모델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해 체계적인 비판을 가한 최초의 경제학자는 허버트 사이먼(1916~2001)이다. 1947년 펴낸 <관리행동(Administrative Behavior)>은 경영학의 고전이 됐으며, 1956년 인공지능과 인지과학이 신생학문으로 출범할 때 주역으로 참여했고, 1969년 펴낸 <인공의 과학(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은 복잡성 과학의 필요성을 예견한 名著(명저)로 평가됐다.
 
  1950년대에 사이먼은 주류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완전 합리성(perfect-rationality)’ 개념에 도전하는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개념을 만들어 냈다.
 
  사이먼에 따르면 완전한 정보가 없고, 뇌의 처리 용량 등 인간의 인지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전제처럼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다. 요컨대 인간은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에 의존하여 만족스러운 정도의 결과를 추구할 따름이다. 따라서 경제학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인간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평가받아 사이먼은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지만 주류 경제학자들로부터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주역이 되어 탄생시킨 인지과학은 경제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주류 경제학 이론에서 예측하는 바와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독창적인 논문을 발표한다. 대표적인 인지심리학자는 이스라엘 태생으로 미국에서 함께 연구한 대니얼 카너먼(1934~)과 아모스 트버스키(1937~1996)이다. 이들은 1979년 <프로스펙트 이론: 리스크하에서의 의사결정(Prospect Theory: Decision Making Under Risk)>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프로스펙트 이론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택을 하면서 그 불확실성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설명한 이론이다. 한마디로 심리학적 선택이론이다. 프로스펙트는 가망 또는 기대를 뜻하지만, 카너먼은 자신의 이론을 널리 알리기 위해 큰 의미 없이 이런 명칭을 붙였다고 털어놓았다.
 
  이 기념비적인 이론은 주류 경제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출발점이 됐다. 1979년을 행동경제학의 원년으로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2년 카너먼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행동경제학은 전통 경제학과 달리 인간의 완전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지 고찰하는 학문이다. 행동경제학은 한마디로 인간의 선택과 판단에 대한 인지심리학의 연구 성과를 경제학에 융합시킨 신생학문이다. 행동경제학의 출현으로 인간의 비합리적인 측면이 잇달아 밝혀지기 시작했다.
 
 
  밑지고는 못 산다
 
케인스는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야성적 충동’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프로스펙트 이론은 불확실한 조건에서 인간이 잠재적 손실과 이익을 판단해 결정을 내리는 행동을 새롭게 설명했다. 프로스펙트 이론의 전제가 되는 핵심 개념의 하나가 ‘손실 회피(loss aversion)’다. 손실 회피는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 것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쪽으로 결정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손실 회피는 밑지는 건 참을 수 없다는 뜻이다. 프로스펙트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잠재적 이득과 관련된 선택을 할 때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손실에 의한 심리적 효과는 이득에 의한 심리적 효과보다 적어도 두 배는 큰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은 잠재적 이득이 잠재적 손실보다 최소한 두 배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돈을 벌거나 잃을 확률이 50 대 50으로 전망될지라도 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2001년 11월 미국 부동산 경제학의 거물인 크리스토퍼 메이어 교수는 <손실 회피와 판매자의 행동>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메이어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보스턴의 콘도미니엄(공동주택) 6000채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값이 비쌀 때 구매한 사람들은 그 아래 값으로 팔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고수함에 따라 집이 팔리지 않았지만 값을 낮추는 사람은 없었다. 밑지고는 집을 팔 수 없다는 손실 회피 심리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것이다.
 
  2007년 9월 23일자 <뉴욕타임스>의 경제 논평에 따르면 미국 주요 도시의 부동산 시장이 1990년대 보스턴 공동주택 시장과 비슷한 조짐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집값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매물을 내놓음에 따라 주요 도시의 부동산 경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는 것이다.
 
  2007년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러셀 폴드랙과 행동경제학자인 크레이그 폭스는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1월 26일자에 사람이 손실 회피를 나타낼 때 뇌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장치로 실험 대상자의 뇌 안을 들여다보았다. 실험 대상자들에게는 돈을 벌거나 잃을 확률이 50 대 50으로 전망되는 도박에 참여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졌다. 도박에서 잠재적 이득이 올라가면서 뇌 안의 도파민 계통에서 활동이 증가했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음식을 먹거나 성교를 할 때처럼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 분비된다.
 
