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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칭 ’자식낳기운동본부’ 회장이오” (강부자 인터뷰)

글  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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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주
● 아카데미상보다 신사임당상을 받고 싶다.
● 연예계에서 ‘자식낳기운동본부 회장’님으로 통하다
● 고대광실에서는 웃음소리 안 나온다.
● 찌개냄비에 여러 식구가 숟가락 넣으면서 배운다.
● 아무리 잘나더라도 부모 앞에서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
● 애 키워줄 부모형제 없으면 집에 들어앉아라.
● 13남매 둘째딸인 효녀 배우 남보라 기특하다.
● 제왕절개하고 일주일 후에 자결신 찍어낸 억척 연기자.
● 완벽 할머니 연기를 위해 몸빼바지 안에 고무줄 늘어진 팬티 입었다.

강부자(姜富子) : 본관 진주. 1941년 논산 출생. 충남 강경여고, 충남대 국문과 중퇴. KBS TV 탤런트 2기(1962). 극단 산하 입단(1962), TBC 탤런트 전속 변경(1964), 연기생활 52년간 대표작품으로는 <정경부인>, <옥녀> <비둘기가족>, <상록수>, <인목대비>, <별당아씨>, <목욕탕집 사람들>, <불굴의 며느리>, <넝쿨째 굴러온 당신>,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연극 <천정엄마의 2박3일> 등 다수

 

“내 꿈은 80세까지 건강하게 연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연기대상’이나 ‘아카데미상’을 받는 게 아니라, ‘신사임당상’을 받는 거예요.”

배우 강부자가 어느 공식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다. ‘신사임당상’은 1975년 한국 여성의 표상이 되는 신사임당의 얼을 높이 기리기 위해 율곡의 고향인 강원도에서 만든 상으로 매년 어진 인품과 부덕을 갖춘 훌륭한 어머니를 선정해 수여하고 있다.

아무리 나이 든 배우라도 레드카펫 위에서 아카데미상 수상소감을 말하는 걸 더 꿈꿀 수 있을텐데, 훌륭한 어머니상을 받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 의아하면서도 짠한 감동으로 밀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강부자는 항상 어떤 자리에서든지 후배를 만나면 “제 아무리 잘나서 성공해도 훌륭한 어머니로 존경을 못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사람이 일평생 살아가는데, 어느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의 어미로 살아가는, 그것부터 잘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연기자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강부자를 향한 인터뷰콜은 이 같은 덕담에 감동했던 내 기억 어딘가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강부자라면 우리가 왜 자식을 낳아야 하고, 왜 어머니라는 걸 포기해선 안 되는지에 대한 근원적 해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였다.

“출산… 나만큼 열심히 애 낳으라고 얘기하는 사람 없을 거야. 누구라도 만나면, ‘큰 애가 몇 살이야?, 얼른 낳아, 얼른 둘 더 낳아’ 내가 아주 입에 붙었어요. 옛날에 강석우(배우)가 둘 낳았을 때 ‘빨리 하나 또 낳아’ 했더니, ‘에미가 싫데요 반대해요’ 하더라고. 요즘 만나면 날 붙잡고 ‘너무 후회스러워요 그때 말씀 들을 걸’ 그래요. 다 그렇게 후회하는데, 왜 그렇게 애를 안 낳으려고 할까, 너무 이기주의라 그래. 그러는 나도 둘 밖에 못 낳았지만…”


고대광실에서 효자 효녀 안 나온다

드디어 강부자(74)를 만났다. 드라마에서 보던 몸빼바지 입은 할머니가 아니라 차분하고 사려 깊은 지혜로운 어른의 모습으로 약속 장소에 나와 주었다.

거두절미하고 고마운 인터뷰였다. 강부자는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또렷하고 단호한 음성이었다. 익숙한 특유의 말투 속에 살아있는 논리적인 어조와 발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강부자 답게 기자에게 ‘(자식은) 안 되는 건 어떤 일이 있어도 안 되게 키워야 제대로 된 어머니’라며 “자식에게 NO를 할 수 있고, NO의 이유를 정확하게 일깨워줘야 훗날 제대로 사람 구실하면서 살 수 있고, 그런 개인이 모여야 세상이 바르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마치 ‘지금 이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사고의 8할이 봐주고 눈감아주기 때문이고, 그것도 어머니들이 잘못 키워서 그런 것 같다’고 꾸짖는 듯했다.

