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해 정부와 국내 기업의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 일각에서는 사태가 조기에 종결되지 못하고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파생된 문제가 국내 산업을 흔들자 업계는 "개별기업의 입장을 언급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필수 소재 재고가 두 달이면 동이나 조업 중단 위기에 몰릴 수 있어 속앓이만 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7월 1일 스마트폰 등 유기 EL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의 한국에 대한 수출을 엄격하게 심사한다고 발표했다. 강화된 수출 규제는 오는 7월 4일부터 적용된다.
레지스트의 경우 일본 기업의 세계 점유율은 90%에 달하며, 에칭가스도 90% 전후로 알려졌다. 경제산업성은 이번 주 내에 이들 품목에 대한 구체적인 한국 수출규제 강화 개정안을 통지할 예정이다.
이번 일본의 보복 조치에 대해 외교부는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일본대사를 초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강화 조치에 항의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계 등과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가 국내 반도체 업계와 수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와 수급상황, 수입대체 가능성 등을 점검했다.
성윤모 장관은 "일본 정부가 발표한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는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을 이유로 한 경제 보복 조치이며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에 비추어 상식에 반하는 조치"라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는 향후 WTO 제소를 비롯해서 국제법과 국내법에 의거, 필요한 대응 조치를 취해 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특단의 대응책이 현재로서는 없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업들도 사태 파악과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 자국 기업에도 피해가 예상되고, 국제 무역갈등도 촉발 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 수출 규제 조치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지만 현실화 됐다"면서 "기업 입장에선 생산차질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한 시나리오별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중이지만 일본의 기술력을 단기간에 따라가기는 어렵다"면서 "전면적인 수출금지가 아니라 절차를 강화하는 것인 만큼 당장의 피해는 제한적일수도 있지만 한일 관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건은 비즈니스 이슈가 아니라 국제정치 이슈라 개별 기업 입장에서의 대책을 언급하기가 어렵다"고도 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단기적으로 한 달에서 두 달까지는 이미 수입한 소재를 바탕으로 제품 생산에 큰 차질을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완제품까지 포함하면 최대 3개월간은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이 90일 정도 걸리는 심사 및 허가 절차를 얼마나 까다롭게 할지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영향을 받는 국내의 반도체, TV 산업은 전체 산업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향후 국내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은 일부 재고가 있을 수 있지만 2~3개월 뒤에는 여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간 빠른 해결 없이는 기업들의 제품 생산은 물론 경제 전체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