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물건 하나 제대로 식별할 능력이 없는 까닭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환경문제에 접근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의 표현에 따르면 '생태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부족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골먼은 '정서지능(EI)'(1995)과 '사회지능(SI)'(2006)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4월 중순 골먼은 '생태지능(Ecological Intelligence)'을 출간했다.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구매한 물건의 숨겨진 영향을 알면 모든 것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이다. 골먼은 상품 구매와 같은 개인의 행동이 지구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을 생태지능이라고 정의했다.
골먼은 산업생태학(industrial ecology)에서 생태지능의 아이디어를 빌려 왔다. 미국 과학자 로버트 프로쉬가 1989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3월호에 처음 소개한 산업생태학은 산업 활동에 생태계 개념을 융합한 분야이다. 자연의 생태계에서는 한 종의 배설물이 다른 종에게 먹이나 에너지 공급원으로 활용되는 반면에 산업 활동의 폐기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마련이다. 산업 쓰레기는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만일 자연 생태계에서처럼 한 산업의 폐기물이 다른 산업의 원재료로 사용될 수만 있다면 산업 쓰레기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자원 재활용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 요컨대 산업생태학은 자연 생태계를 본떠서 산업 폐기물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지난 20년 가까이 산업생태학에서는 '생명주기 평가(LCA)'라 불리는 기법으로 제품의 설계에서 생산되는 공정까지 분석하여 폐기물이 생성되는 원인을 밝히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의 하나는 코카콜라 제조 회사이다. 이 회사는 세계 유통망을 분석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극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예컨대 2012년까지 물 사용 효율을 20% 개선하는 목표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골먼은 그의 저서에서 생태지능은 궁극적으로 친환경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 그 이상의 범위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생태지능은 인류가 자원이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히 서로 연결된 그물망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능력인 것이다. 골먼은 생태계처럼 모든 산업 활동이 무한히 연결된 사실을 깨닫게 되면 누구나 자신의 일상적인 의사결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골먼은 최악의 자연 조건에서 살아남은 티베트의 한 공동체를 예로 들면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생태학적으로 생각한 덕분이라고 설명하고 그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인류 역시 서둘러 생태학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다. 출처=조선일보 '이인식의 멋진 과학' 2009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