강부자는 연예인들 사이에 ’큰어른’으로 통한다. 후배 연기자들 중에는 “강부자 선생님과 대화하면 뭔지 모르게 꾸지람을 들을 것 같아서 어렵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강부자 선생님과 대화하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며 고마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무엇보다 강부자는 기혼 배우만 만나면 ‘제발 자식 더 낳아라.’는 출산장려 덕담을 많이 하는 어른으로 통한다니, 기자는 자칭 ‘자식낳기운동본부 회장’이신 강부자를 만나서 꼭 묻고 싶었다. “과연 가지 많은 나무에 열매가 더 잘 열릴까요?”라고.

 

▲강부자씨가 극찬하는 배우 남보라 (13남매 둘째 딸) 사진 KBS 제공

 

“호화스럽게 사는 집에는 웃음이 없어요. 진수성찬 차려놓으면 뭐해. 먹는 사람이 없는걸. <강연100℃>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혹시 그거 보세요? 그 프로그램 정말 좋아. 한번은 제목이 ‘가지 많은 나무 열매도 많다’더라고. 7남매를 둔 엄마가 나온다는 거라. 그날은 그 프로그램을 꼭 보려고 TV 앞을 지키고 앉아 있었어요. (그 프로그램에서) 형편이 썩 훌륭하지 않고 썩 부유스럽지 않은데 아들 셋, 딸 넷(쌍둥이 둘) 낳은 여자가 나왔어요. 남편이 갓난쟁이 딸을 어깨에 짊어지고 방청을 와 있더라고. 난 그런 걸 보면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그 애들한테서 얻어지는 기쁨이 얼마나 많겠어요.”

▶ 그 많은 자식들에게… 과연 얻어지는 기쁨이 많을까요.
“그렇고 말고. 마누라는 씩씩하게 생겼고 남편은 마누라보다 체격이 작았어요. (방청석에 앉아 있는) 남편은 처음부터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더라고. 방청석에 앉아서 갓난쟁이를 짊어지고 마누라 얘기하는 걸 쳐다보면서 웃고 앉아 있었어요. 본래 고대광실에 웃음이 없다고 했어요. 또 아들 딸 하나씩 있거나, 하나 겨우 있는 집에는 웃음소리가 잘 안 들리는 법이지. 자식 많은 집에는 바람 잘 날이 없긴 해도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법이라우.”

▶ 살면서 돈 문제가 현실에서 가장 무거운 십자가잖아요. 자식 많으면 돈 쓸 일이 많은데,후배 연기자들에게 자식 많이 낳으라고 하면 ‘돈돈돈’ 하지 않던가요.
“난 그럴 때 마다 ‘그냥 평범하게 길러’라고 해요. 특별하게 키울 필요가 없어. 난 애들 고 3일 때 ‘서태지 나왔다. 빨리 와’라고 했어요. (텔레비젼) 못 보게 끄고 공부하라고 하질 않았어요. 그 나이에 하고 싶은 걸 어느 정도 하게 해야 머리가 잘 돌아가요. 그냥 마구잡이로 못하게 하고 돈만 들이부어서 누구로 만들면 뭐해. 그런 자식이 부모 공을 더 알 것 같아요?  (부모 공을) 몰라요. 유별나게 키우면 효자가 없고 말고. 이기주의가 되어 지들만 알지. (한숨)”

▶ 과연 형제자매 많은 것과 성격이 연관성이 있을까요.
“가난한 집에서 찌개 하나 놓고 먹을 때 그 냄비 안에 숟가락이 서로 들어가면서 먹잖아. 마지막에 아버지가 ‘너 좀 더 먹어라’하면 ‘아니에요. 아버지 잡수세요’ ‘엄마 더 잡수세요’라고 숟가락 내려놓으면서 많은 걸 배워요. 21년 전에 대전 엑스포에 갔었는데, 늙은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붙잡고 다니는 집들, 부잣집 아니었어요. 시골에서 칠순잔치 할 때 가보세요. (잔치에 가 보면) 자식 많은 집이 시끌벅적하잖아요. 힘들게 그 많은 자식들 키우면서 살아내신 부모님이니까 다 모여서 고마워하는 거야. 본래 부잣집에서 오냐오냐 키우면 효자 안 나와요. (오냐오냐 키워지면) 효자는 무슨, 나가서 천덕꾸러기나 안 되면 다행이지.”

