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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美군정이 실시한 여론조사...국민 80%가 사회주의·공산주의 원했다!

광복 74주년·건국 71주년 다시 보는 탁월한 이승만의 리더십...“자유민주주의 선택은 그야말로 기적 중 기적”

글  서정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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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연맹 본부 앞에 선 이승만. 그는 국제연맹에서 만주사변에 대해 논의하는 기회에 조선의 독립을 호소했다. 사진=월간조선

1. 왜 '지금' 이승만인가?
 
“역사가는 '사실'의 비천한 노예도 아니고, 난폭한 지배자도 아니다.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랑케의 실증사학에 반기를 든 E. H. Carr의 말이다. 그렇다.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다. 어떤 역사도 과거를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대중의 찬사를 받고자 쓰는 '문학'이 아니라, 영원한 지식의 보고로 남기 위해 이루어진 사실의 집적인 '과학'이다(투키디데스). 이 말은 아무리 역사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입장'에서 과거를 해석한 것이라 해도, '팩트'를 떠나서는 역사학이 성립할 수 없다는 의미다.
 
반만년 역사상 가장 빛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한 우남(雩南) 이승만, 역사 속 수많은 인물들처럼 그 또한 많은 업적과 과오를 동시에 남겼다.
 
"이승만은 미국이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기 위해 데려온 일종의 퍼핏(puppet), 괴뢰다. 당연히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도올 김용옥)."
 
그런데 왜 유독 그에 대해서만 역사는 박한 평가를 하고 있는가? 왜 유독 그에 대해서만 역사는 그의 '공과(功過)'를 균형있게 보지 못하고 '과(過)'만 부각하는가? 왜 유독 그에 대해서만 역사는 '팩트'는 무시하고 어설픈 '해석'만 난무하고 있는가?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공유'야말로 선진통일조국 건설의 초석이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문재인 대통령)"
 
좌(左)든 우(右)든 위와 같이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인식으로는 결코 미래의 통합을 이룰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첫 번째 동기다.
 
다음으로 우리 민족 최대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통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통일원칙이 무엇인가? 적화 통일인가? 중도 통일이나 중립화 통일인가? 아니다. 우리의 통일원칙은 자유민주주의 통일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결국 자유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바로 '통일이념'이 되는 것이다.
 
우남을 모르고 '건국이념'을 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넌센스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두 번째 이유다.
 
“前事之不忘 後事之師也(전사지불망 후사지사야). 지난일을 잊지 않는 것이 나중 일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사마천이 '진시황 본기'에서 한 말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천고(千古)의 명언이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 세대, 특히 4.19 이후 세대의 우남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독립운동 분열의 원흉이다." “6·25 당시 서울을 버리고 한강 다리까지 폭파해버린 채 도망갔다." “친일파만 기용하고 독재와 부정선거로 쫓겨났다." “결국 대한민국은 기회주의만 득세하고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다."
 
이러한 종북 좌파의 편향된 역사교육만 판친다면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 조금이나마 더 우남의 본모습을 보여주어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에 자부심을 갖게 하자.'
 
이것이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마지막 이유다.
  
2.항상 '최초'가 따라다니는 뛰어난 선각자
   
우리나라 박사학위 1호(191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이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과 대통령 등...
 
그는 항상 '최초'가 따라다니는 뛰어난 선각자였다. 그는 누구보다 탁월한 혜안과 선구적인 안목으로 민족 교육과 국제외교를 통한 독립을 역설한 선각자였다.
 
1897년 배재학당을 졸업할 때 졸업생 대표로 영어로 연설한 '한국의 독립', 1904년 옥중에서 저술한 '독립정신', 그리고 1941년 일본의 미국 침공을 예언한 '일본내막기 (Japan Inside Out)' 등...
 
