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제5회 아시아 태평양 미래 네트워크(Asia Pacific Futures Network, 이하 APFN)에서 논의된 여러 주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급변, 위험, 불평등 등 3가지를 들 수 있다. 필자도 지난 1년 국회미래연구원이 예측한 2050년 미래를 '2050년의 경고'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으니 3가지 변화상의 확산에 일조한 듯싶었다. 미래는 늘 비관을 먹고 사는 것일까.
이 세계가 빠르게 변화한다는 사실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피부로 느끼고 있다. 세계가 경쟁하듯 변화를 추구하고 받아들이니 급변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의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히 연결되어 한 곳의 변화가 다른 곳으로 빠르게 번져나간다. 이렇듯 통제하기 어려운 급변의 세계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다.
급변의 결과에 대해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기후변화는 더욱 급진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지만 세계와 각국의 대응은 느리고 안이하다는 것이 2019년 APFN의 공통적 의견이었다. 인공지능 등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도 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급변의 영역이다. 호주의 한 미래연구자는 인공지능이 지금은 인간의 활동을 보조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좀 더 멀리 내다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고 세계는 인공지능 중심으로 운영될 것으로 예측했다.
태국,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의 연구자들뿐 아니라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온 연구자도 인공지능의 인간 일자리 대체문제를 심각한 현상으로 언급했다. 한 연구자는 "세계의 젊은층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들이 일할만한 일자리는 부족하며 게다가 인공지능의 인간 일자리 대체 현상도 벌어져 이들의 불만은 폭발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젊은세대의 불만이 세대간 갈등으로 확산된다는 점도 감지된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운 것에 대해 젊은세대는 앞선 세대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세대간 갈등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제 막 19살이 된 대만의 한 대학생은 "꿈을 안고 사회로 나가려는데 세상은 문제투성이고 전망도 부정적"이라며 "이런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미래의 주역이 될 청년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지만 현재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는 이들의 목소리가 덜 반영되고 있다는 점도 논의되었다.
노령화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여전히 청년보다 장년, 노인세대에게 정치권력이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청년들이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제도로서의 위기가 아니라 현실 반영의 왜곡 때문이다.
이 세계는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는 의견도 2019년 APFN의 키워드였다. 국제형사기구(Interpol), UN 식량농업기구(FAO) 등에서 온 발표자들은 첨단 과학기술을 악용하는 테러의 위험뿐 아니라 인수공통감염의 원인이 되는 새로운 질병의 확산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특히 FAO에서 생물보안(bio-security)을 연구한 학자는 인구의 증가, 여행의 증가, 토지사용의 변형, 생물다양성의 감소, 기후변화, 물질 소비의 증가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 등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신종질병의 발생 및 확산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세계는 더욱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주장도 빈번히 제기되었다. 싱가포르 정부에서 온 미래연구자는 고령화, 자동화, 불평등을 3대 미래이슈로 꼽았고 유네스코(UNESCO)의 미래연구자도 경제적 양극화, 불평등이 미래세대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불평등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제뿐 아니라 기본자산제(universal basic assets)도 논의했다. 기본자산제는 전통적인 토지의 공유뿐 아니라 디지털 데이터, 디지털 통화 등도 공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기술발전에 따른 과실을 적절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철학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뉴질랜드 정부가 올해 들어 처음 도입한 웰빙 예산(wellbeing budget)도 빈곤과 정신건강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위기의 시대, 비관의 분위기를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여러 국가와 기관이 미래를 준비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희망의 요소로 꼽을 수 있다. 유네스코, 아시아개발은행, 인터폴, 유엔개발기구 등 세계기구가 미래연구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태국,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정부차원에서 미래연구를 지속한 국가 외에도 지난해 처음으로 2050년을 전망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아르메니아뿐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도 활발하게 미래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데 시민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시민들의 정보 접근권(access to information)을 향상하기 위해 'a2i'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시민 중심의 정부를 모토로 내건 방글라데시는 교육, 재정, 건강, 농업 등에서 시민들이 쉽게 정부정책에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했다.
우주베키스탄 정부는 지난해부터 시민참여예산 프로그램을 신설해 시민들이 스스로 공동체에 필요한 예산을 요구하고 배정받는다. 우주베키스탄에서 온 연구자는 시민참여예산이 미래를 준비하고 대응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되기를 희망했다.
또 하나의 희망은 아시아 곳곳에서 글로벌 문제(예컨대 기후변화, 불평등 확산 등)를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자원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필리핀, 중국 상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호주, 대만 등에서 미래연구자들은 사회활동가들과 함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민들이 스스로 미래준비 능력을 향상하고 지역의 자원으로 세계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경험을 확산할 때 이 세계는 조금은 덜 비관적인 미래를 전망할 수 있지 않을까.
[입력 : 2019-09-22]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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