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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아이 가지려 레지던트 생활만큼 치열하게 노력했어요”

- 퓨어피부과 정혜신 원장의 ’나의 임신출산 수다’

글  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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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주 기자

● 임신했을 땐 야한 속옷 사는 걸 즐겼다. 
● 90kg 넘었던 만삭 시절

● 출산 후 2주만에 출근하는 여의사들 
● 피부과 의사가 털어 놓는 진짜 피부이야기
● 안티에이징을 위해 항산화 음식 먹고 운동해야
● 찜질방에서 흘린 땀과 운동 땀은 달라
● 자식에게는 남편 그 이상의 행복이 있다 

정혜신(鄭惠臣) : 본관 하동. 1968년 서울 출생. 연세대 의대 졸업. 前청담이지함피부과 원장. 現 퓨어피부과 원장


   
 

“전 의대 본과 3학년 때 결혼을 했어요. 너무 빨리 했죠? (웃음) 인턴, 레지던트 1년차 때에는 너무 힘드니까 어느 정도 마쳐 놓고 아기를 갖자고 남편이랑 약속을 했었거든요. 본격적으로 임신시도를 할 때에는 남편이 군의관으로 거제도에 근무해서 주말부부였어요. 그때 배란일 맞추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산부인과 의사인 친구에게 초음파로 배란일 체크해서 겨우 맞췄어요.

당시에는 오로지 임신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어요. 임신이 마음먹은 대로 금방 되지 않아서, 반 년 정도였지만, 고통스럽더라고요. 당시 임신하려고 머리 싸매고 식이요법 같은 걸 마치 의사공부하는 것처럼 연구했다니까요. ‘아… 배란이라는 것이 시간에 딱 맞게 안 될 수도 있구나’를 처음으로 알았어요. 제가 의사지만 산과쪽 지식은 많지 않았으니까요.”

뜻밖이었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의사 중 단연 에이스로 손꼽히는 그녀. 외모만으로는 ‘아이 낳기’보다는 멋진 몸매 가꾸기와 치장에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은 그녀가 엄마 되기에 그토록 열중했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임산부의 야한 속옷

주인공은 예쁜 여의사, 퓨어피부과 정혜신(48) 원장이다.

80-90년대 학원가에서는 “예쁜데다 공부도 잘 하는 여자”가 가장 얄미운 여자로 손꼽혔는데, 모르긴 해도 정 원장이 그랬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에 충분하다. 갖출 것 다 갖췄으면서 의대까지 다녔으니 모르긴 해도 그녀의 주 활동무대였던 신촌 대학가에서 얄미운 여자 3등 안에는 진입했을 게다.

현재 정혜신 원장은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마더(mother)’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임산부였던 열 달간이 그 어떤 화려함이나 부(富)보다 소중한 기억이었다고 회고했다. 자식 안 낳겠다는 부부가 많아지는 현실에서 정혜신 원장의 ’마더 정신’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던지…

9년 전 기자가 정혜신 원장을 피부과 의사로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 놓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염집 아줌마였다.

▶ 임신이 마치 프로젝트 같아요.
“그럼요. 남편이 거제도에 3년간 파견 나가 있어서 배란일 디데이가 주중이면 안 되는데… 그게(배란일에 맞춰 부부관계를 하는 것이) 도무지 맞질 않더라고요. 남편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레지던트 4년차가 마음대로 자리를 비울 수가 있어야죠. 그날(배란일)이 맞아서 임신이 되는 게 어렵구나 싶었어요. 전 또 아들을 낳고 싶었거든요. (웃음) 남편은 고기 많이 먹게 하고 저는 채소 위주로 먹었어요. 남편을 금욕하게 했다가 집중(?)시켰고… 그때 민간요법이 다 동원되었어요. 수영도 시작했고요.”

 

   
 1997년 임신을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던 정혜신 원장..