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그는 정말 개화된 의식과 국제정세를 읽는 능력만은 독립운동가중 독보적인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이중 그가 아직 양반 사회의 서슬이 시퍼렇던 20C 초 옥중에서 쓴 '독립정신'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세상에서 이르는 바 높다, 귀하다, 천하다 하는 것은 인심으로 질정(質定)한 형편을 구별함이려니와 실로 천리(天理)를 볼진대 그 소위 귀하고 높다는 자나, 약하고 천하다는 자나 이목구비와 사지백태(四肢百態)는 일반으로 타고 나서 더 하고 덜한 것이 없나니 이는 하늘이 다 각기 제가 제 일을 하며 제가 제 몸을 보호할 것을 일체로 품부(稟賦)하심이라."
 
한편 당시 독립운동은 그가 강조한 외교독립론외에도 일본통치하의 민족자치론, 계몽을 통한 실력양성론, 무장투쟁론, 민중혁명론 등 참으로 다양하였다. 역사란 항상 지나고 나면 명백한 답이 보이지만 당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마치 안개 자욱한 길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진 것같은 암담함 뿐이었다.
 
그의 외교독립론은 무력항쟁을 부르짖는 이른바 '무력파'에 의해 나약한 문치론으로 비판받았다. 특히 그가 국제연맹에 조선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위임통치해 줄 것을 청원한 사실은 무력파들로 하여금 그를 탄핵까지 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 아니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란 말이오."
 
단재 신채호가 그의 위임통치 청원에 대해 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후의 현실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우리의 독립은 결코 일본과의 타협이나, 실력양성, 무장투쟁, 민중혁명에 의해 달성된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간접 원인은 되었겠지만, 직접적 독립의 계기는 2차 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였다. 결국 그가 강조한 '외교독립론'이야말로 최고의 혜안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못한다. 필자는 우남이야말로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도 직시하면서 민족의 나아갈 바를 밝혀준 진정한 선각자로 평가한다.
 
3.자유민주주의에 철저한 원칙주의자
 
미국(공화제, 연방주의, 천부인권), 프랑스(자유, 평등, 박애), 중국(인민민주 독재, 민주집중제) 등 어느 나라 어느 체제를 불문하고 모든 국가는 그 나라의 기초이념 즉, 건국이념이 있다.
 
'애국심', 즉 '나라사랑'이란 다른 별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건국이념에 가장 충실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나라사랑'인 것이다.
 
우남(雩南), 몽양(夢陽), 백범(白凡). 해방 정국의 세 명의 걸출한 지도자다. 이중 우리의 건국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가장 충실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먼저 당시의 시대 상황부터 살펴보자. 주지하다시피 해방의 환희와 감격은 온 나라를 뒤덮었지만 냉엄한 국제 현실은 결코 우리에게 새로운 통일국가 건설을 허락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점령군으로 여기며 행동한 미군이 서울에 들어와 처음 한 일은 총독부 건물에서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게양한 일이었고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 역시 다르지 않았다.
 
결국 당시 해방정국은 구심점을 형성하지 못하고 좌우 대립으로 치달리고 있었는데, 처음 미국은 철저한 반공반소주의자인 그가 귀국하면 대소 타협정책에 지장을 준다고 판단하여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소련이 북한의 소비에트화에 착수했을 뿐 아니라 남한까지 좌익에 의해 장악되자 미국은 강력한 반공지도자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그는 임정의 초대 대통령이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백범도 마찬가지다)
 
"나는 앞으로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일하겠거니와 싸움을 할 일이 있으면 싸우겠다. 그러나 여러분, 4000년의 우리 역사가 어둠에 묻혀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이 불민(不敏)한 탓이었다. 그중에서도 나와 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의 잘못이 컸다. 그것은 내가 책임지겠다. 여러분은 젊기 때문에 그 책임이 적다. 4000년 역사를 이제 우리 손으로 다시 꽃피워야 한다."
 
그의 귀국 일성인데, 45년 10월 16일 그가 귀국하자 좌우익 모두가 그를 대표로 추대하려 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통합지향적 구호를 외치는 그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몽양이 주도하던 '인민공화국'의 주석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좌익과 결별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였다.
 
