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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완성은 得道

글  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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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사랑, 참으로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멀리서 그의 기척만 느껴도 가슴이 쿵쾅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보고싶어서 떨리는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어떻게 행동하면 그가 날 더 사랑하게 될까 작전을 짜보기도 하고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글을 잘 쓰고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연애편지 앞에서는 말문과 글문이 막혀 버릴 수 있습니다. 진짜 사랑은 말과 글로 형언할 수 없는 세계와 비슷할테니까요.

2015년 을미년이 어느덧 꽃피는 춘삼월이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음력으로 1월이기에 꽃샘추위가 장난이 아닙니다. 하지만 자연은 위대합니다. 춘삼월의 자존심을 지키려는지 곳곳에선 꽃 피려는 조짐이 보이더군요. 생각만 해도 설레는 봄입니다.

꽃은 아름답지요? 철 모르던 시절에는 꽃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랑 고백을 위해 꽃 한다발을 안고 걸으면서도 꽃이 주는 찬란함을 알턱이 없었습니다. 마흔 중반이 되어서 자식을 키워보니 생활의 고단함 속에서 어느날부터인가 꽃이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피는 꽃은 모두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꽃의 전설은 유독 비극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더군요. 가슴 저린 비련도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비련의 전설을 담은 꽃과 별반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할수록 섭섭하고 외롭고 슬퍼지는 것도 꽃의 전설과 흡사한 것 같고요.

여러분, 최근 몇년간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있으십니까. 남편에게 혹은 아내에게… 꽃이 아름답다고 백날 말하면 뭐합니까. 꽃 한송이 선물하면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랑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긴긴 편지와 장황한 말보다는 몸으로 행동을 실천해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절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부부만 되면 달콤한 사랑의 언어에 자린고비가 되어 버립니다. "여보 사랑해"라는 표현에 왜 그리도 인색해 지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최근 저는 어떠한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름 아닌 남편·애인에게 피살여성 작년에만 114이라… 기사였습니다.  

듣기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지난해 한 해 동안 국내에서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최소 114명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합니다. 사랑노래를 부르며 알콩달콩 콩을 볶으며 살아도 시원찮을 부부가 서로를 헐뜯고 싸우는 것도 모자라서 상대를 주검으로 내 몰았다는 것이 끔찍하다 못해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가정폭력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에서 또 부부간의 다툼으로 폭력이 완전히 없어질리 만무하겠지요. 하지만 지난 날에 사랑한다며 서로를 그토록 그리워했던 추억을 떠올린다면 어떻게 폭언과 폭력으로 부부의 사랑이 끝을 맺을 수 있을까요. 지난날에 그토록 절절했던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불현 듯 장자(莊子)의 말씀이 뇌리를 스칩니다.

사랑은 도(道)를 깨닫는 것과 같다

남녀의 사랑은 부모자식간의 천륜과 다른 의미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을 때 몸에서 170여개의 뼈가 움직이는 고통을 겪는다고 합니다. 살과 피를 나눈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道가 아니라 본능의 영역이자 자연이라는 겁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천륜과는 다릅니다. 

남녀간의 사랑에는 본능에 지배받는 에로스의 영역을 무시할 수 없지만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을 낳고 키우는 부부일수록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마치 道(도) 닦듯이 끊임없이 인내해야만이 달성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므로 노력을 하면 사랑의 득도(得道)를 경험할 수 있다네요.

   
▲ 영화 <결혼전야>의 한 장면

사랑으로의 득도(得道). 사랑의 완성이 득도(得道)라고 합니다.

옛날 어르신들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귀 막고 3년, 입 다물고 3년, 눈 감고 3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또한 득도(得道)의 경지로 가야 한다는 가르침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자식은 득도(得道) 이후에 낳는 게 좋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모든 부부들은 에로스의 노예가 되어 사는 젊은 수절, 그러니까 득도(得道) 이전에 낳고 키워냅니다. 그 사랑으로의 득도(得道)를 위해 자식을 키워내는 과목도 포함되어 있는 셈이지요.

