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양에서 열린 남북 축구경기가 0-0 무승부로 끝났다. 29년만의 대결이었던 이날 경기에서 경고가 넉장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하지만 양팀 모두 득점 없이 끝났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0월15일 오후 5시30분 북한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을 상대로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조별리그 3차전을 치렀다.
북한이 취재진, 응원단의 방북을 허용하지 않은데 이어 생중계까지 협조하지 않아 정확한 경기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현지에 파견된 대한축구협회 직원이 경고나 퇴장, 골, 교체 등의 정보만 짧게 공유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의 문자 중계도 구체적이지 않았다.
눈이 아닌 글로 전달받은 경기 내용은 경고 4장에서 엿볼 수 있듯 다소 치열하게 펼쳐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과 북한이 나란히 2장씩 받았다. 당초 관중 4만명이 입장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기는 이례적으로 관중 없이 치러졌다. 외신 기자들도 입장하지 못했다.
초반부터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선수들이 한 차례 충돌했고, 이로 인해 경기감독관이 안전요원을 대기시켰다. 북한이 전반 30분 리영직의 반칙으로 먼저 경고를 받았다. 후반 1분에는 미드필더 리운철이 추가로 옐로카드를 한 장 더 받았다. 거친 태클인지, 과도한 몸싸움인지 정확한 반칙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태극전사들도 강하게 맞섰다. 후반 10분 김영권(감바 오사카), 후반 17분 김민재(베이징 궈안)가 나란히 경고를 한 장씩 받았다. 한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37위, 북한은 113위로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이 한 수 위다. 그러나 평양 원정이라는 변수 속에서 승부를 내지 못했다.
알려진대로 남북 대결은 전파를 타지 못했다. 중계권을 갖고 있는 북한측이 무리한 금액을 요구하면서 소득 없이 협상 테이블이 접힌 탓이다. 남자축구대표팀 경기가 전파를 타지 못하는 것은 1985년 3월 네팔에서 열린 1986 멕시코월드컵 예선전 이후 34년 만이다.
익숙하지 않은 생중계의 무산은 웃지 못 할 촌극으로 이어졌다. 대한축구협회는 현장에 파견된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 감독관을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키르기스스탄 출신 경기 감독관은 북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어 외부와의 소통이 가능했다. 반면 대한축구협회에서 파견된 직원은 휴대폰은 물론 컴퓨터를 활용한 메신저까지 사용할 수 없어 정보 전달에 애를 먹었다.
전달 과정도 복잡했다. 감독관이 AFC 말레이시아 본부로 내용을 넘기면, 이를 AFC가 대한축구협회 홍보실로 보낸다. 이 정보를 대한축구협회가 취재기자들과 SNS에 공지한 뒤에야 팬들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용은 경고와 교체 선수, 전체적인 분위기 등에 국한됐지만 경기 감독관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알 수 없는 완벽한 '깜깜이 매치'가 될 뻔 했다. 이번 남북 대결이 이색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일반 관중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 축구의 성지로 통하는 김일성경기장은 5만 관중이 수용 가능하다. 전날 양팀 관계자들이 참석한 미팅에서 북한측은 '4만명 정도가 올 것'이라고 한국측에 밝혔지만, 정작 경기날에는 관중석을 개방하지 않았다. 2년 전 여자축구 남북 대결 당시 만원 관중을 모아놓고 한국 선수들의 기를 꺾으려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북한은 2005년 6월 일본전을 관중 없이 치른 바 있다. 그해 3월 김일성경기장에서 치러진 이란전에서 0-2로 패하자 흥분한 관중이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바람에 AFC로부터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전은 제3국인 태국에서 열렸다.
무관중 경기는 AFC측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AFC와 사전 조율된 사항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홈팀이 갖는 최대 이점인 자국팬들의 응원까지 포기한 배경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이날 경기에 대해 “실망스러웠다"고 밝혔다. FIFA 홈페이지에 게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인판티노 회장은 이날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남북 2022 카타르월드컵 예선전을 관람한 후 "역사적인 매치를 위해 꽉 찬 경기장을 볼 수 있길 기대했지만 관중이 전혀 없어서 실망했다"며 “경기 생중계, 비자발급, 해외 언론의 접근권과 관련한 문제들도 놀라웠다"고 비판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우리에겐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당연히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한편으론 한순간에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다면 순진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역 협회에 해당 문제들을 제기했으며 축구가 북한과 세계 다른 나라들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평양 방문은 처음인데 축구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한 일들을 볼 수 있었다"며 "북한에는 2500만 명이 살고 있는데 축구는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축구가 작은 방식으로라도 여러 사회 내 우리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 많은 것들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