▶ 힘들게 키운 부모님들의 노고를 자식들이 알까요.
“결국 다 알죠. 일전에 <아침마당>을 봤는데, 택시 기사가 자식을 아홉을 낳았다면서 갓난 애기 안고 출연을 했더라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였어. (그런데) 그 운전사는 점심을 안 먹는대. 설렁탕 값을 아껴서 애들 과자 사갖고 들어가야 한다는 거야. 어떨 땐 그냥 라면으로 때우기도 한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식들이 부모님을 알지, 누가 알겠어요.”

▶ 선생님께서는 밥상머리교육 스타일이셨나요?
“그럼요. 우리 신랑(이묵원/탤런트)이 한 달이면 20일을 밤 새워 술 마시는 사람이었어. 근데도 내가 애들 가고 나면 다시 자더라도 아침에 식사할 땐 꼭 식탁에 앉아있으라 했어요. (자식들이) 아버지 얼굴 보면서 식사하는 걸 철칙으로 세웠으니까. 아버지가 맨날 삐뚤게 살면서 자식에게 똑바로 걸어라 할 순 없잖아요. 부모가 제 역할을 잘 해야 지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잘 살아도 부모 앞에서는 자식이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때 그 시절에 강부자 선생님께서는 넉넉한 살림이셨을 것 같은데.
“아휴… 넉넉하지 않았어요. 내가 67년도 결혼하고 68년도에 애 낳았거든요. 결혼할 때 쌀 한 가마가 4500원이었고, 금 한 돈이 3500원이었어요. 탤런트 한 달에 1만5천원 월급으로 받을 때였어요. 제가 라이브로 CF를 최초로 찍었는데, 세제 광고를 5000원 받았어요. 그때 한국일보 옆에 중학동에 2층 다다미방에서 10만 원짜리 전세 살았어요. 저… 애 낳자마자 친정 엄마를 언니한테서 뺏어왔어요. ‘엄마가 와서 애 길러주지 않으면 이 서방이 500원 벌면 난 500원 갖고 살망정 애를 남의 손에 못 맡긴다’고 했어요. 남동생이 ‘누나는 집에 들어앉기에는 아까운 배우니까 도와주세요’라고 엄마를 보내줘서 그길로 19년을 저희 집에서 사셨어요.”

 

▲강부자의 결혼 사진 (사진 KBS 제공)

 

출산을 경험해야 배우로 성숙

▶ 요즘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힘들어요.
“제가 KBS에서 <황인용-강부자입니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13년간 했잖아요. 그때 맞벌이 하는 여자들 참 사연을 많이 보내왔어요. 아이 맡기는 게 어디 보통 일이예요? 한번은 어떤 여자가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지, 다녀야 하는지’ 문의를 해 왔어요. 제가 그분에게 물어봤어요. ‘친정어머니 계세요? 시어머니 계세요? 시누이 있어요? 자매 있어요?’라고. (양가 부모형제가) ‘모두 없다’라고 해요. 그래서 ‘그러면 들어 앉으세요’라고 딱 그랬어요. ‘얼마 버시는지 몰라도 그 돈을 애들한테 투자한다 생각하고 집에 들어앉아서 애 기르세요. 돈 버는 거,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겁니다. 또 남을 시켜서 애를 기르면 내 뜻대로 안 자라요. 아이는 묘목과 같아서 어릴 때 물주고 양분 주고 영양주면서 똑바로 크게 해야 하는데, 남의 손에 키우면 그 사람이 내 뜻대로 애를 길러주겠어요?’, 전 ‘직장 관두라’고 했어요.”

강부자는 “돈이 아쉽더라도 자식은 돈을 떠나서 생각해야 할 문제다. 자식이 곧 ‘나’이며, 나와 나라를 위해 큰 일 했다고 생각하고 정성을 쏟고 키우라”고 강조했다.

