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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웨이' 개척자 김창호의 삶과 죽음...“처음 보는 빙하·설산을 발견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14좌 무산소 등정 베테랑 산악인...과정과 새로운 루트 개척을 중시한 ‘登路主義者’

글  백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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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雪山)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산악 전문기자 한필석 전(前) '월간산' 편집장의 말이다. 그는 현장취재 차 6000m 이상의 고봉(高峯)을 10여 차례 등반한 적이 있는 베테랑 ‘산(山) 기자’다. 그런 만큼 전문 산악인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잘 안다. 그는 2016년 월간조선 3월호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영화 '히말라야'가 주목을 받을 때였다.
     
"산에서, 특히 하나의 팀으로 등반하는 히말라야에서 동료를 잃는 슬픔은 산악인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이자 아픔이다.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 무기력한 자기 자신에 대한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을 여러 차례 겪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도 없지 않다. 남미대륙 최고봉 아콩카구아(6959m)에서 혈육 같은 선배의 실종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고, 에베레스트에서는 2007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가까이 지내던 세 후배의 주검을 보며 슬퍼했다. 그때마다 산이 그렇게 밉지 않을 수 없었다."
             
 
해발 5300m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각종 물품을 공수하거나 환자를 후송하는 헬리콥터가 종종 베이스캠프를 찾아온다. 사진=월간산
 
이번 사고로 유명(幽明)을 달리한 김창호 대장과 유영직, 이재훈, 임일진, 정준모 대원들의 사고 소식을 접한 그에게 아픈지만 멈출 수 없는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히말라야. 고대 산스크리트어(語)의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居處)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두 단어를 결합한 복합어다.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히말라야 산맥(山脈)은 동서(東西) 길이가 2400km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도 품고 있다.
      
설연(雪煙) 휘날리는 설봉, 보석처럼 반짝이는 침봉과 설벽(雪壁)은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때문에 설산의 정상(頂上)에 올라서는 히말라야 등반을 일생의 버킷리스트(The 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로 삼는 산악인이 많다.
      
하지만 산은 아름다움만 가진 게 아니다. 눈사태나 크레바스(crevasse·빙하나 눈 골짜기에 형성된 깊은 틈새)와 같은 위협도 있고, 등반자 스스로 극심한 고소증세에 시달리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 설맹(雪盲) 증세, 추락사고 등으로 ‘산’에 도전하는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사고 직전의 한국 원정대원들. 사진 왼쪽부터 임일진 영화감독, 김창호 대장, 이재훈 대원, 유영직 대원. 사진=네팔 현지 언론 '카트만두포스트' 캡처
  
김창호 대장은 생전(生前) 동료 산악인의 죽음을 옆에서 몇 차례 지켜봤다. 2007년 박영석 대장이 이끈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에 속했을 때 후배 오희준과 이현조의 사고를 옆에서 지켜봤다. 2011년에는 가을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사라진 박영석 대장을 찾아 직접 나서기도 했고, 2013년에는 역시 에베레스트에서 자신과 함께 인공산소의 도움 없이 정상에 올랐던 동료 서성호를 잃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먼저 간 선후배 산악인들과 같은 길을 걸었다
         
김 대장은 과거 ‘월간산’과의 인터뷰에서 "지구상에는 아직도 미지의 산과 빙하들이 많다“면서 "이런 빙하나 설산을 발견하는 순간은 정말 가슴이 벅차오른다. 거기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평소 "내가 가진 힘만으로 산에 오르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가 무(無)산소, 무(無)동력 등반을 고집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용기’ 덕분에 한국 산악계에 새로운 기록도 썼다. 2013년 세계에서 14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무산소 등반에 성공했다.
   
  
멀리서 바라본 구르자산. 김창호 대장과 대원들의 영혼이 10월 13일 이곳에 잠들었다. 사진=네팔 현지 언론 '카트만두포스트' 캡처
   
김 대장의 철학은 ‘등로주의(登路主義)’로 요약할 수 있다. 이미 알려진 코스를 뒤따라가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달리 ‘등로주의’란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 그 ‘과정’을 중시하는 등반 철학이다. 그만큼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등반원칙이기도 하다.
           
김 대장이 이번에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를 꾸린 것도 산악인들에게 오지(奧地)로 알려진 ‘구르자히말’의 새로운 루트를 뚫으려고 했다. 성공할 경우 ‘코리안웨이’라고 이름 지으려 했다.
       
김 대장은 신기록이 아니라 등반 자체를 중요시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집으로 돌아와야 등정이 완성된다"고 했고, “등산이 좋은 점은 1·2등을 가리는 게 아니라 동료랑 손을 잡고 같이 정상을 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산에 관한 한 ‘고집’도 셌다. 등반 도중 80m를 추락해 갈비뼈가 부러진 적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등정에 성공한 적이 있다. 파키스탄 오지에서는 권총강도를 만나 죽을 뻔했다.
   
산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았던 고(故) 김창호 대장. 산악인의 삶과 죽음을 글로 써온 한필석 전 월간산 편집장은 "생사(生死)를 떠나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는 산악인들의 ‘작은’ 꿈은 그래서 숭고하다"고 했다.
  
김창호 대장과 유영직, 이재훈, 임일진, 정준모 대원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 했던 그들의 꿈은 '진정' 아름답다. 고인의 명복(冥福)을 빈다.
 

[입력 : 2018-10-14]   백두원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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