필자는 '민족주의'가 뜨거운 가슴, 즉 감성의 영역이라면, '자유민주주의'는 차가운 머리, 즉 이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
 
국토의 영구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백범 김구.
 
"우리가 통일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미국도 소련도 방해하지 않는 경우에만 가능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친소반미나 친미반소를 해서는 안 된다. 이념은 자주통일이 되고 난 뒤에 그때 가서 인민에게 물어서 택하면 된다."
 
이념을 떠나 오로지 하나된 통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진보적 민족주의자 몽양 여운형.
 
이분들의 외침은 '민족주의'라는 감성의 영역에는 큰 울림을 주었다. 비록 방법론적 오류는 있을지라도 이분들의 '뜨거운 가슴'도 우리 민족의 사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라는 이성의 영역에서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분들의 '맹목적 민족주의'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건국에 깊은 상처만 주었다.
 
결국 필자는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당시의 국제 정세와 국내 상황을 냉철히 분석한 후 철저한 반공반소(反共反蘇)주의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국가를 건국한 그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로 생각한다(이 말이 백범과 몽양이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란 뜻은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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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축전의 이승만. 왼쪽은 존 하지 주한미군사령관, 가운데는 맥아더 원수. 사진=월간조선

    
4.냉철한 현실주의자
 
"히틀러가 지옥을 침공한다면 악마와도 기꺼이 동맹을 맺을 것이다."
 
처칠이 스탈린과의 동맹을 비난하는 영국 의회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결국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으며, 오로지 영원한 '국가이익'만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피를 흘려야 자손만대의 자유 기초를 회복할 것이다. 싸워라! 나의 사랑하는 동포여!"
 
2차대전이 끝나가는 시점부터 소련의 침략주의적 팽창주의에 주목하여 미국을 상대로 절대로 소련에 대해 타협정책을 써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 그는 누구보다 '적'과 '우방'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고 있었고, '국가이익'에 충실했다. 그만이 당시 우익진영의 지도자 가운데 북한을 점령한 소련의 의도와 이후 북한에서 벌어진 정치적 변화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파악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에 비판적인 세력들이 남북 분단의 씨앗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정읍발언'에 대해 살펴보자.
 
"무기 휴회된 미소공위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남한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공론에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미리 분단을 전제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자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미소 공위가 결렬된 상태에서 북한에서 이미 수립되어 활동중인 임시정부를 남한도 빨리 만들어 그에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敦晩單選 橋凡反分(돈만단선 교범반분). 돈암장의 이승만은 단독 선거를 주장했고 경교장의 백범은 분단에 반대했다."
   
통일이 없는 독립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며 끝내 남북협상을 주장하며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한 백범, 그는 정치에서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옳은 길이냐, 그른 길이냐'가 중요하다고 역설했지만 필자는 이 자체가 '비현실적인 주장'이라 생각한다.
 
거짓과 책략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신의와 성실로만 대응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이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의와 성실에 입각해서 상대방과 진실하게 협상하면 자신의 패는 공개되는 반면, 거짓과 책략이 무기인 상대방의 패는 모르게 된다. 따라서 조직의 운명을 책임진 리더는 신의와 책략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모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일개 평범한 범부가 아닌 조직의 운명을 책임진 리더라면 '옳고 그름'의 문제 못지않게 '현실, 비현실'의 문제도 중요한 것이다.
 
허상과 이상이 아닌 철저하게 '현실'에 기초한 정치를 추구하는 것, 필자는 이것이야말로 한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책임있는 지도자가 반드시 갖춰야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백범(白凡)이 이름 그대로 일개 범부(凡夫)의 '옳고 그름'에 집착한 '비현실적인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5.역사적 편가르기의 終焉
 
해방 직후 우리나라는 좌파 세력이 장악했으며, 1945년 8월로 시곗바늘을 돌리면 불과 3년 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객관적인 수치로 이를 확인해 보자.
 