▶ 수영이 임신에 도움이 되나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운동 부족이라서 임신이 잘 안 되는 것 같았어요. 병원에서만 생활하고 공부만 하니까 게을러졌고요. 그래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수영을 하면 몸의 혈액순환이 잘 되어서 훨씬 임신이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공교롭게도 수영 시작하고 바로 임신이 되었던 것 같아요. (웃음)”

▶ 미모의 여의사와 임신에 몰입하는 여의사... 왠지 일치가 안 돼요.
“정말 전 그때 모든 관심이 임신이었어요. 결혼을 했으니까 임신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식을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요. 남편과 저 사이에 자식이 생기는 일인데,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봤어요. 생각대로 임신이 바로 안 되니까  상상임신까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비록 몇 개월이었지만 난임 여성들이 겪는 마음 고생을 그대로 겪은 것 같아요.”

▶ 레지던트로 해야 할 공부가 많았을텐데.
“하긴 좀 그랬어요. 피부과는 특히 공부할 게 많아요. 몸이 힘들기 보다는 맨날 현미경 봐야 했고 정말 숙제가 많았어요. 그런데도 전 임신이 먼저였어요. 임신이 되었을 때부터 낳는 순간까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거든요. 지금 아무리 행복해도 그때만 못한 것 같아요. ‘임신하면 여자로 의사로 마이너스’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제 주위 여의사들도 그랬고요. 제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피부과 레지던트할 때 여섯 명 의사 중 셋이 여자였어요. 모두 임신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걸요.”

▶ 임신했을 때 추억도 많겠어요. 하지만 주말부부라 홀로 서울에서 지내셨겠어요.
“매일 몸의 변화가 생겨서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전 혼자 놀기를 잘 하거든요. 남편이 없어도 홀로 공부하고 책 읽고 먹고 싶은 걸 다 찾아먹는 스타일이고요. 한번은 군고구마가 너무 먹고 싶었어요. 그때 딱 한 번 ‘이럴 때 남편이 사 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더라고요. 또 임신해서 좋았던 게 있었어요. 야한 속옷을 임산부 때 가장 많이 사 입었던 것 같아요. 맨날 가운만 입으니까 속옷은 야하고 예쁜 걸 입고 싶었는데… 실컷 입었죠. (웃음)”

▶ 임신하고 입덧이 심하지 않았나 봅니다. 즐기며 열 달간 보내셨다니.
“전 입덧 때문에 뚱보가 되었어요. 임신하고 한 달 지나니까 토하기 시작하는데, 이상한 것이 입안이 심심하거나 속이 비면 메슥거리는 입덧을 하는 거예요. 속을 비우면 안 되니까 하루 종일 먹었죠. 정 안 되면 입안에 사탕이라도 물고 있어야 괜찮았으니… 제가 얼마나 쪘겠어요.”

▶ 만삭 때 체중 증가가 얼마나.
“애 낳고 나서도 90kg이 넘었으니까… 친정아버지가 임신 8개월째 ‘애 퍼지는 것 좀 봐라’고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아버지 입장에서 딸이 너무 뚱뚱해지니까 속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좀 달랐어요. 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고 내 외모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다고 별로 걱정이 되지 않더라고요. 제 성격이 한번 올인하면 그것에만 집중하거든요. 임신했으니까 건강한 아기를 낳는 일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뚱뚱해지는 것 개의치 않고 스트레스 안 받으면서 열심히 먹었던 거고요. ”

▶ 아무리 만삭이라지만 90kg 이상은… 임신중독증은 없었나요.
“그렇지 않아도 너무 살이 찌니까 주위에서 임신중독증인 줄 알고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출근해서 혈압을 매일 체크했어요.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담임 제도가 있었어요. 멘토선생님 밑에 과 막론하고 쭉 배정이 되었거든요. 다행히 저의 멘토 선생님이 산부인과 선생님이라서 항상 체크 받으며 열 달을 보냈어요.”

