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군이 시리아 북동부 국경 지대에 위치한 아비아드와 라스 알 아인 인근 마을 11곳을 점령했다고 터키 관영 아나둘루통신이 10월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반면 시리아 쿠르드족은 터키군의 공격을 막아냈다고 맞섰다.
통신은 터키군이 전날 유프라테스강 동족에 위치한 알 야비사 마을과 탈 판다르 마을에서 처음으로 테러분자를 제거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탈 아브야드에 위치한 마을 4곳과 라스 알아인에 위치한 마을 5곳을 연이어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터키군은 탈 아브야드와 라스 알 아인을 포위하고 있다. 터키 국방부는 트위터에 "테러분자 174명이 터키군의 군사작전으로 무력화(사망)됐다"고도 발표했다. 10일 오전 현재 총 181회 공습을 단행했다고도 했다.
통신은 터키가 지원하는 시리아 반군 시리아 국민군(NSA)가 알 하사카에 위치한 디르 바시예(Dirbasiye) 지역을 장악해 시리아 북동부를 장악한 반군연합 시리아민주군(SDF)의 주축인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의 보급로를 차단했다고도 전했다.
다만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부 장관은 이날 터키 방송과 인터뷰에서 "터키군이 시리아 국경에서 18마일(약 29㎞)이상 전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터키가 제안한 안전지대의 폭과 동일하다. 터키는 이 지역에 자국이 수용 중인 시리아 난민을 재정착시킬 계획이다.
AP통신과 CBS 등에 따르면, SDF와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터키군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절하했다. 무스타파 발리 SDF 대변인은 트위터를 통해 "터키군의 지상공격은 SDF 전사들에 의해 격퇴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터키군의 공격으로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희생이 속출하고 있다고도 호소했다. IS 조직원을 가둬 둔 수용소 한 곳도 타격을 입었다고도 전했다.
SOHR도 SDF가 방어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SOHR은 터키군의 공습으로 쿠르드족 적어도 23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국경 지역을 탈출한 시리아인은 6만명에 달한다고도 했다. 노르웨이 난민협회에 따르면, 시리아 북서부 국경 5㎞ 이내에 살고있는 시리아인은 45만명 정도다. 국제구호협회(IRC)도 최소 6만명, 많으면 30만명이 보금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터키의 이번 공격에 대해 시리아 외무부 장관은 터키의 군사행위를 '침략'으로 규정한 뒤 "시리아군은 시리아 영토에 불법적으로 주둔한 외국 침략군과 대치할 것이고, 닥쳐올 모든 도전에 직면할 준비가 돼 있다"며 "영웅적인 군대가 정당한 권리의 틀 안에서 국민 개개인을 지켜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터키의 시리아 북동부 국경도시에 대한 공격을 두고 국제사회의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터키군이 시리아에서 자행하는 일방적인 군사공격을 강력히 비난한다"면서 "터키는 가능한 빨리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터키는 시리아에서 국제사회의 최우선 목표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면서 "터키가 IS의 재발호를 돕는다면 국제사회 앞에 그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그는 IS를 멸칭인 '다에시'로 호칭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등 국제사회가 터키군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을 '침략'이라고 규정하면 터키가 수용 중인 시리아 난민 수백만명을 유럽으로 보내겠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는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할말이 없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시리아와 수차례 전쟁을 치룬 '적국' 이스라엘도 시리아 쿠르드족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미국의 시리아 북동부 지역 철수와 관련해 발표한 첫 공식 논평에서 터키의 군사행동을 강하게 비난하고 시리아 쿠르드족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침략을 규탄한다"면서 "터키와 터키 대리인들이 자행하는 쿠르드족 인종청소에 대해 강하게 경고한다"고 했다. 이어 "이스라엘은 용감한 쿠르드족에게 인도주의적 지원과 비군사적 원조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앞서 열린 4차 중동전쟁 희생자 추모식에서 이스라엘도 미국이 등을 돌릴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는 "우리는 지난 몇년간 미국의 지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우리는 '어떤 위협에도 스스로 맞서 방어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기억하고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인도주의적 우려를 천명했다.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리아 동부지역에서 갈등이 고조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군사작전은 항상 유엔헌장과 국제 인도주의적 법률을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랍연맹도 사무처장 명의로 "회원국의 주권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아랍연맹은 오는 12일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회의를 소집한다.
다만 러시아와 이란은 터키의 안보 위협을 이해한다면서 미국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터키의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면서도 "터키와 시리아가 1998년 체결한 앙카라 협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0월 10일(현지시각) 소집됐지만 터키에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 중단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 채택에는 실패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폴란드 등 5개국은 터키의 이번 시리아 공격과 관련해 유엔 안보리 비공개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터키에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채택하기 위해서다.
이들 5개국은 "터키의 군사행동이 시리아 지역에 남아있는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잔당 제거라는 목적 달성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터키는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터키 일간 사바흐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 크래프트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비공개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회의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시리아 북동부에 군사공격을 감행한 터키의 결정은 어떤 식으로든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충분히 전했다"고만 말했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은 10월 11일자 지면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느닷없이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결정하고 나서 '이런 끝없는 전쟁은 그만둬야 한다'고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한국에 대해서 할 수도 있을 것이"이라고 언급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햄리 소장은 "만일 미국이 주한 미군을 철수하게 된다면 트럼프가 시리아에서 했듯 일방적으로 철수를 결정해버리는 것이 유일한 시나리오"라며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고 나서 '내가 한반도에서 평화를 이뤘다'며 '이제 한반도에 핵전쟁은 없을 테니 주한 미군은 필요 없다'고 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