“‘남보라’라는 배우 아시죠? 13남매의 둘째잖아. 정말 효녀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남보라의) 부모님이 조그만 식당 해서 먹고 살잖아. 식당 안에 방이 몇 개 있는데서 그 애들을 키운거라. 내가 그걸 듣고 ‘(정부가) 저런 기특한(多産) 가정에 집을 하나 사줘야지. 백날 애 많이 낳으라고 떠들고 출산장려 정책 세워봤자 뭐하누’… 가족 많은 가난한 집에서 힘들게 자란 둘째딸 남보라가 배우가 됐잖아요.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

강부자는 기자에게 손녀 같은 배우 남보라에게 주겠다며 화장품 케이스 하나 빼 놓았다고 자랑했다. 배우생활 50년간 사용한 화장품 케이스만 해도 13개라며 최근에 생긴 화장품 케이스는 꼭 남보라에게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다.

“보라가 어디서 언제 녹화를 하나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남보라를) 찾아가 봐야지 하고 있어요. 요즘 SBS 연속극에서 미혼모 연기를 맡았다고 하던데, 보라가 얼마나 잘 하겠어요? (남보라는) 유치원 때부터 기저귀를 갈았다는데…"

강부자는 “특히 여배우는 자식 낳아보고 키워보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은 배우들한테 너무 좋은 경험이예요. (애 낳아봐야) 산고(産苦)를 알잖아. 또 자식을 키워봐야 어머니 마음 알고. 배우에게는 사는 게 모두 공부예요. 얼마 전에 봉평 장에 갔었어요. 사람들이 많은데 가면 ‘아이고 이게 누구냐’고 하니까 차에서 안 내릴 때가 많아요. (차 안에서) 밖을 보니까 허리가 꼬부라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정하게 손잡고 나와서 걸어가는 거라. 어디를 가시나 하고 한참을 그분들을 쳐다봤어. (같은 차에 타고 있던) 동생이 ‘언니는 뭐든 보통으로 안 보셔. 별 걸 다 살피고 그러시네’라고 해서, 내가 ‘저게 나의 교재라고!’ 소리쳤어. 나는 뭐든 예사로 안 보거든. ‘사람이 다 공부다’라고 했어요.”

강부자는 1941년생 논산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넉넉한 집의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녀는 라디오에 푹 빠져 사는 문학소녀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 치마를 막으로 쳐놓고 대청마루에서 연극공연을 해서 동네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깜찍한 재능이 있는 여자아이였다. 강경여중 시절에는 직접 쓴 각본으로 1인3역의 연극공연을 해 전교생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집에 놀러갔다가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보는 텔레비전을 통해 외화가 성우들의 더빙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충남대 국문과 다닐 때 라디오 연속극 <청실홍실>에 반해 성우가 되려는 꿈을 구체화시켰다고 한다.

배우 강부자에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1962년 KBS 탤런트 시험 실기현장. 검은색 한복 통치마에 오동꽃 보랏빛 저고리를 입고 차렷 자세로 심사위원들 앞에 서 있는 촌스럽기 짝이 없던 스물 두 살의 앳되고 귀여운 소녀가 바로 ‘나’였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탤런트 시험 치러 갈 때) 머리 하나로 딱 묶고 화장도 안 하고 갔어요. 이북 아나운서같이 통치마에다가 한복 저고리 입고 시험 보러 갔으니 얼마나 촌년 같았겠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나이 먹으면서 멋있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봐도 지금이 나은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묵원(남편)이 나를 부인으로 택했으니… (웃음) 친구들이 ‘묵원이가 왜 강부자를 찍었을까? 저 자식 눈 좋아. 사람은 겉모습 보곤 모르는 거지’라고 했다던데. 내가 어렸을 때 양 쪽에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게 귀여웠다고 그러더라고. (웃음)”

 

 

최고의 다산상은 강부자와 김혜수

▶ 형제 많은 집에서 자라셨는데, 또 맏며느리 되는 게 싫지 않으셨어요.
“(내가) 친정에서 칠남매 중 다섯째였는데, 시집을 칠남매의 맏이한테 갔어요. 양쪽 집안 합치면 14남매예요. 형제 많으면 여러 가지로 힘들겠지만 내가 원했어요. 친정이 좀 풍요로웠다고 해도 6.25 폭격 맞고 다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래도) 난 형제 많은 게 그리 좋았어. 어려서부터 맏며느리로 시집간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맏며느리로 가서 ‘몇 월 몇 일이 무슨 날이니까 다 모여라’ 하면서 살고 싶다고.”

