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사진가 김동우 씨가 중국에서부터 중앙아메리카까지,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에서 이런 ‘뭉우리돌’들의 흔적과 그 후손 등을 기록한 사진들을 공개했다.
“제가 원래 사진을 잘 찍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여행하면서 알았죠.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가 강재훈, 이재갑에게 다큐멘터리 사진을 공부하게 되면서 제대로 작업해 보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전 세계에 어떤 독립운동 유적지가 있는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남미, 호주 등을 제외하면 전 지구적으로 우리의 보석 같은 독립운동 사적지가 흩어져 있었어요. 이민의 역사가 독립운동의 역사로 발전된 곳도 많았고요. 나라를 떠났는데 돌아갈 나라가 없어져 버린 거죠.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린 우리 조상들은 눈물 나게도 그 곳에서 나라 걱정에 모금을 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시작해요. 와, 정말 뭉클했어요. 맘이 동한 거예요. 작가 스스로 마음이 움직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저랑 딱 맞는 거였죠. 여행을 좋아 하니 맞았고, 사진 작업으로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가치가 있었고요."
물론 쉽지 않았다. 철저하게 조사해 갔지만 가보면 표지판 하나 없고, 과거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곳이 많았다. 그냥 텅 빈 공간, 이제는 아무 흔적조차 없어 주변과 전혀 차별성 없는 공간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진으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가 가장 고민이었다.
“이런 곳에서 과거를 소환해야 하는 일이 제 부족한 실력으로는 참 어렵더라고요."
배경과 인물이 반투명하게 겹쳐지는 사진이 있다. 합성일까, 다중노출일까. 셔터를 오래 열고 반은 인물을 찍고, 반은 인물 뒤 벽을 찍어 투명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2, 3, 4세···. 이제 한국인의 모습조차 희미해지는 후손들의 시간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그는 “과거에서 지금으로 오는 그 긴 시간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스러지고 사라져버린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버린 교과서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역사, 결국 또렷하지 않은 것, 시간이 흐르면 더욱 멀어져 점점 더 기억에서 사라질 불과 100년 전 역사를 말하고 싶었다.
다른 방식을 쓴 사진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는 날짜가 잘 맞았다. 장인환, 전명운 의거일을 며칠 앞두고 도착했다. 정확하게 110년 전 9시30분에 있었던 일, 시간을 맞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의 장인환, 전명운 의거 기념행사를 촬영했다.
“두 가지 풍경이 오버랩되면서 묘한 여운이 있더라고요. 거기에 장인환, 전명운 의사 흉상이 있긴 한데 그 주변이 너무 산만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이게 바로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했어요."
멕시코에서는 애니깽 밭으로 선조들이 일을 시작한 시간인 새벽 5시에 맞춰 나가 그들이 100여년 전 봤을 풍경을 찍었다. 어둑발이 지워지기 전 유까딴의 따가운 햇빛이 쏟아져 내리기 전의 고요를 찍고 싶었다. 이민의 역사가 독립운동에서 확장한 미국, 멕시코, 쿠바에서는 그들의 시작이었던 애니깽과 사탕수수밭 등을 같이 작업했다.
촬영할 때마다 울컥했다. 감정이 요동쳤다. 냉정하게 접근해야하는데 쉽지 않았다. 햇볕이 내려 꽂히는 애니깽 밭에 서 있으면 얼마나 고됐을까, 그리고 이들이 4년 간 계약 노동자로 일한 뒤 멕시코 땅에 독립군 양성학교를 세우는데 얼마나 고향에 가고 싶었을까, 얼마나 조선 땅에 있는 가족들을 부둥켜안고 울고 싶었을까, 고향친구들을 만나 밤새 탁주를 기울여 보고 싶지 않았을까, 매일 고향 꿈을 꾸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면 그저 아팠다.
후손들은 자신을 찾아 줬다고 반가워했다. 밥을 차려주고, 인터뷰 중 김치를 내오기도 했다. 밥 한 끼, 김치 한 조각이었지만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 중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적지가 많았다. 여기를 누가 찾겠나 싶은 생각에 사명감으로 기록하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감정을 추스르며 정리하지 못한 글을 쓰려는데 모니터 앞에만 앉으면 자꾸 엉엉 울게 돼 버렸다. 괜히 이런 작업을 해서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후회하기도 했다. 책을 쓰는 작업이 여러 가지로 힘들었던 이유다.
“후손들을 촬영하면 저 스스로 숙연해지더라고요. 의자에 앉아 있는 분들을 촬영할 때 제가 무릎을 꿇으면 딱 맘에 드는 높이로 사진이 찍히더라고요. 그러면서 참 죄송하고,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매번 촬영했어요."
김 작가는 “아직도 미답지역이 많다"며 동남아, 일본, 만주 등지에 흩어져 있는 어마어마한 독립운동사를 2차 작업으로 도전할 생각이다.
“여행 전 가지고 있던 일산의 작은 아파트 하나를 팔아 작업했습니다"
은행 빚을 갚고 보니 얼마 되지 않은 작업비로 모든 지역을 다 작업할 수는 없었다.
“일단 내가 먼저 세상에 이런 작업이 있고, 거기에는 ‘패배는 했지만 실패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사가 담겨 있다는 걸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뒤 2차 작업은 또 길이 생기지 않겠나 기대를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