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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기리며...‘아시아의 첫째가는 의협 안중근’

“지금의 자유·번영은 순국선열·호국영령의 헌신·희생 덕분”

글  서정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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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19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안중근 의사를 선정했다. 사진은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저격 모습. 사진=국가보훈처

현충일을 맞아 '壯烈千秋(장렬천추)'의 불세출의 영웅,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참군인의 표상 안중근 의사에 대해 제가 쓴 졸고를 올립니다.
 
東洋大勢思杳玄(동양대세사묘현)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有志男兒豈安眠(유지남아기안면)
뜻 있는 사나이 편한잠을 어이자리
 
和局未成猶慷慨(화국미성유강계)
평화시국 못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政略不改眞可憐(정략불개진가련)
침략전쟁 고치지 않으니 참 가엽도다
 
역사인물열전, 오늘은 제국의 심장을 쏘아 전 세계 제국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민족독립투사 안중근 의사에 대해 살펴볼까요.
 
1.어린 시절
 
"白日莫虛渡 靑春不再來(백일막허도 청춘부재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壯烈千秋(장렬천추, 장제스)", 장렬한 뜻 천추에 빛나는 불세출의 영웅 안중근,
그는 1879년 해주에서 전형적인 향반(鄕班)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아명은 '북두칠성에 감응해 태어났다'는 뜻의 '응칠(應七)'이죠.
부친 안태훈은 진사였으나 전통적인 유학에 머물러 있던 보수 유림은 아니었고 근대적 신문물의 수용의 필요성을 인식한 개화적 사고를 지닌 분이었죠.
그의 집안은 갑신정변 직후 해주를 떠나 신천군 청계동으로 이사하게 되는데 그것은 부친이 개화당 인사들과 교류가 깊었던 관계로 수구파 정부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죠.
청계동에서 성장하면서 8세 때부터 조부의 훈도로 한학과 조선역사를 배우며 민족의식을 키운 그는 말타기와 활쏘기 등 무예를 연마하며 호연지기를 길렀고, 숙부와 포수꾼들로부터 사격술을 익혀 명사수로 이름을 날렸죠. 한마디로 문무(文武)를 겸비했죠.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생하자 부친은 군대를 조직하여 반동학군 투쟁에 나서고 그도 선봉장으로 활약하는데?
동학에 대해 긍정 평가가 많은 지금에 보면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오래 전부터 개화파와 연계를 맺고 있던 부친이 개화정책을 펴던 갑오내각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죠.
1897년 그의 일가족 30여 명은 천주교에 입교하고 그도 빌렘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고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부여받는데?
'토마스(도마)',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 부활한 예수의 몸을 만져 본 유일한 사도, 인도의 사도로서 숭배'
의심 많은 토마스처럼 그도 항상 호기심에 가득찼죠.
 
2.교육계몽운동
 
"人無遠慮 難成大業(인무원려 난성대업)",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망국의 상황이 도래하자 구국의 방책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구국운동을 전개하던 그는 한인 유력자들과 외국인 신부들의 비협조, 그리고 1906년 부친의 별세로 말미암아 뜻을 펴지 못한 채 귀국하죠.
이후 그는 청계동을 떠나 평남 진남포로 이사하면서 민족의 실력양성을 위한 계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죠.
서우학회에 가입한 뒤 진남포에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여 교육계몽운동을 전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석탄을 채굴하여 판매하는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평양에서 설립하여 산업진흥운동에도 매진하죠.
그러나 고종퇴위, 군대해산 등으로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워진 조국의 운명, 결국 그는 의병활동을 통한 무장독립투쟁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죠.
 
3.의병활동
 
"臨敵先進 爲將義務(임적선진 위장의무)", "적을 만났을 때 선봉에 서는 것이 장수의 의무이다"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한 그는 노령 한인사회의 지도적 인물이자 거부인 최재형의 재정적 지원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죠.
1908년 의병부대를 이끌고 제1차 국내진공작전을 펼쳐 치열한 교전 끝에 일본군 수명(?)을 사살하면서 수비대의 진지를 완전히 소탕하는 전과를 올리죠.
그 후 홍범도 의병부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제2차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한 그는 전투 중에 10여명의 일본군과 일본 상인들을 생포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일본군 포로들을 석방하는 조치를 취하죠.
"사로잡힌 적병이라도 죽이는 법이 없으며, 또 어떤 곳에서 사로잡혔다 해도 뒷날 돌려 보내게 되어 있다."
만국공법(국제법)과 그가 믿고 있던 천주교의 박애주의의 소산이었지만, 이로 인해 그는 의병부대원들의 불만과 오해를 사고, 또 포로의 석방으로 부대의 위치가 알려지면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대패하니 참으로 안타깝네요.
그 후 의사는 1909년 의병 재기를 도모하면서 동지 11명과 함께 왼손 넷째 손가락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大韓獨立(대한독립)'이라 쓰는 '단지동맹(斷指同盟)'을 맺고 구국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죠.
 
