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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한국 최초, 시험관시술로 아기 태어나다

서울대학교 산부인과 장윤석 교수팀이 성공해

글  온라인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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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의대 산부인과 장윤석 교수가 쌍둥이 남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1985년 10월12일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수술복 차림의 장윤석 교수(현 마리아병원 명예원장)가 흐뭇한 표정으로 이날 새벽 제왕절개로 태어난 쌍둥이 남매를 내려봤다.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한국에서는 최초,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일본·대만에 이어 4번째로 ’시험관 아기’가 세상에 빛을 본 순간이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남녀 몸에서 정자와 난자를 채취해 수정시키고(체외수정) 수정란을 다시 여성 몸에 넣어 임신을 시키는 것이 골자다. 나팔관 유착이나 정자 운동성 부족 등으로 불임이 된 남녀에게 임신의 희망을 준 획기적 기술로 꼽힌다.

1979년 7월 세계 첫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영국의 로버트 에드워즈(1925∼2013·(Robert Edwards) 박사는 이 성과 덕에 201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80년대 초 시험관 아기 시술은 미국·유럽에 널리 퍼져 성공 사례가 많이 나왔지만 한국에선 아직 ’넘보지 못할 영역’이었다.

수정란을 체외 배양할 역량도 국내 과학계에 없어 장 교수팀에서는 미국에서 관련 기술을 배워온 문신용 서울대 의대 교수(현 엠여성의원 대표원장)가 배양 작업을 맡았다.

 

▲ 현재 장윤석 박사는 마리아의료재단 명예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러나 첫 성공 후 한국의 시험관 아기 시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지금은 세계적으로 최정상급 성공률을 자랑한다. 애초 이 시술이 건강 보험 적용이 안 됐던 만큼 수익성을 노린 민간 병원들이 대거 기술 경쟁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저출산이 큰 문제가 되면서 2006년부터는 정부 지원금 대상이 됐다.

1985년 당시 장 교수팀을 괴롭힌 것은 기술적 난관 외에 ’체외 수정은 기형아 위험이 큰 무모한 시도’라는 세간의 오해였다. 이런 편견은 국내 첫 시험관 아기였던 쌍둥이 남매가 별 탈 없이 자라면서 많이 누그러졌고 해당 시술이 보편화한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

 

아래 관련기사를 클릭하면, 
 
시험관시술 최초 성공당시 리얼담, <장윤석 박사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입력 : 2015-10-12]   온라인편집부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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