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루리아는 로마 이전 이탈리아 중북부를 중심으로 성장한 고대 국가다. 기원전 10세기부터 1000년 가까이 지속한 지중해 고대 문명이다. 당대 역사가들에게 에트루리아인은 지중해에 살았던 사람들 중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기원, 언어, 종교는 베일에 싸여 있다.
피렌체 국립고고학박물관,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등이 소장한 여행하는 부부가 묘사된 유골함, 신전 페디먼트, 청동상, 석상, 석관, 금제 장신구 등 300여점을 5부로 나눠 선보인다.
1부 '지중해의 가려진 보물, 에트루리아'은 에트루리아 역사와 지리적 환경 등 에트루리아 전반을 소개한다. 지중해 세계에서 문화가 어떻게 교류되는지를 이야기한다. 기원전 4세기 말에 응회암으로 저승의 신(神) '반트(Vanth)'를 묘사한 조각상, 기원전 530~520년 테라코타로 제작된 긴 항아리 '아테네식 흑화 암포라'를 선보인다. 에트루리아 무덤 등을 담은 영상이 한 쪽 면을 장식했다.
2부 '천상의 신과 봉헌물'은 에트루리아인 삶 속 신의 이야기다. 누구보다도 종교와 신에 관심이 많고 심취한 삶을 살았던 에트루리아인은 이웃 그리스 종교관도 수용했다. 에트루리아의 티니아(그리스의 제우스, 로마의 유피테르)는 우니(그리스의 헤라, 로마의 유노), 멘르바(그리스의 아테나, 로마의 미네르바)와 함께 중요시된 신이다. 이 세 신을 모신 신전이 에트루리아의 모든 도시에 세워졌다. 기원전 3세기 테라코타로 제작된 신전 모양 유골함,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로 제작된 여성 인물이 묘사된 장식 기와들, 불치신전의 페디먼트를 장식한 기와들, 점성술사를 기념하는 기념비, 점성술사 유골함 뚜껑 등이 에트루리아 종교를 이야기한다.
3부 '에트루리아인의 삶'에서는 시, 음악, 무용, 연회를 즐긴 에트루리아인의 삶을 다룬다.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무역, 항해, 전쟁에 적극적이면서도 문화를 즐기고 영위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것은 에트루리아 문명의 중요한 특징이다. 에트루리아인이 남긴 무덤 벽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청동으로 제작된 투구, 방패, 보호대, 전차 등은 당시 에트루리아 귀족층을 이뤘던 전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금으로 만든 브로치, 머리핀, 팔찌, 월계관, 반지, 귀걸이 등에서 당시 에트루리아 장인의 누금세공법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추모용 조각상인 '모자상'은 당시 여성들이 사회에서 주도적 구실을 했음을 말해준다. 이 조각상에는 라틴 문자에 영향을 준 에트루니아 문자가 새겨져 있다. 이 조각상은 이탈리아 볼테라 지역 밖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인다.
5부 '로마 문화에 남은 에트루리아'에서는 에트루리아에서 출발한 고대 로마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테베레 강가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도시 외관을 본 떠 포장된 도로, 광장, 수로시설, 대규모 사원을 갖춘 도시로 발전했고, 세계 제국이 됐다. 로마에 남겨진 에트루리아 영향 중 종교적 영역과 권력의 상징성은 중요한 부분이다. 전시된 루니 신전의 페디먼트 남성 조각상들은 테라코타로 제작됐다. 이후 로마에서 대리석으로도 만들어졌다.
노희숙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청동기, 옹관묘, 금 세공 기술로 문명을 이룬 에트루리아는 이후 로마에 흡수됐다"며 "백제에 흡수됐던 마한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