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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하루 10명 넘게 아기 받을 때 소원은 단 하루라도 푹 자는 것”

20년간 4만여 아기 받은 홍영재 원장의 분만학

글  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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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주 기자

● 애 잘 낳는 여자, 궁뎅이만 봐도 알 수 있어
● 옛날 여성들 볏짚 깔고 애 낳았던 이유
● 수술할 땐 가족이 죽었다고 해도 집중해야 해
● 최고의 다산상은 고현정, 김혜수, 북한 리설주
● 산부인과에 남자의사가 더 많아야 
● 출산장려금 마련 위해 담배값 인상했으면

홍영재(洪榮載) : 본관 남양. 1943년 전북 고창 출생. 연세대 의대 졸업. 차병원 산부인과 과장, 건대부속 민중병원 산부인과 과장. 홍영재산부인과 개원(1981). 現 산타홍클리닉 원장. 연세대 의대 총동창회장. 저서로는 <나는 아기에요> <임신과 출산> <아기의 첫 365일> <타이밍임신법> <아기는 총명하게 키워라> <암을 넘어 100세까지> <청국장 100세 건강법> <홍영재의 젊은생각> <오색섭생> 등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분만 전문 산부인과 의사 중 가장 많은 아기를 받은 닥터 중 홍영재 원장을 최고봉으로 꼽는데는 이견이 없다. 홍영재 원장은 1981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분만 전문병원 ‘홍영재산부인과’를 개원한 후 20년간(2000년 경) 자신의 손으로 받아낸 아기만도 4만여 명에 이른다. 가수 나훈아, 남진, 골프선수 최경주 등 수많은 유명인과 연예인의 아기들이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남자 의사가 전문의를 획득하는 나이가 30대 중반이라고 계산했을 때 20년간 4만여 명의 아이를 분만시켰다면 한 달에 적어도 100명 이상을 받아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만큼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라 말하는 이도 적지 않겠지만, 산부인과 의사의 노고를 아는 이들은 살인적 업무량이라며 손사래를 칠 일이다. 돈보다 더 소중한 걸 잃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기자는 산부인과 의사로 분만에 관한 한 교과서를 완성하는데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홍영재 닥터를 간절히 만나고자 정보를 수집하던 중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만실에서 수만 명의 새 생명을 받아낸 그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쉰아홉의 나이로 대장암과 신장암에 동시에 걸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고군분투 했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는 진료를 대폭 줄이고서 전국으로 암 극복을 위한 강의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홍영재표’ 신개념 건강 강좌 ’헬스 오페라(HEALTH OPERA)’는 건강 100세 시대를 맞아 노년층 사이에 최고의 히트강좌로 소문이 자자했다.


잠 실컷 자 봤으면

지난 5월 26일. 강남에 있는 청국장 전문 식당에서 홍영재를 만났다.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서 힘찬 발걸음으로 기자 앞으로 걸어오는 그의 모습은 불과 며칠 전에 퇴역한 군 참모총장의 기세였다. 두 가지 암(癌)을 동시에 앓았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오히려 일흔 두 살 홍영재의 활약은 여전했다. 작년 1월, 전국 1만1천여 명에 달하는 국내 최고, 최대 규모의 연세대 의대총동창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것도 연세대 의대총동창회 최초로 실시된 선거에서 과반수 이상 표를 얻었다고 한다.

닥터 홍영재에게 뜻밖의 활약이 하나 더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의사 홍영재’를 치면 온통 청국장 얘기다. “닥터가 웬 청국장집 사장?”이라고 의아했지만, 지난날 그가 겪은 암과의 투병 사연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실제로 홍영재는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식이요법의 덕을 많이 봐서인지 ’항암식품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었다. 자신을 살린 유일한 식품이었던 청국장을 대중에게 널리 전파하겠다는 뚝심으로 4년 전부터 청국장 전문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기자를 청국장집으로 부른 이유도 그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청국장 식당이 마치 레스토랑처럼 멋집니다.
“(이 음식점의) 인테리어를 내가 다 했어요. 독일제 친환경 페인트로 칠했답니다. 방마다 다른 벽지 색상까지 내가 다 선택했어요. 사실 제가 미대 가려고 했었거든요. 반 고흐를 좋아해요. 의사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병원 인테리어에 신경을 써야 해요. (병원이) 아늑하고 정이 가야 하거든. 그것도 병원이 잘 되는 이유 중 하나지(웃음).”

▶ 13년 전 신장암과 대장암으로 투병하셨는데, 지금은 건강하신 거지요?
“그럼요. 매일 아침 여섯시 반쯤 일어나 호텔 헬스센터에 가서 요가와 유산소운동을 해요. 러닝머신을 30분 넘게 뜁니다. 저 벗겨 놓으면 배에 왕(王)자가 그려져 있어요. 자고로 나이가 들면 하체가 튼튼해야 해요. 나이가 들면 제일 약한 게 하체와 허리거든요. 허벅지가 튼튼해야 우리 몸을 지탱해줘 골프도 칠 수 있어요. 난 하루도 안 빼고 1시간 이상 운동합니다.”

▶ 80년대~90년대 서울 경기 지역에서 홍영재산부인과 인기가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에 강남에서 분만 전문병원을 개원하셨지요?
“1981년도였으니, 내 나이 서른여덟 살이었네요. 그때만 해도 애 셋, 넷은 예사롭게 낳던 시절이었거든요. 우리 병원에서만 하루에 최소한 10명 이상 받았어요. 많을 때에는 20명 넘게 애를 받았으니… 거참, 이상한게 꼭 한꺼번에 산모가 몰려오는 거예요. 인큐베이터와 베드가 모자랄 정도로 몰려와 비상일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이놈의 아기가 제발 좀 환한 대낮에 나오면 얼마나 좋겠어요. 꼭 새벽 1시 넘어서 많이 나오더라고… 새벽 3시, 4시, 5시… 꿀잠을 자고 있는데 꼭 나오는 거라. 그러면 밤을 꼬박 새워 애 받아야 하고, 다음날 낮에는 또 진료해야 하니 몸이 죽어날 수밖에...”

홍 원장은 한 달에 100여 건 넘게 분만을 해야 했던 시절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체력을 보충한답시고 곱창이나 삼겹살과 같은 기름진 음식을 소주와 함께 즐겼다. 이것이 쌓여 결국 대장암의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제가 세브란스에서 인턴을 할 때, 1970년대만 하더라도 대장암이 없었어요. 위암이나 장중첩증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수술방에서 대장암 수술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요즘 대장암에 많이 걸리는 이유도 먹는 것에 원인이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고기를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먹어요. 고기를 먹더라도 채소와 같이 먹어야 인체 안에서 생리작용이 잘 되고, 면역력이 높아질 수 있거든요. (한숨)”

▶ 한 달에 100여 명 분만을 하게 되면 돈도 돈이지만 몸이 축나는 걸 느끼셨을텐데요.
“말도 마세요. 그때 내가 받은 스트레스는 말할 수가 없어요. ‘스트레스를 엔조이하라’,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아요. 무슨 스트레스가 엔조이에요? 고통이죠. 병원 3층이 살림집이었는데, 자다가 전화벨 울리면 튀어 내려와서 애기 받아야 했어요. (분만 끝내고) 올라가서 몇시간이라도 눈 붙이려면 또 전화벨이 울리는 거예요. 그때 내 최대의 소망이 뭐였는지 아세요? 제발 하루만이라도 푹 잠자는 거였어요.”

 

<2편에서 계속>
 

[입력 : 2014-10-20]   이은영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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