▶ 슬하에 아들과 딸, 남매를 낳으셨지요.
“우리 부부가 욕심대로 낳았으면 다섯은 낳았을 거예요. 그땐 한 달 30일 중 서른 한 번을 녹화할 때인데 임신한 줄도 모르고 녹화하면서 피를 펑펑 쏟아냈어요. 하루 종일 피 쏟으며 녹화 다 하고 새벽에 집에 가서 멍청하게 앉아 있는데 친정어머니가 ‘너는 소 죽은 귀신이냐. 그럴 때는 한약 한 첩만 딱 지어먹으면 달라붙는데’라며 미련하다고 야단치셨어요. 다시 또 임신을 했는데 시골로 촬영가는 비포장도로에서 차가 펄쩍 펄쩍 뛰듯이 달리는 거라. 지프차 뒷칸에 타고 배를 붙잡았어요. 정말 딸이라서 딱 달라 붙었나봐. (웃음)”

▶ 아이를 수만 명 받으신 산부인과 의사에게 ‘한국 여배우 중 ‘다산상(多産相)’이면서 아이를 쑥쑥 잘 낳을 것 같은 여배우가 누구냐?’고 여쭤보니 강부자 선생님과 김혜수 씨를 꼽더군요.
“(웃음) 수월하게 낳긴 했지. (임신을 하고서) 종로2가에 있는 나건영산부인과를 다녔어요. (나건영 박사가) 서울대 산부인과 과장님이었는데 밖에 분만병원도 하고 계셨거든요. (예정일이 되자) 침구 다 챙기고 커피를 마호병에다 한 통 담고, 애 쑥 잘 빠지라고 날계란 몇 개 싸 넣어서 하루 전 병원에 미리 갖다놓고, 다음 날에 맨 몸으로 입원했어요. 올케가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어야 애가 나온다고 하던데, 암만 기다려도 홀까닥 뒤집어지질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저녁에 진통이 오기 시작하는데, 옆 방에서 ‘강부자 되게 요란스럽게 애 낳더라’고 할까봐서 요가 비틀어지도록 틀어잡고,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참았어요. 새벽에 물이 팍 나오대. 양수가 터진 거예요. 간호사가 애 낳아도 되겠다고 하길래 3층에서 1층까지 계단을 막 뛰어 내려 갔어요.”

▶ 분만대에 올라가서는 금방 낳으셨나봅니다.
“의사가 ‘아이고 애 머리가 보이네. 힘 한 번 주세요’라고 하길래, 그 소릴 듣자마자 소가 우는 소리 같은 소 울음을 한 번 하니까 애가 나왔어요. (웃음) 애 낳고 나서 내발로 걸어서 3층까지 올라갔어요. (올라가면서) 뭐라고 흥얼거리며 올라간 기억이 나요. 방에 가니까 강보에 싸인 아들이 떡 하니 누워있는 거예요. (아이를 보는 순간) 너무 눈물이 나오는 거야. 세상에 니가 어떻게 내 뱃속에서 이렇게 커갔고 나왔나 싶어가지고. 그렇게 한참 울고나서야  ‘우리 집으로 연락 좀 해주세요’라고 했어요.”

강부자는 기자에게 “남편이 가장 위대해 보일 때가 언제였어요?”라고 질문했다.

“애 낳고 방에 드러누워 있는데, 남편이 나를 쳐다보더라고요. (내가) 그때 그렇게 드러누워서 바라본 남편 얼굴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47년 중 제일 위대해 보였어요. ‘아! 이 남자가 우리를 책임질 가장이구나…’ 그렇게 존경스럽고 듬직하더라고.”

 

제왕절개 일주일 만에 촬영 강행

▶ 둘째, 따님 낳을 때 비화가 유명하시던데요. 제왕절개 수술 하고 나서 드라마 녹화를 들어가셨다면서요.
“TBC 대하드라마 <연화>에 출연할 때였어요. (그 드라마에서) 이순재 씨가 민대감이고, 내가 정경부인이었고, 김창숙이 연화 역할을 했는데, 그때 뱃속에 우리 딸이 있었어요. 감독님에게 ‘애를 낳아야 하는데 일주일만 빼주세요’하니까 ‘안 돼. 지금이 클라이막스인데 못 빼. 지금 빨리 낳고 나와’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다음 주 녹화 날까지 낳고 나가야 된다고 우겨서 촉진제를 맞았죠. (촉진제를 맞았는데) 아기가 나올 생각을 안 해서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했어요. 그때 제왕절개 한다고 배 열어보니까 테니스 공만한 물혹이 있어서 떼내고, 맹장도 떼내고, 애도 안 낳게 해버렸어요. 나박사님이 네 가지를 한번 수술로 다 하신 거였어요.”