4.이토 히루부미 처단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장부수사심여철 의사임위기사운)", "장부는 비록 죽을 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이 단단하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상은 구름같이 드높다"
한국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파괴자 이토, 우리 민족으로 볼 때는 민족의 원흉이지만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을 이끈 총리대신으로 입헌군주제를 확립하여 한때 천엔권의 초상이 될 정도로 추앙받는 이토,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결코 살려줄 수는 없었죠.
"여러 해 소원한 목적을 이루게 되다니. 늙은 도둑이 내 손에서 끝나는구나"
10월 26일 새벽 하얼빈역으로 나가 러시아 병사들의 경비망을 교묘히 뚫고 역 구내 찻집에서 이토의 도착을 기다리던 안중근,
드디어 오전 9시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하얼빈역에 도착하고 의장대의 후방에서 은인자중하고 있던 그는 앞으로 뛰어나가며 브러우닝 권총으로 이토에게 3발의 총탄을 명중시키죠. 바로 제국의 심장을 향해 총을 쏜 것이죠.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내가 이토를 죽인 것은 한국독립전쟁의 한 부분이요, 일본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전쟁에 패배하여 포로가 된 때문이다."
사로 잡은 일본군을 국제법에 따라 풀어준 안중근,
전쟁포로가 아니라 일개 암살범으로 열흘도 안되는 초고속 재판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죠.
2차대전 중 필리핀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을 일본 군인이 쏘아 죽이면 포로인지, 암살범인지 되묻고 싶네요.
"세기적인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 그는 영웅의 월계관을 검어진 채 자랑스레 법정을 떠났다. 그의 입을 통해 이토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했다."
당시 영국 '더 그래픽지'의 보도죠.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어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의사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가 심금을 울리네요.
 
5.인류의 양심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나라를 위해 몸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
당시 여순감옥의 간수였던 일본인 치바 도시바, 의사의 인품에 감화되어 평생 그의 영정을 모시고 절을 올렸죠.
의사는 겨레의 사표일 뿐 아니라 일본인에게조차 신으로 모셔졌고 전 세계 반제국주의 세력의 영웅이 되었죠.
"내가 죽은 뒤에 내 뼈를 하얼빈공원 옆에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아직까지 찾지 못한 의사의 유해'
우리나라의 국권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의 추모하는 마음과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지, 영원히 못 찾을지,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네요.
"진실로 공경할 만하다. 이토 히루부미를 죽이고 자신도 용감히 죽었다. 마음 속으로 비로소 나라의 한을 풀었다. 역사 속에 충의 혼을 우러르지 않을 자가 없었다. 누가 그의 뒤를 따르랴. 누가 그의 뒤를 따르랴."
일제시대 동북 일대 소학교에서 중국인이 작사, 작곡하여 널리 불린 '안중근을 추모하며'라는 노래죠.
 
6.영웅을 기리며
 
'산 자가 죽은 자를 되살리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한다.' (E. H. Carr)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 미래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는 과거인 것,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겠죠. (신채호)
"내가 대한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느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주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여한이 없겠노라."
전쟁의 폐허로부터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한강의 기적, 의사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을지, 아니면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의 현실, 의사의 한이 아직도 남았을지...
"사형을 집행하려 합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이 무엇입니까?"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5분 동안 읽고 있던 책의 나머지 부분을 다 읽고, 간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
결국 그는 죽는 날까지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좌우명을 몸소 실천했죠.
"流血五步大事件(유혈오보대사건) 狂笑一聲山月高(광소일성산월고)", "다섯 걸음 앞 격살은 대사건이라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산위 달과 같이 높구나(양계초)"
중국의 저명한 학자인 양계초와 장태염으로 부터 "아주제일의협(亞洲第一義俠: 아시아의 첫째가는 의협)'으로 평가받은 안중근,
부족한 이 글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가장 빛나는 시기 자신의 모든 것을 조국에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서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입력 : 2020-06-07]   서정욱 변호사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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