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브리핑을 통해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LG유플러스-CJ헬로의 기업 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한다"고 밝혔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2016년 SK그룹의 CJ헬로(당시 CJ헬로비전) 합병을 불허한 바 있다. SK텔레콤-CJ헬로모바일(이동통신)과 SK브로드밴드-CJ헬로비전(방송)의 결합이다. 당시에는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 4위인 CJ헬로모바일의 합병이라 이동통신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성이 인정됐다. 유료방송 시장에서도 전체 23개 방송 구역 중 16개 시장에서 경쟁 제한성이 추정됐다. 양 사 합병 후 점유율 1위가 되는 곳은 21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LG유플러스와 CJ헬로의 합병은 상황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이동통신 시장의 경우 LG유플러스는 3위 사업자라 4위인 CJ헬로와 합병하더라도 점유율 상승 폭이 1.2%포인트(p)에 그친다. 방송 시장에서도 경쟁 제한성 추정 지역은 11개, 결합 후 점유율 1위 지역은 17개다.
이번에는 세계 시장 경쟁 가속화도 고려했다. 조 위원장은 "이번 기업 결합은 유료방송 시장을 비롯한 방송·통신 시장의 지형이 급변하는 변환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방송·통신의 융합이라는 산업 발전의 대세를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신속히 심사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번 기업 결합 심사를 위해 경쟁 제한성을 평가하기 위해 유료방송 시장을 두 개로 나눴다. '디지털 유료방송 시장'과 '8VSB 유료방송 시장'이다. 디지털 케이블 TV·인터넷(IP)TV·위성방송은 디지털 유료방송 시장에 포함된다. 아날로그 방송은 조만간 서비스를 종료함에 따라 가입자 대부분이 '8레벨잔류측파대'(8VSB)로 전환해 상품 시장에서 제외했다.
공정위는 디지털 유료방송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성은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결합 때만 생긴다고 봤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각 회사가 방송을 송출하는 23개 구역 중 11개에서 공정거래법상 경쟁 제한성이 추정돼서다. 1위 지역은 다섯 곳에서 열일곱 곳으로 늘어나며 2위 사업자와의 격차도 더 커진다.
공정위는 LG유플러스-CJ헬로 간 결합의 경우 "시장 점유율이 낮아 디지털 유료방송 시장에서 경쟁 제한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와 합병할 티브로드는 8VSB 케이블 TV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 사업자임에도 그동안 채널 수 축소, 채널당 단가 인상 등 행위를 하지 못했다. 고객이 IPTV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IPTV 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가 합병할 경우 8VSB 유료방송 시장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가격 인상을 초래할 수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높아진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8VSB 케이블 TV 요금 인상을 꾀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SK브로드밴드가 8VSB 케이블 TV 가입 인센티브(Incentive·유인책) 등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요금 할인을 없애면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CJ헬로도 마찬가지다. CJ헬로는 8VSB 케이블 TV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 사업자임에도 고객의 IPTV 이탈을 우려, 채널 수 축소 및 채널당 단가 인상을 하지 못했다. IPTV 사업자인 LG유플러스와 CJ헬로가 합병하면 8VSB 유료방송 시장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물가 상승률을 초과하는 수준의 케이블 TV 수신료 인상 금지 ▲8VSB 케이블 TV 가입자 보호 ▲케이블 TV 전체 채널 수 및 소비자 선호 채널 임의 감축 금지 ▲계약 연장 거절 금지, 저가·고가형 상품으로의 전환 강요 금지 ▲모든 방송 상품 정보 제공 및 디지털 전환 강요 금지 등의 시정 조처를 내렸다.
시정 조치 대상은 SK브로드밴드의 경우 8VSB·디지털 케이블 TV, LG유플러스는 8VSB·케이블 TV다. 양사 간 시정 조치 대상이 다른 것과 관련해 조 위원장은 "LG유플러스는 '8VSB 유료방송 시장-디지털 유료방송 시장 간 혼합 결합'에서만 경쟁 제한성이 있으나 SK브로드밴드는 디지털 유료방송 시장에서도 경쟁 제한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국내 유료방송시장이 통신 3강 체제로 재편되는 '미디어 빅뱅'이 8부 능선을 넘었다. 더군다나 통신 3사가 당초 우려했던 결합판매 제한·알뜰폰 분리매각 등의 조건을 붙이지 않았다. 약 3년 전 공정위가 독과점을 이유로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불허한 것에서 전향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에 통신업체는 반색하며 앞으로 남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M&A 심사 절차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향후 정부의 M&A 절차가 마무리되면 덩치를 키운 통신사들 간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며 서비스 질이 올라가고, 더 나아가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거대 미디어 업체에 맞설 경쟁사로 성장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