▶ 제왕절개를 하고 나서 일주일 만에 녹화가 가능하던가요?
“말도 마세요. (드라마가) 클라이막스 였거든요. 보통 때에는 정경부인이라서 보료에 앉아서 ‘여봐라, 과천댁 있느냐’ 하면 되었는데, 그날은 조상님 사당에 가서 자결을 해서 피를 흘리고, 그런 나를 발견한 하인들이 나를 업고 뛰는 신(Scene)이었어요. (그 시절에는) 일주일분을 하루 종일 촬영했을 때인데, 얼마나 힘들던지. 그 아픈 설움을 누구한테 표현을 못 하겠더라고. 내가 너무 아파하면 사람들이 내 남편한테 ‘저 놈은 말이야. 여편네를 제왕절개까지 시켜가면서…’라고 괜한 말을 할까봐서… 배가 터질 것처럼 아파도 참아야 했어요. 그날 밤 집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한숨)”

▶ 아이 키우랴, 드라마 촬영하랴 너무 힘드셨겠어요.
“(지금까지) 제가 첫 애 낳고 20일 쉬어본 거 외에는 쉬어본 적이 없어요. 친정엄마와 언니가 애지중지 길러줬으니 연기를 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으면 오늘의 강부자가 없었을 거야. 애 낳고 드라마 찍으러 다닐 때 젖이 줄줄 흘러내리니까 엄마가 맨날 ‘젖 싸매라. 젖 싸매라’ 하셨어요. 젖이 줄줄줄 흐르면 맨날 애가 운다고. 난 젖을 좀 오래 먹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엿기름 물 먹으면서 젖을 말려야 했죠. 우리 애들이 젖 재촉이 심했어요. (젖 재촉 심한 애들을 잠재우기 위해) 쇠고기와 당근, 쌀, 시금치 넣고 푹 고아서 그걸 채에다 밭쳐 그 물을 마호병에 넣고 보릿물 대신 분유를 타서 먹이니까 네 시간씩 잠을 푹 자는 거예요. 우리 아들이 백일에 이가 위에 두 개, 아래 두 개 났었어요. (웃음)”

▶ 아드님과 따님은 해외에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들이 마흔 일곱 살인데, 오레곤 의과대학에서 알츠하이머하고 파킨슨병 연구하고 있어요. 딸은 홍대에서 조각공부 했는데, 아들이 지 친구를 소개해줬어요. 연세대 나와서 삼성에 다니다 MIT 공대를 들어갔는데, 지금은 미국 교통국에 근무하고 있어요.”

▶ 탤런트도 하셨고,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도 오래하셨고, 국회의원도 하셨는데, 바쁜 와중에도 불공을 드리러 절에 자주 다니시기로 유명하던데.
“친정어머니가 불자셨어요. 모태신앙이 있었지만 어릴 땐 성가대도 해보고 다 했어요. 드라마 <연화>  찍을 때 정경부인인 제가 절에 가서 기도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그때 의정부 화암사에서 촬영하면서 ‘보광화’라는 법명을 받았어요.”

▶ 종교라는 것이 어떤 일을 겪으면서 더 깊어지는데.
“사실 우리 아들이 누가 봐도 잘 생겼어요. 이묵원(남편)과 날 섞어놔서 멋져요. (아들이) 모범생이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안 좋은 일을 겪었어요. 체육시간에 열중 쉬어 자세로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도는 기합을 받다가 병이 났어요. 그날 제가 TV문학관 촬영 때문에 시골에 있었거든요. (촬영장에서 자는데) 꿈자리가 너무 사나운 거예요. 동네 이장네 가서 전화를 걸어봤죠. 엄마(친정모친)가 ‘아무 일도 없어. 어서 촬영 끝내고 올라와’라고 해서 ‘별 일이 없나보다’고 했는데, (집에 가 보니) 난리가 나 있었어요. 기합 받고 온 날 저녁에 아들 오른쪽 허벅지가 잉어가 뛰듯이 밤새도록 뛰었다는 거예요. 할머니와 남편이 밤을 새우면서 찜질을 해도 안 되니까 을지로에 있는 신경외과에 갔는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고대 부속병원으로 옮겨 놓았더라고요. (한숨)”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의학적으로.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에 생긴 급성 고관절염이었어요. 중학생이 되었다고 산 구두를 신으면서 뒷꿈치가 헐었었나 봐요. (발뒤꿈치가) 헌 채로 신고 다녔는데 기합을 받느라 피곤하니까 균이 헌 데로 들어가서 돌아다니다가 고관절에 자리를 잡아버렸을 거라고 해요. (아들이 고관절염으로) 6개월간 입원해서 치료 받았어요. 그때가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라디오 진행할 때였는데, 병실은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지켰고,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들 병 낫게 해달라’고 절에 가 미친 듯이 기도했어요.

