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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제왕절개 출산 후 일주일만에 자결 장면 촬영, 그날 집에 가서 엄청 울었어요”

연기생활 52년 강부자의 당부

글  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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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주 기자
● 아카데미상보다 신사임당상을 받고 싶다.
● 연예계에서 ‘자식낳기운동본부 회장’님으로 통하다
● 고대광실에서는 웃음소리 안 나온다.
● 찌개냄비에 여러 식구가 숟가락 넣으면서 배운다.
● 아무리 잘나더라도 부모 앞에서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
● 애 키워줄 부모형제 없으면 집에 들어앉아라.
● 13남매 둘째딸인 효녀 배우 남보라 기특하다.
● 제왕절개하고 일주일 후에 자결신 찍어낸 억척 연기자.
● 완벽 할머니 연기를 위해 몸빼바지 안에 고무줄 늘어진 팬티 입었다.

강부자(姜富子) : 본관 진주. 1941년 논산 출생. 충남 강경여고, 충남대 국문과 중퇴. KBS TV 탤런트 2기(1962). 극단 산하 입단(1962), TBC 탤런트 전속 변경(1964), 연기생활 52년간 대표작품으로는 <정경부인>, <옥녀> <비둘기가족>, <상록수>, <인목대비>, <별당아씨>, <목욕탕집 사람들>, <불굴의 며느리>, <넝쿨째 굴러온 당신>,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연극 <천정엄마의 2박3일> 등 다수

 

   
 

 

 

 

 

 

제왕절개 일주일 만에 촬영 강행▶ 둘째, 따님 낳을 때 비화가 유명하시던데요. 제왕절개 수술 하고 나서 드라마 녹화를 들어가셨다면서요.
“TBC 대하드라마 <연화>에 출연할 때였어요. (그 드라마에서) 이순재 씨가 민대감이고, 내가 정경부인이었고, 김창숙이 연화 역할을 했는데, 그때 뱃속에 우리 딸이 있었어요. 감독님에게 ‘애를 낳아야 하는데 일주일만 빼주세요’하니까 ‘안 돼. 지금이 클라이막스인데 못 빼. 지금 빨리 낳고 나와’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다음 주 녹화 날까지 낳고 나가야 된다고 우겨서 촉진제를 맞았죠. (촉진제를 맞았는데) 아기가 나올 생각을 안 해서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했어요. 그때 제왕절개 한다고 배 열어보니까 테니스 공만한 물혹이 있어서 떼내고, 맹장도 떼내고, 애도 안 낳게 해버렸어요. 나박사님이 네 가지를 한번 수술로 다 하신 거였어요.”

 

 

 

▶ 제왕절개를 하고 나서 일주일 만에 녹화가 가능하던가요?
“말도 마세요. (드라마가) 클라이막스 였거든요. 보통 때에는 정경부인이라서 보료에 앉아서 ‘여봐라, 과천댁 있느냐’ 하면 되었는데, 그날은 조상님 사당에 가서 자결을 해서 피를 흘리고, 그런 나를 발견한 하인들이 나를 업고 뛰는 신(Scene)이었어요. (그 시절에는) 일주일분을 하루 종일 촬영했을 때인데, 얼마나 힘들던지. 그 아픈 설움을 누구한테 표현을 못 하겠더라고. 내가 너무 아파하면 사람들이 내 남편한테 ‘저 놈은 말이야. 여편네를 제왕절개까지 시켜가면서…’라고 괜한 말을 할까봐서… 배가 터질 것처럼 아파도 참아야 했어요. 그날 밤 집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한숨)”

▶ 아이 키우랴, 드라마 촬영하랴 너무 힘드셨겠어요.
“(지금까지) 제가 첫 애 낳고 20일 쉬어본 거 외에는 쉬어본 적이 없어요. 친정엄마와 언니가 애지중지 길러줬으니 연기를 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으면 오늘의 강부자가 없었을 거야. 애 낳고 드라마 찍으러 다닐 때 젖이 줄줄 흘러내리니까 엄마가 맨날 ‘젖 싸매라. 젖 싸매라’ 하셨어요. 젖이 줄줄줄 흐르면 맨날 애가 운다고. 난 젖을 좀 오래 먹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엿기름 물 먹으면서 젖을 말려야 했죠. 우리 애들이 젖 재촉이 심했어요. (젖 재촉 심한 애들을 잠재우기 위해) 쇠고기와 당근, 쌀, 시금치 넣고 푹 고아서 그걸 채에다 밭쳐 그 물을 마호병에 넣고 보릿물 대신 분유를 타서 먹이니까 네 시간씩 잠을 푹 자는 거예요. 우리 아들이 백일에 이가 위에 두 개, 아래 두 개 났었어요. (웃음)”

▶ 아드님과 따님은 해외에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들이 마흔 일곱 살인데, 오레곤 의과대학에서 알츠하이머하고 파킨슨병 연구하고 있어요. 딸은 홍대에서 조각공부 했는데, 아들이 지 친구를 소개해줬어요. 연세대 나와서 삼성에 다니다 MIT 공대를 들어갔는데, 지금은 미국 교통국에 근무하고 있어요.”

