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에 따르면, 강 장관은 이날 오후 11시 45분부터 약 15분 동안 이뤄진 한미 외교장관 통화에서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의 이번 조치 철회와 함께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일본과의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일본의 무역제한 조치가 우리 기업에 피해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 체계를 교란시킴으로써 미국 기업은 물론 세계 무역 질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이는 한일 양국간 우호협력 관계와 한미일 3국 협력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가운데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인한 심화되는 한일 갈등 속에 양자 간 직접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미국의 중재를 설득하려는 행보로 보인다.
김 차장은 전날 오전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 워싱턴 현지시각으로 10일 오전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차장은 일본 수출규제 국면에 깊숙이 관여해 왔지만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30대 그룹 총수 간담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같은 시각 미국 방문길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김 차장은 참여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 초반까지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통상분야 전문가다. 청와대 안보실 경험까지 겸비해 현재의 국면을 해결하기에 최적의 인물로 평가 받는다. 김 차장은 워싱턴 방문 기간 백악관을 찾아 카운트파트인 찰스 쿠퍼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차장은 지난 4·11 워싱턴 한미(韓美)정상회담 이전에 쿠퍼먼 보좌관과 사전 의제 조율을 한 바 있다.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는 김 차장은 이번 방문기간에도 만나 정치적 보복으로 이뤄지고 있는 일본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함을 적극 알릴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 가운데 전략물자 일부가 북한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통상 이슈를 안보이슈로 끌고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김 차장을 워싱턴으로 급파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전날 "일본 정부가 아무런 근거 없이 대북 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양국의 우호와 안보 협력 관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제 공조 추진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 위에서 풀이된다.
산업부는 이와 관련 "우리나라 전략물자 수출관리제도가 효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기사에 언급된 불화가스 관련 무허가 수출사례는 일부 국내업체가 UN 안보리결의 제재대상국이 아닌 UAE, 베트남, 말레이시아로 관련 제품을 허가 없이 수출한 것을 우리 정부가 적발한 사례이며 일본산 불화수소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 차장은 지난해 통상이슈를 안보이슈와 연계했던 미국의 사례를 해결한 경험을 갖고 있던 것도 미국 방문의 한 배경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자동차 분야에 대한 한국 수출 차량에 대한 중단과 관세 부과 조치를 시도했지만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던 김 차장이 이를 막은 바 있다.
미국은 자동차와 특정 자동차 부품의 수입이 미국 생산자들의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저해하고 미국 내 자동차 산업을 위축시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로 무역확장법 232조에 수입중단 제한조치를 압박한 바 있다. 결국 미국은 232조에 따른 협상 대상국에 유럽연합(EU)과 일본을 포함 시켰지만 한국은 예외로 뒀다.
미국은 한국 자동차의 수출을 막으려 했고, 일본은 거꾸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수출을 규제하고 있지만 상대국들이 통상 이슈를 안보 이슈와 연계했다는 점에서 두 사안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