작년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 서초동 세 모녀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처음에는 가장(강모씨)이 생활고에 몰려 가족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한 비극으로 알려졌습니다. 뒤늦게 알고 봤더니 이해할 수 없는 살인이었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강씨는 서울에서 명문대를 졸업해서 5년 전까지 연봉 9000만 원을 받았으며 서초구에 11억 원짜리 아파트에 살았고 외제차를 타고 다녔던 소위 상위층 남성이었습니다.

그가 전무로 일했던 마지막 직장에서 실직하고 주식 투자로 27000만 원을 날린 암담한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자식과 아내를 죽일 만큼 밑바닥을 경험하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처자를 살해할 이유가 납득이 안 되고 의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실직을 왜 몰랐을까? 이유는 강씨는 아내에게조차도 자존심 상하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실직자가 된 강씨는 고시원 구석방을 얻어놓고 아내에게 실직의 사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집 담보대출을 받아서 아내에게 매월 생활비로 400만 원씩을 주며 딸을 80만원짜리 학원에까지 보냈습니다. 당연히 아내는 남편의 실직 사실을 알턱이 없었겠지요.  

강씨는 실직자였다고 해도 살던 집을 팔아서 빚잔치를 해도 몇억을 손에 쥘 정도였으니 절망할 이유가 없었을터인데 어찌해서 아내와 두 딸을 살해했을까요? 다름 아닌 평소 가정불화가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영과 잘 살기를 희망하는 아내를 실망시켜주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아내와 두 딸은 부푼 꿈을 안고 미래를 기대했겠지요. 현재 40평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10년 후에는 50평에 이사를 갔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말했을지 모릅니다.

강씨는 가장으로써 가족이 그동안 누리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그릇된 가장의 의무감에 괴로웠을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희망 없는 미래를 줄 바에 죽음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말했다고 합니다.  

만약 아내가 평소에 남편(강씨)에게 난 당신만 있어도 행복해. 돈이 무슨 소용이야. 당신 없으면 억만금을 줘도 싫어.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줘라고 했다면 실직자가 되어서 암담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최근 가족치료전문가인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박태영 교수는 가정의 불안이 개인의 애착형성 문제나 가정의 내부에서 생기는 관계의 문제가 세대로 되물림 되면서 발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연인간의 살인도 친족간의 살인도 결국 그 속사정엔 돈이라는 현실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최근에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 두 명과 시어머니를 살해한 포천의 그녀도 결국 돈이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자존심을 지키며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과연 돈이 많으면 진정으로 자존심이 덜 상하는 걸까요? 물론 돈은 나의 품위를 유지시키고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고 효도까지 화끈하게 할 수 있게 만듭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그 무엇은 돈이 해내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자존심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 자존심입니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돈에 의해 눈치를 보며 돈을 내 가치보다 더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건 정말이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자존심을 상하는 게 아니라 돈에 노예가 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요즘 돈이 없어서 자식을 안 낳겠다, 더 늦게 낳겠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조차 자식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자식은 천금과도 안 바꾸는 가치라고 인정받았습니다.

결국 ’사랑’이 모든 것으로부터 최선의 치료입니다. 힘들고 지친 일상과 암흑의 긴긴 터널을 저벅저벅 걸어나가기 위해서는 같이 손잡고 갈 수 있는 사랑이, 자식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요.

한 집안의 행복. 그 기초공사는 부부간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키스를 받고 사는 남성이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훨씬 어깨가 당당하고 돈을 잘 번다는 연구결과가 있더군요.

사실 난… 당신만 있으면 괜찮아

배우자에게 하루에 한번 말해 보십시오. 남편의 어깨가, 아내의 가슴이 훨씬 더 훈훈해지고 신명이 살아날 겁니다.

배우자로 인해 권태롭거나 힘들고 짜증이 날 때 한번 즈음 눈을 감고 뜨거웠던 지난날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가(그녀가) 내 곁에 와 준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지 않았습니까. 너무너무 고맙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지금. 바로 그(그녀와)와 살고 있습니다. ■ 


- 투비맘뉴스 이승주 편집장

 
 
 
 
 
 

[입력 : 2015-03-12]   이은영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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