▶ 의사 세계에서는 임산부에게 일을 덜 시킨다던가… 봐 주는 게 있나요.
“전혀요. 남자 의사들과 똑같이 일했어요. 임산부 특혜 전혀 없어요. 사회에서는 임신하면 좀 편하게 해준다면서요? 병원은 그렇지 않아요. 출산하고 나서 한 달 이전에 출근하는 여의사가 수두룩해요. 한 달이 뭐예요. (분만 후) 2주 만에 출근하는 의사들도 많아요. 저희 동기들 중 산부인과 의사가 많았는데, 애 낳고 바로 출근하더라고요. 주위가 다 그러니까 당연하게 생각했고요. 또 레지던트 생활이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괜히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

▶ 열심히 일하셨으니 예정일보다 더 빨리 아이를 낳았겠어요.
“너무 많이 먹어서 애가 많이 컸어요. 예정일이 남았는데 초음파 상 아기 사이즈가 4.0kg이 넘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애 빨리 낳으려고 계단을 열심히 오르락내리락 했어요. 만삭 때 계단을 심하게 오르내리면 빨리 애가 밑으로 내려와서 나온다고 해서….”

▶ 아이는 순풍… 순산하셨어요?
“제왕절개 수술을 했는데… (수술 당일) 사고가 좀 있었어요. (제왕절개 때) 마취가 좀 잘못되었거든요. 부분 마취를 하는데 척추 마취였어요. 그게 좀 잘못 되어서 마취가 위로 올라간 거예요. 심장이 압박이 오니까 숨을 못 쉬게 된 거죠. 수술방이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혈압이 뚝뚝 떨어지는데 마취가 다 안 된 상태에서 애를 빨리 꺼내야 하니까 응급으로 수술이 진행이 되었어요. 정말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아이를 낳았어요. 조금만 늦었으면 심장마비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뻔 했어요. ‘아… 이러다가 눈 못 뜨겠다’ 싶었어요. 아기를 무사히 꺼내고 울음소리 듣고 애가 정상이라는 말이 귀에 들려올 때 걱정이 내려지더라고요.”

얘기인즉 다른 수술과 달리 분만시 제왕절개 수술을 할 때에는 아기에게 마취가 최소한 가게 하기 위해서 산모의 호흡을 살려놓는 상태에서 마취를 하는데, 마취가 너무 깊어지면 가슴의 호흡 근육이 수축을 안해서 자가호흡이 없어지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급상황이 되어서 아기를 무사히 꺼낼 때까지 기도삽관을 하게 된다. 

▶ 제왕절개 수술하면서 그런 사고까지… 회복하느라 힘드셨겠어요.
“다른 의사들보다 좀 더 쉴 수 있었어요. 한 달 쉬고 출근했어요. 전 제왕절개 했어도 한 달간 모유수유를 했는데, 젖이 너무 많이 불어나서 고생 많이 했어요. 의사로 공부하고 챙길 것이 너무 많은데 미치겠더라고요. 죽을 지경이었어요. 젖 말리는 약을 먹어도 젖이 너무 많이 나오는 거예요. 가슴이 압박되듯 통증에 시달리면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 다행스럽게 애 낳을 무렵에 남편이 군의관을 마치고 올라와서 의지가 되었어요.”
 

   
         

▶ 아무리 임신을 기다리던 여자라도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육아 때문에 힘들잖아요.
“아이 키우기 위해 도우미 아줌마가 같이 살았는데, (아무래도) 제가 엄마니까 더 많이 보게 되더라고요. 남편이 대신 봐준다고 하고 아주머니가 대신 데리고 잔다고 해도 마음이 편치가 않은 거예요. 병원에서 녹초가 되어서 들어오면 잠을 좀 자야 하는데도, 애가 좋아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아이를 내 팔에 눕혀 재우고 나면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예뻐서 그저 좋은 거예요. 심지어 울고 떼쓰고 해도 아이 자체가 좋았어요. 지금은 말을 안 들어서 골치 아플 때가 더 많지만 그땐 아이의 존재 자체가 너무 예쁘더라고요.”

<2편에서 계속>

[입력 : 2014-09-03]   이은영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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