하루는 병실에 앉았는데 복도를 왔다갔다 하는 의사양반이 다리를 조금 저는 거예요. 제가 부처님께 ‘우리 아들을 정 완벽하게 못 낫게 해주실 것 같으면 딱 저 의사만큼만 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딱 그 의사만큼 절어요. 정형외과 선생님이 세미나 할 때마다 아들 엑스레이를 걸어놓고 ‘이거는 사람의 힘으론 이렇게 나을 수 없다’라고 하신다고 들었어요. 몸 속에 부속 하나도 안 박고 그냥 병원을 나서 나왔어요.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에 병원비가 1,480만 원 나왔어요. 34년 전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어요.”

▶ 학교에 항의 안 했나요. 학교측 책임도 있지 않을까요.
“(항의를) 요만큼도 안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잘 했다 싶어요.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 체육선생님이 병실에 와서 사과하며 돈을 좀 내겠다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체육 선생이 군 제대하고 막 부임한 총각선생님이셨어요. 제가 그분에게 ‘이거는 선생님 책임이 아니다. 우리 아이만 불러서 기합을 준 것도 아니고, 다 같이 기합 받다가 이렇게 되었는데,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잖아요. 우리 아이가 우직해서 그런 거라고 했어요. 다른 애들은 선생님 안 볼 때에는 대충 걸었다는데, 우리 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키는 대로 했대요. 우리 남편도 주위에서 학교측에 항의해서 보상받다주겠다면 ‘절대 하지 마세요. 부모는 선생님에게 가르쳐달라고 맡겨놓았는데, 그렇게 항의하면 어떤 선생님이 가르치겠냐’고 거절했대요. 황인용 씨는 날보고 ‘당신 대단하다. 그 와중에도 아침에 방송하면서 편지 읽고 깔깔거리고 웃으며 진행하고 한 번도 눈물 흘리는 것 못 봤다’고 감탄하더라고요.”

▶ 후배 연기자들 중 어머니로 참 훌륭하다 싶은 배우가 있나요?
“국악인 오정해 있지요? 아들 하나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과 다르게 아주 엄하게 키우더라고. (오정해 아들이) 네 다섯 살 때에도 엄마에게 꼭 존댓말 하면서 깍듯하고 예의가 발랐어요. 요즘 사람이 옛날 방식으로 호되게 키우기 쉽지 않거든요. 부모를 겁내고 무서워해야 사회에 나가서 모범생이 되는 거예요. 좀 활동하는 여배우들 보면 돈 잘 버니까 고급인력 쓰면서, 애를 아예 아줌마랑 자게 하던데 저는 반대예요. 어느 부잣집에 애 보는 아줌마가 들어오면 애가 자는 척을 한 대요. 아줌마가 맨날 ‘어서 자’라고 하니까 아줌마만 보면 자는 척을 하는 거라고… (한숨)”

 

 

삼다(三多)의 여인

▶ 건강하시지요?
“몇 년 전에 허리 협착증으로 수술을 했어요. 전 고급스럽지 못해서 꼭 온돌방에 앉아서 텔레비전 봐요. 소파에 누워서 느긋하게 못 보고… (그래서) 협착증이 생겼나 봐요. 일어서려고 하면 다리에 마비가 왔어요. (병원 검사결과) 4번 5번 6번이 들러붙었다는 거예요. 참다 참다 수술을 했어요. 수술하고 퇴원하려고 하는데 고열이 나서 중환자실에 다시 입원했었어요. 쓸개에 돌이 있다고 해서 그 돌도 빼냈어요. 내가 운동을 잘 안하니까 열심히 물리치료 받으면서 재활치료라도 해야 하는데, (수술하고 나서) 그냥 음악만 듣고 앉아 있었어요. 제가 한없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하는데 운동을 싫어하거든요. 다리에 힘이 안 생겨서 지금도 걷는 게 시원찮아요.”