 
  손실 회피
 
‘보유효과’를 연구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
  한편 잠재적 손실이 증가할 때는 같은 부위에서 활동이 감소했다. 흥미롭게도 손실과 이득이 뇌의 같은 부위, 곧 보상체계(reward system)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보상체계는 식사, 성행위, 자식 양육 등 인간의 지속적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행동을 규칙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쾌락으로 보상해 주는 신경세포의 집합체이다. 특히 복내측 전전두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에서 손실과 이득에 대한 반응이 활발했다. 대뇌피질의 앞쪽에 위치한 VMPFC는 공감, 동정, 수치, 죄책감 같은 사회적 정서반응과 관련된다.
 
  손실 회피가 뇌 안에서 정서를 처리하는 부위와 관련됐다는 사실은 프로스펙트 이론의 입지를 더욱 강화했다. 프로스펙트 이론은 신고전파 경제학과 달리 경제 주체의 의사 결정이 반드시 이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뇌 안에서 손실 회피의 생물학적 근거가 밝혀짐에 따라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손실 회피 성향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의 하나는 ‘보유효과(endowment effect)’다. 사람들은 물건이건 사회적 지위건 일단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나면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을 때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성향이 있다.
 
  1980년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또는 탈러)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보유효과라고 명명했다. 세일러는 한 병에 5달러 주고 구매한 포도주가 50달러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팔려고 하지 않는 심리 상태를 보유효과의 예로 들었다.
 
  사람들은 소유한 물건을 내놓게 되면 손실로 느낀다. 따라서 손실을 피하기 위해 보유한 물건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보유효과는 손실 회피 성향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임에 틀림없다. 1984년 보유효과의 존재는 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실험 참가자를 3개 집단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집단에는 커피 머그(원통형 찻잔)를 주고 초콜릿과 교환하게 했다. 두 번째 집단에는 첫 번째 집단과 거꾸로 초콜릿을 주면서 머그와 교환할 기회를 부여했다. 세 번째 집단은 머그와 초콜릿 중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고르도록 했다.
 
 
  내 것이면 무조건 좋다
 
  실험 결과 첫 번째 집단의 89%는 머그를 초콜릿과 교환하지 않았다. 두 번째 집단에서는 90%가 초콜릿을 머그와 바꾸지 않았다. 초콜릿보다 머그를 선택한 비율은 10%인 셈이다. 두 집단에서 머그를 선호하는 비율이 각각 89%와 10%로 큰 격차를 나타낸 것은 보유효과가 강력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집단은 거의 50%의 비율로 머그와 초콜릿을 선택하여 보유효과가 없는 상태에서는 물건에 대한 평가에 치우침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보유효과는 아끼는 물건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단지 자신의 소유물을 남에게 넘기는 것을 손실로 여기는 심리상태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8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인 브라이언 넛슨은 <뉴런(Neuron)> 6월 12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뇌 안에 손실을 피하려는 부위가 존재하여 보유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넛슨은 24명의 남녀 뇌에서 전두엽에 자리 잡은 측위신경핵(nucleus accumbens)과 섬 피질(insula cortex)을 fMRI 장치로 들여다보는 실험을 실시하여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보유효과의 핵심 요인임을 밝혀낸 것이다.
 
  보유효과는 인류와 조상이 같은 영장류에서도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2008년 미국 밴더빌트 대학의 법률학자인 오언 존스와 조지아주립대학의 영장류 동물학자인 사라 브로스넌은 <윌리엄과 메리 법률 개관(William and Mary Law Review)> 6월호에 침팬지에게서 보유효과가 관찰됐다는 논문을 실었다.
 
  침팬지에게 땅콩버터와 주스를 제시하고 양자택일하게 했을 때 60%는 주스보다 땅콩버터를 골랐다. 그러나 땅콩버터를 갖도록 했을 때에는 80%가 주스와 교환하지 않고 그대로 소유했다. 요컨대 땅콩버터 선호 비율이 20% 높아진 것은 땅콩버터를 소유하게 된 순간 더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침팬지에게도 보유효과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보유효과가 침팬지의 경우에서처럼 인류의 조상에게 먼 옛날부터 진화된 속성이라면 신고전파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배치된다. 다시 말해 보유효과는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성향을 본성으로 타고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경제적 인간 개념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후판단 편향(hindsight bias)
 
  손실 회피와 보유효과는 인간이 행동할 때 나타나는 갖가지 편향(bias)의 일부일 따름이다. 편향이란 휴리스틱(heuristic), 곧 발견적 방법의 결과로 발생하는 판단이나 결정의 심리적 경향을 뜻한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 사용하는 방략에는 알고리즘(연산법)과 휴리스틱(발견법)이 있다. 알고리즘은 특정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모든 조작이 단계별로 명시된 절차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알고리즘이다. 한편 휴리스틱은 과거에 비슷한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즉각적으로 추측하고 가설을 형성하여 해결하는 방법이다.
 
