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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의 한글 책...고국 품으로 돌아오다

덕온공주가 손수 쓴 ‘자경전기’ ‘규훈’ 등 총 68점 환수

글  김재홍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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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1822~1844)가 한글 책들이 고국의 품에 안겼다.
  
문화재청은 덕온공주가 한글로 쓴 ‘자경전기(慈慶殿記)’와 ‘규훈(閨訓)’을 비롯한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를 작년 11월 미국에서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는 윤씨 집안으로 하가(下嫁·공주가 시집을 감)한 조선 23대 임금 순조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德溫公主)와 양자 윤용구(尹用求·1853~1939), 손녀 윤백영(尹伯榮·1888~1986) 등 왕실 후손이 3대(代)에 걸쳐 작성한 한글 책과 편지, 서예작품 등 총 68점이다.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의 귀환은 국내기관 간 협력을 통한 문화재 환수의 모범 사례로,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국립한글박물관이 각자의 전문성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이뤄낸 성과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유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수집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제공했고,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소장자와 접촉과 매입 협상을 통해 유물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환수된 자료들은 조선왕실의 한글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이중에서도 덕온공주가 아름다운 한글 궁체로 손수 쓴 ‘자경전기(慈慶殿記)’와 ‘규훈(閨訓)’이 주목을 끈다.
  
두 책은 모두 본래 한문으로 쓰여 있던 것을 덕온공주가 한글로 번역해 작성한 자료로, 덕온공주가 쓴 것으로는 이번에 처음 발견되어 희소가치가 높다.
자경전기(慈慶殿記)는 1808년 순조가 정조비 효의왕후의 명(命)에 따라 창경궁 자경전에 대해 쓴 책이고, 규훈(閨訓)은 여성들이 지켜야 할 덕목과 예절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에 환수된 자료에는 왕실에서 작성한 한글 편지와 왕실 여성들을 위한 한글 역사서도 다수 포함돼 있다.
 
한글 편지들은 덕온공주의 어머니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1823~1887)에게 딸의 근황을 묻는 편지를 비롯해, 신정왕후(추존왕 익종 비), 명헌왕후(헌종 계비), 철인왕후(철종 비), 명성황후(고종 비) 등이 직접 쓰거나 상궁이 대필해 덕온공주 집안에 보낸 것들이다.
  
이 중에는 조선 최고의 한글 명필로 알려진 궁중여성 서기 이씨(書記 李氏)가 대필한 편지도 있어 사료적 중요성이 크다.
참고로 신정왕후(神貞王后)는 조선 제23대 순조의 세자인 익종(翼宗)의 비이자, 제24대 헌종의 어머니다.
  
한글 역사서에는 ‘정사기람(正史紀覽)’과 ‘여사초략(女史抄略)’ 등이 있다. 정사기람은 덕온공주의 아들 윤용구가 고종의 명을 받아 왕실 여성들을 위해 쓴 역사책이다. 여사초략은 윤용구가 당시 12살이던 딸 윤백영을 위해 여성과 관련된 역사를 발췌해 작성한 책이다.
   
이외에도 덕온공주의 손녀인 윤백영의 서예작품도 주목할 만한다. 윤백영은 일제강점기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한글 궁체로 쓴 서예작품으로는 처음 입선했다. 전통적인 한글 궁체를 현대적인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환수된 68점의 한글 자료는 조선 왕실 여성들의 생활 속에서 한글이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또 왕실에서 사용했던 아름다운 한글 궁체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지낸 국어학자 이종덕 박사는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 자료는 기존에 소개된 단편적인 왕실 편지나 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자료로서 왕실 부마 집안의 일괄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왕실인물의 개인적인 삶을 엿볼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 자료’를 국립한글박물관에 이관, 향후 전문적으로 연구·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덕온공주가 쓴 자경전기
 
 
‘자경뎐긔’는 ‘자경전기(慈慶殿記)’의 원문에 토를 달아서 한글로 쓰고 이어서 우리말 번역문을 적은 것으로, 단아한 글씨는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의 친필이다. 표지에 제첨(표지에 직접 제목을 쓰지 않고 다른 종이(쪽지) 등에 별도로 제목을 써서 붙인 것)은 쓰지 않았다. 한문으로 된 원문 ‘자경전기’는 순조(純祖·1790~1834)가 효의왕후(孝懿王后·정조 비·1753~1821)의 명을 받들어 1808년에 지었다. 자경전(慈慶殿)은 1777년 정조(正祖)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의 양화당(養和堂) 옆 작은 언덕에 지은 전각이다. 후에 효의왕후가 거처하였던 곳이기도 하나, 현재는 터만 남았다. 자경(慈慶)은 자전(慈殿, 임금의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2.덕온공주가 쓴 규훈 일부
 
 
덕온공주(德溫公主·1822~1844)가 규훈(閨訓) 외편(外篇) 독륜(篤倫)의 봉선장(奉先章)과 교자손장(敎子孫章)의 우리말 번역문을 단아한 궁체로 적은 것이다. 내용은 부녀자가 지켜야할 덕목이나 예절 등을 기록한 수신서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
 
3.순원왕후가 윤의선에게 보낸 편지
 
 
순원왕후(純元王后·순조 비·1789~1857)가 사위 윤의선(尹宜善·1823~1887)에게 보낸 편지다. 윤의선이 감기와 기침을 심하게 앓아 걱정하고, 덕온공주가 궁에 들어와 있어 든든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윤의선은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와 1837년에 혼인해 남녕위(南寧尉)에 봉해졌다. 그러나 덕온공주와의 사이에 자녀가 없어 윤용구(尹用求·1853~1939)를 양자로 들였다.
 
4.신정왕후가 광산김씨에게 보낸 편지
  
 
신정왕후(神貞王后·익종 비·1808~1890)가 윤용구(尹用求·1853~1939)의 첫 번째 부인인 광산김씨에게 보낸 편지이다. 1874년 2월 8일에 명성왕후가 원자(후에 순종)를 출산한 기쁨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5. 윤용구가 쓴 정사기람(正史紀覽)
 
 
1909년 윤용구(尹用求·1853~1939)가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중국 상고시대부터 명나라 말기까지의 역사를 추려서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책이다. 윤용구는 서문에서 한문으로 된 중국의 역사를 왕실의 여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6. 윤용구가 쓴 여사초략(女史抄略)
 
 
윤용구가 중국 역사에서 모범적인 여인 30명의 행적을 사람별로 나눠서 한문으로 먼저 적고 행간에 붉은색으로 토를 달았으며, 이어서 한글로 번역을 한 것이다.
 
7.윤백영이 쓴 환소군전(桓少君傳)
 
 
윤백영(1888~1986)이 47세 되던 1934년에 환소군(桓少君)의 전기를 궁체로 쓴 작품이다. 환소군은 서한(西漢) 포선(鮑宣)의 처로, 검소하고 어질며 사리에 밝았다고 전한다. 윤백영은 한글 궁체로는 처음으로 조선미술전람회(1929년, 1931년)에 입선하였으며, 전통적인 한글 궁체가 현대의 예술 작품으로 연결되는 과도기에 가교 역할을 하였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입력 : 2019-01-17]   김재홍 기자·시인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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