먼저 1946년 9월 10일 미 군정이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래 한국 통치구조에 관한 여론조사'를 보면 사회주의 70%, 자본주의 13%, 공산주의 10%, 모름 7%였다. 또 우익 성향의 단체 ‘선구회’가 해방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이 뽑은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는 여운형(33%), 이승만(20%), 김구(17%), 박헌영(15%) 이관술(13%), 김일성(2%) 순이었다.
   
이관술은 조선공산당 재정부장을 맡고 있던 중,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6·25 발발 직후 처형된 인물이다. 결국 당시 국민의 70~80%가 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를 지지했으며 지식인들의 비중은 훨씬 더 컸다. 이런 상황에서 반쪽이나마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가 건국된 것은 필자가 보기에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썩은 가지를 잘라내지 않으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당에 먹히고 만다는 굳은 신념아래 철저히 반공의 외길을 걸어 마침내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한 우남, 필자는 이 하나만으로도 그의 역사적 업적은 훗날 그의 과(過)를 모두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뿐 아니라 2차대전 후 중국, 베트남, 쿠바, 동유럽 등 공산주의의 길을 걸었던 모든 나라들을 보라.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보다 더 잘 산 나라가 있었는가? 위성국이 종주국보다 더 잘 살 수는 없지 않는가? 이 말은 결국 우리도 '자유민주'의 길을 걷지 않고 '공산주의'의 길을 걸었다면 결코 소련이나 중국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국부(國父)'라는 평가부터 '남북분단의 원흉' 내지 '권력욕의 화신'이라는 평가까지 참으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우남, 아무리 역사적 평가는 불운의 영웅에게 관대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백범이나 몽양에 비해 터무니 없는 저평가를 받고 있는 우남.
 
우리 사회 내부에 그어진 '역사적 편가르기'의 38선도 이제는 휴전선, 더 나아가 평화선으로 바뀌어야 한다. 역사적 인물의 평가에 있어 이분법적인 논리에 사로잡힌 경직된 접근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에 대한 평가도 당연히 어떠한 선입견이나 편견도 없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반만년 역사상 가장 빛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한 우남, 어떤 이유로도 폄하될 수 없는 그의 위대한 업적이다. 과거 백환짜리 주화에 들어있던 그의 초상까지 볼 수 없는 현실이 중국의 모든 화폐에 들어있는 모택동의 초상과 비교되어 만감이 교차한다.
 
지금처럼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의 그의 외침이 약간은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역, 세대, 계층간 갈등으로 사분오열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통합을 부르짖는 그의 외침은 결코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한 전역에 세워져 있는 크고 작은 1만여 개가 넘는 김일성 동상, 그나마 몇 안 되는 동상까지 세워졌다가 철거되고 다시 세워지는 우여곡절을 반복하고 있는 그의 동상, 동상을 세우는 것도 역사고, 철거하는 것도 역사니, 다시 세우는 것도 역사가 아닐지?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그가 한 축사를 한 구절 소개하는 것으로 결론에 갈음한다.

“역사의 거울이 우리에게 비추어 보이는 이때에 우리가 민주주의를 채용하기로 30년 전부터 결정하고 실행하여 온 것을 또 간단(間斷)없이 실천해야 될 것입니다. 민권과 개인 자유를 보호할 것입니다. 민주정체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언론과 집회와 종교와 사상 등 자유를 극력 보호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40여 년 동안을 왜적의 손에 모든 학대를 받아서 다만 말과 행동뿐 아니라 생각까지도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 자유활동과 자유판단권을 위해서 쉬지 않고 싸웠던 것입니다.
 
국민은 민권의 자유를 보호할 담보를 가졌으나 이 정부에 불복하거나 전복하라는 권리는 받은 일이 없나니 어떤 불충분자가 있다면 공산분자 여부를 막론하고 혹은 개인으로나 도당으로나 정부를 전복하려는 사실이 증명되는 때에는 결코 용서가 없을 것이니 극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입력 : 2019-08-15]   서정욱 변호사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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