강부자는 자칭 ‘삼다(三多)의 여인’이라고 했다. 겁 많고, 눈물 많고, 정이 많은 여인. 실제로 강부자는 그 누구라도 불쌍한 꼴을 못 보는 정 많은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남이 볼 때에는 되게 억세고 되게 사납고 극성맞게 보이는데, 김수미(탤런트)는 내 생일 때 꽃을 보내면서 카드에 ‘들꽃 같은 여인이지만 어떨 땐 왕성한 야자수 같은 언니’라고 해 놓았더라고요. 김수현 작가는 저에게 ‘집밥의 여왕(JTBC 방송)’은 그댁에서 해야 한다’고 해요. 작가들이나 동료연기자들이 저에게 ‘천상 여자’라고 하더라고요.”

누가 뭐래도 배우 강부자는 대단한 연기자다.  다만, 강부자를 떠올리면 ‘어머니’보다는 ‘할머니’가 먼저 뇌리를 스친다. 고두심, 김혜자 씨를 떠올리면 ‘국민엄마’ 답게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반해 강부자는 오지랖 9단의 할머니 혹은 며느리의 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만 챙기는 시어머니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만큼 강부자는 어떤 역할이든간에 천연덕스럽게 소화했고, 시청자들은 강부자를 배역 속의 누구로 완벽하게 착각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강부자가 스물한 살 때 했다는 첫 작품은 <구두창과 트위스트>. 과부의 중매를 서는 45살 중매쟁이 역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했지만 처녀 역은 딱 두 차례 밖에 없었다고. 19살 북한 여군 역을 맡았던 반공드라마 <수치>와 홈드라마 <로맨스 가족>에서였다는 것.

강부자의 할머니 연기는 일품 중 일품이다. 완벽한 할머니 몸짓을 위해 ’몸빼’ 바지만 입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 속옷까지 고무줄 늘어난 팬티로 갖춰입을 만큼. 

“화면에 보이지는 않지만, 몸빼 안에 고무줄 늘어난 팬티를 입으면 줄줄 흘러내리기 때문에 대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추켜올리게 돼. 또 구멍난 양발을 신으면 이 역시 화면에 잡히지 않아도 연기하면서 발가락을 움추리게 되지. 그러면 자연스럽게 주책 맞은 할머니 걸음걸이와 몸짓이 되면저 연기도 자연스러워져요.”

강부자 다운 발상이다. 나이든 배우가 대사 외우기조차 벅차다고 해도 이해가 될터인데, 그 배역의 몸짓과 표정을 근사하게 살리기 위해 소품까지 신경쓴다니, 강부자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연기를 위해 혼을 다하는 그 정성만 봐도 어머니로서의 강부자가 어떠할지 자연스럽게 느껴지고도 남을 일이다.

어느 심리학책에서 읽은 글귀가 떠올랐다. ’인간이 분통을 터트리고 속내를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핵심적인 열쇠는 ‘그냥 내 버려두는 것’이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핵가족보다는 多가족이 훨씬 유리하다.’

“우리 남편이 일흔 일곱이야. 나는 일흔 넷이고. 우리 남편이 요즘 늘 하는 얘기가 ‘지금쯤 눈앞에 왔다갔다 하는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해요. 스무 살짜리 딸이 ‘아빠 아빠’ 하면서 돈 달라고 조르면 얼마나 예쁘겠어요. 난 자식을 둘 밖에 못 낳았고, 다들 미국에 사니까 아쉬워요.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까 자식은 셋 정도 있어야 좋을 것 같아요. 아들은 기둥으로 딱 하나만 있으면 되고, 딸은 둘 있어야 해. 요즘 여자들 얼마나 똑똑하고 멋집니까. 똑똑하니까 자식 욕심 부리세요. 마흔 넘어도 안 늦었어요. 낳을 수만 있으면 낳아요. 못 낳아서 그렇지, 낳기만 하면 늙어서 정말 후회 안 해. ‘늦게라도 낳아서 잘했다’ 싶을 거예요.” ■

 

 

[입력 : 2017-05-16]   이은영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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