▶ 탤런트도 하셨고,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도 오래하셨고, 국회의원도 하셨는데, 바쁜 와중에도 불공을 드리러 절에 자주 다니시기로 유명하던데.
“친정어머니가 불자셨어요. 모태신앙이 있었지만 어릴 땐 성가대도 해보고 다 했어요. 드라마 <연화>  찍을 때 정경부인인 제가 절에 가서 기도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그때 의정부 화암사에서 촬영하면서 ‘보광화’라는 법명을 받았어요.”

▶ 종교라는 것이 어떤 일을 겪으면서 더 깊어지는데.
“사실 우리 아들이 누가 봐도 잘 생겼어요. 이묵원(남편)과 날 섞어놔서 멋져요. (아들이) 모범생이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안 좋은 일을 겪었어요. 체육시간에 열중 쉬어 자세로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도는 기합을 받다가 병이 났어요. 그날 제가 TV문학관 촬영 때문에 시골에 있었거든요. (촬영장에서 자는데) 꿈자리가 너무 사나운 거예요. 동네 이장네 가서 전화를 걸어봤죠. 엄마(친정모친)가 ‘아무 일도 없어. 어서 촬영 끝내고 올라와’라고 해서 ‘별 일이 없나보다’고 했는데, (집에 가 보니) 난리가 나 있었어요. 기합 받고 온 날 저녁에 아들 오른쪽 허벅지가 잉어가 뛰듯이 밤새도록 뛰었다는 거예요. 할머니와 남편이 밤을 새우면서 찜질을 해도 안 되니까 을지로에 있는 신경외과에 갔는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고대 부속병원으로 옮겨 놓았더라고요. (한숨)”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의학적으로.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에 생긴 급성 고관절염이었어요. 중학생이 되었다고 산 구두를 신으면서 뒷꿈치가 헐었었나 봐요. (발뒤꿈치가) 헌 채로 신고 다녔는데 기합을 받느라 피곤하니까 균이 헌 데로 들어가서 돌아다니다가 고관절에 자리를 잡아버렸을 거라고 해요. (아들이 고관절염으로) 6개월간 입원해서 치료 받았어요. 그때가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라디오 진행할 때였는데, 병실은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지켰고,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들 병 낫게 해달라’고 절에 가 미친 듯이 기도했어요.
하루는 병실에 앉았는데 복도를 왔다갔다 하는 의사양반이 다리를 조금 저는 거예요. 제가 부처님께 ‘우리 아들을 정 완벽하게 못 낫게 해주실 것 같으면 딱 저 의사만큼만 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딱 그 의사만큼 절어요. 정형외과 선생님이 세미나 할 때마다 아들 엑스레이를 걸어놓고 ‘이거는 사람의 힘으론 이렇게 나을 수 없다’라고 하신다고 들었어요. 몸 속에 부속 하나도 안 박고 그냥 병원을 나서 나왔어요.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에 병원비가 1,480만 원 나왔어요. 34년 전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어요.”

▶ 학교에 항의 안 했나요. 학교측 책임도 있지 않을까요.
“(항의를) 요만큼도 안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잘 했다 싶어요.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 체육선생님이 병실에 와서 사과하며 돈을 좀 내겠다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체육 선생이 군 제대하고 막 부임한 총각선생님이셨어요. 제가 그분에게 ‘이거는 선생님 책임이 아니다. 우리 아이만 불러서 기합을 준 것도 아니고, 다 같이 기합 받다가 이렇게 되었는데,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잖아요. 우리 아이가 우직해서 그런 거라고 했어요. 다른 애들은 선생님 안 볼 때에는 대충 걸었다는데, 우리 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키는 대로 했대요. 우리 남편도 주위에서 학교측에 항의해서 보상받다주겠다면 ‘절대 하지 마세요. 부모는 선생님에게 가르쳐달라고 맡겨놓았는데, 그렇게 항의하면 어떤 선생님이 가르치겠냐’고 거절했대요. 황인용 씨는 날보고 ‘당신 대단하다. 그 와중에도 아침에 방송하면서 편지 읽고 깔깔거리고 웃으며 진행하고 한 번도 눈물 흘리는 것 못 봤다’고 감탄하더라고요.”

▶ 후배 연기자들 중 어머니로 참 훌륭하다 싶은 배우가 있나요?
“국악인 오정해 있지요? 아들 하나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과 다르게 아주 엄하게 키우더라고. (오정해 아들이) 네 다섯 살 때에도 엄마에게 꼭 존댓말 하면서 깍듯하고 예의가 발랐어요. 요즘 사람이 옛날 방식으로 호되게 키우기 쉽지 않거든요. 부모를 겁내고 무서워해야 사회에 나가서 모범생이 되는 거예요. 좀 활동하는 여배우들 보면 돈 잘 버니까 고급인력 쓰면서, 애를 아예 아줌마랑 자게 하던데 저는 반대예요. 어느 부잣집에 애 보는 아줌마가 들어오면 애가 자는 척을 한 대요. 아줌마가 맨날 ‘어서 자’라고 하니까 아줌마만 보면 자는 척을 하는 거라고… (한숨)”

<5편에서 계속>

[입력 : 2017-05-16]   이은영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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