  휴리스틱은 신속하고 간편한 문제 해결 방법이지만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결정을 하게 마련이다. 요컨대 휴리스틱에 의해 내려진 판단은 객관적인 평가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의미에서 때때로 바이어스(편향)가 동반된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에 의해 확인된 대표적인 휴리스틱은 이용가능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던 사례를 머릿속 기억으로부터 금방 떠올려서 그 사례를 기초로 특정 사건이 발생할 확률을 판단하는 것이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이다. 이때 떠오른 기억이 그 사건의 확률을 올바르게 나타내지 못하면 바이어스가 생기게 된다.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이 일으키는 바이어스 가운데 하나는 사후판단 편향(hindsight bias)이다. 일이 벌어진 뒤에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어"라고 말할 때처럼 결과를 알고 나서 사전에 그것을 예견했었다고 믿는 것을 사후판단 편향이라 한다.
 
  2007년 미국의 저술가인 제이슨 츠바이크가 펴낸 신경경제학 개론서인 <당신의 돈과 뇌(Your Money and Your Brain)>에는 “사후판단 편향은 인간 내부의 사기꾼이 우리에게 쓰는 또 하나의 잔인한 속임수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후판단 편향은 미래가 실제보다 더욱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하도록 당신을 속인다. 이러한 속임수 덕분에 당신은 과거를 되돌아볼 때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런 속임수는 당신이 장차 바보처럼 행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마이어스 역시 2002년에 펴낸 <직관(Intuition)>에서 사후판단 편향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는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과거에도 실제로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 스스로를 쉽게 속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심리학이 필요한 이유다. 심리학은 우리가 환상에서 현실을, 빠져들기 쉬운 사후판단 편향에서 현명한 예측을, 잘못된 직관에서 참된 통찰력을 가려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닻 내리기 효과
 
  트버스키와 카너먼이 제시한 휴리스틱의 하나는 닻내리기(anchoring)다. 배가 닻을 내리면 한곳에 머무는 것처럼 처음에 임의로 설정한 기준(닻)을 모든 판단의 출발점이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바이어스를 닻 내리기(또는 기준점) 효과라 한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1에서 100까지의 숫자가 적힌 원판을 돌리면서 실험대상자들에게 “유엔 회원국 중 아프리카 국가는 몇 %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원판이 10의 숫자에 멈추었을 때는 유엔 회원국 가운데 25% 정도가 아프리카 국가일 것이라고 대답한 반면에 원판이 65에 멈추었을 때는 아프리카 국가 비율은 45%라고 말했다. 실험 당시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은 32%였다.
 
  이런 결과는 사람들이 의미 없는 기준(닻)의 영향을 받아 판단하는 성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닻과 배를 연결한 밧줄 길이 안에서만 배가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사람 역시 임의 기준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닻내리기 효과라고 명명된 것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이 밝혀낸 바이어스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틀(framing)효과, 화폐착각(money illusion) 등 100개를 상회할 정도다. 이 중에서 확증편향은 관련된 뇌 부위가 확인되기도 했다.
 
  확증편향은 자신이 가진 믿음을 확증하는 정보만을 찾아서 받아들이려는 성향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뜻이다.
 
  미국 에머리대학의 심리학자인 드루 웨스턴은 뇌에서 확증편향이 발생하는 부위를 찾아내고, 확증편향이 무의식적인 현상이며 정서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에 웨스턴은 핵심 공화당원을 자처하는 15명과 골수 민주당원 행세를 하는 15명 등 30명의 뇌를 fMRI장치로 들여다보면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연설 내용을 평가해 달라고 주문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나왔다. 공화당원들은 케리에게, 민주당원들은 부시에게 일방적인 혹평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험 참가자들은 예외 없이 무의식적으로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음이 분명했다.
 
  한편 뇌 영상 자료를 보면 이성과 관련된 뇌의 영역이 침묵을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그 대신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인 전방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등의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 연구결과는 2006년 미국 심리학회 총회에서 발표됐다.
 
 
  행동경제학 도서 인기 상승
 
심리학자 피터 우벨은 <자유시장 광기>에서 경제불황의 원인으로 미국인들의 낙천주의와 무지를 꼽았다.
  웨스턴의 연구결과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만일 대통령, 판사, 최고경영자, 과학기술자가 확증편향을 극복하지 못하면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어 엉뚱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에 대한 일반대중의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관련 서적이 잇따라 출간됐다. 2008년에는 2월 댄 애리얼리의 <상식 밖의 경제학(Predictably Irrational)>, 4월 리처드 세일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함께 집필한 <넛지(Nudge)>, 6월 오리 브래프먼과 롬 브래프먼의 공저인 <동요(Sway)>가 나왔다. 2009년에는 1월 피터 우벨의 <자유시장 광기(Free Market Madness)>, 2월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가 함께 펴낸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행동경제학의 유망주로 부상한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의 댄 애리얼리는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출세작에서 쇼핑, 폭식, 음주, 섹스, 게으름, 부정행위 따위의 일상적인 행동을 분석한 실험결과를 소개하고 인간이 비이성적 존재임을 부각시켰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책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을 가진 ‘넛지’를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들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넛지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하는 행동경제학 용어가 됐다. 다시 말해 부드러운 개입만으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넛지는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소하고 작은 요소다.
 
  이 책은 사람들이 완벽한 선택을 하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닐뿐더러 종종 선택 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에 약간의 변화, 곧 적절한 넛지를 가해서 올바른 결정으로 이끌면 사람들의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브래프먼 형제가 함께 쓴 <동요(스웨이)>는 인간이 늘 비이성적 상황에 휩쓸리기 쉬운 존재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집단의 의견에 쉽게 동조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에도 휘둘리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미시간대학의 심리학자인 피터 우벨은 <자유시장 광기>에서 미국 경제 불황의 원인으로 인간의 불합리한 성향과 함께 탐욕을 먼저 꼽고, 미국인의 타고난 낙천주의와 무지를 덧붙였다. 사람들은 호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외상으로 물건을 사들이고, 살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이스크림을 먹어대고, 이자 갚을 계획도 궁리하지 않고 은행 돈을 마구 빌려 쓴다.
 
  우벨은 이러한 충동적 행동이 미국의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고 진단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강조했다. 미국인의 無知(무지)가 경제 불황의 빌미가 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벨은 많은 미국인이 간단한 계산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성인의 3분의 1이 1000의 10%가 얼마인지 계산을 못한다는 것이다. % 개념이 부족한 사람들은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의 연체율을 이해할 턱이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미국 금융 위기의 단초가 됐음은 물론이다.
 
 
  비합리적인 행동은 의지력의 한계 때문
 
  우벨에 따르면 미국인의 타고난 낙천주의가 금융 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가령 소득이 주택담보대출의 이자를 감당할 만큼 빠르게 증가하거나, 집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앞지를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뜻이다.
 
  우벨은 인간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까닭은 의지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담배가 폐암의 원인인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고, 아침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듣고도 늦잠을 자는 것은 의지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커로프와 저명한 경제학자인 로버트 실러는 1936년 케인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 ‘야성적 충동’을 제목으로 삼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인간의 합리성과 이기성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시장주의 경제학은 한계를 드러냈다고 분석하고, 케인스가 주장한 것처럼 경제 활동이 합리적인 동기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야성적 충동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현실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애커로프와 실러는 머리말에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고전파 경제학의 핵심 용어인 것처럼,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불안정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시각의 핵심 용어다"라고 주장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행동경제학의 도전이 갈수록 거세질 것임을 이 책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출처=월간조선 2009년 12월호

[입력 : 2019-10-24]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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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KAIST 겸직교수, 문화창조아카데미 총감독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과학칼럼니스트 1호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선데이, 매일경제 등 국내 주요언론은 물론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 발행 월간지 PEN에 칼럼을 연재하며 국제적 과학칼럼니스트로 인정받았다. '2035미래기술 미래사회' '융합하면 미래가 보인다' '미래교양사전' 등 수십권의 책을 출간했다.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한국출판문화상, 서울대 자랑스런 전자동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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