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앤드미에 타액 샘플을 보내면 미국을 기준으로 일주일이면 분석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처음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는 13년이라는 시간과 27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2019년에는 2일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23앤드미가 보내오는 분석결과에는 의뢰자의 신체적 기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떤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지 등 240가지 이상의 유전적 특징과 개인 건강정보가 담겼다. 가격은 기본 정보 99달러, 건강정보를 포함하면 199달러다.
23앤드미는 타액 샘플 제공자의 동의를 얻어 전 세계인의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는 23앤드미의 연구진과 제약회사와 같은 파트너에 제공된다. 제약회사는 이를 토대로 각 국가와 인종, 유전적 특성에 따른 치료제를 연구한다. 실제로 제넨테크Genentech는 항암제 아바스틴Avastin이 개인에 따라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식습관과 운동, 질병 예방에 관련된 해결책은 별도로 만들어진다. 물론 장애물도 있다. 2014년에는 미국 식품의약청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서 판매금지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23앤드미의 유전자 분석 키트를 사용하고 있고, 질병 예방과 치료제 개발에 급속하게 다가서고 있다.
진단에서 예방, 예방적 수술로
2013년, 할리우드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의 유방 절제 수술 소식은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고, 과연 이 방법으로 암을 예방할 수 있는지 격렬한 논쟁이 일었다. 앤젤리나 졸리는 모계 혈족의 유방암과 난소암 가족력 때문에 자신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0% 이상이라는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라 예방적 수술을 결정했다. 이후로 한국에서도 BRCA 유전자Breast Cancer Gene 보인자들이 예방적 수술을 선택하는 사례가 2017년까지 4년간 5배 이상 늘었다. 실제로 여러 연구를 통해 유방암발병확률은 90%, 난소암 발병확률은 97%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예방적 수술과 같은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이 우선이다. 예방적 수술을 위한 진단은 대부분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유전자 분석은 단순하게 의뢰자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일반인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와 의료 데이터베이스를 비교 분석하는 과정이 필수이다. 23앤드미와 같은 유전자 분석 회사는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분석한다. 23앤드미는 유전자 분석을 의뢰한 사람의 90% 이상이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의학적으로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핀란드처럼 정부 차원에서 국민
의 유전자 분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공개해 진단과 예방의학을 지원하는 국가도 있다.
의료 빅데이터 전쟁
2017년, 미국 FDA는 23앤드미에 10가지 유전병에 관한 정보를 개인 소비자에게 제공해도 좋다고 허가했다. 이후 23앤드미는 ‘유전인자 보유 내역’을 통해 특정한 유전적 질병 위험에 노출되었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질병에는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후발성알츠하이머병Late-onset Alzheimer’s disease, 비열대성 스프루Celiac disease, 유전성 혈액색소침착증Hereditary hemochromatosis과 같은 병이 포함된다. 의뢰자는 유전적 질병에 노출된 것이 확인되면, 지속해서 정밀 검사를 하고 발병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2019년에는 23앤드미가 더 놀라운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게 축적된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 제2형 당뇨병 예측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당뇨병은 제1형과 제2형으로 구분된다. 제1형은 성장 과정에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생긴 당뇨병이고, 제2형은 성인이 된 후 여러 가지 이유로 몸의 인슐린 저항성이 커져 생기는 당뇨병이다. 23앤드미는 당뇨병 예측에 250만 명 이상의 데이터베이스와 1,000개 이상의 유전 변이를 도출해 만든 다(多)유전자위험점수Polygenic Risk Scores를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예측 서비스가 시작되면, 당뇨병 발병 위험이 큰 사람들이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개선해 발병 위험과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
핀란드의 핀젠FinnGen 프로젝트는 2023년까지 전체 국민의 10%인 50만 명의 의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개방해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는 프로젝트이다. 또한, 핀란드 정부는 데이터 호수Data Lake 프로젝트를 통해 구축된 전 국민 550만 명의 의료 데이터베이스를 핀젠 프로젝트와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핀란드에는 수많은 스타트업이 바이오 분야에 등장했다. 신체의 움직임을 분석해 정신 질환을 진단하고, 인공지능을 결합해 개인별 맞춤형 의료를 제공하고, 스마트 의료기기를 통해 개인의 건강을 진단하는 기업이 대표적이다. 바이오 선진국들은 유전자와 의료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유전자 분석에서 크리스퍼 혁명까지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미국 에너지부와 보건부가 1990년에 시작해 15년간 30억 개에 이르는 인간이 가진 모든 염기서열을 해석하는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생물학과 컴퓨터기술이 발전해 2년의 기간이 단축되었고, 인간이 가진 모든 유전자의 99%가 99.99%의 정확도로 해석되었다. 이를 통해 DNA 염기서열에서 유전자의 위치를 찾아내고, 유전자의 특징을 알아내 암이나 알츠하이머와 같은 유전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유전자 분석에는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있는 유전자 분석 장비업체 일루미나Illumina는 세계 최고의 유전자 분석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장비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이 생산하는 100만 달러 가격의 유전자 분석 장비 노바섹NovaSeq은 복사기와 유사한 크기로 6테라바이트 분량의 유전자 데이터를 24시간 안에 분석한다. 현재 유전자 분석은 의학과 범죄 수사와 같은 기초분야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지만, 이미 모든 산업으로 확장할 준비를 마쳤다.
특정한 사람들은 오이를 아주 싫어한다. 대부분 사람은 상큼한 맛에 오이를 즐기지만, 이들은 오이 맛이 아주 이상하다고 말한다. 특히, 아이들이 오이가 싫다고 하면 편식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발견된 특정한 유전자는 쓴맛을 보통 사람보다 100배 이상 더 느끼도록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오이는 먹기 어려운 채소일 수밖에 없다. 유사하게 쓴맛을 더 좋아하거나, 짠맛이나 매운맛을 더 좋아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도 있다. 특정한 냄새에 끌리거나 과도하게 반응하는 유전자도 있다. 세계적 식품회사들은 맛과 향에 유전자 분석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 제약사나 화학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전자 분석으로 남은 수명도 알 수 있다. 미국의 텔로이어스Teloyears는 89달러에 텔로미어Telomere 검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의 염기서열 부위로 염색체 손상이나 다른 염색체와의 결합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을 할 때마다 그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는데, 세포 분열이 특정 횟수를 넘으면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져 더는 분열하지 못하고 사멸하고 만다. 그래서 텔로미어의 길이를 측정하면 노화하는 속도와 남은 수명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암세포는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도록 하는 텔로메라아제Telomerase를 계속 분비해 죽지 않는다. 현재 이를 활용한 노화 방지와 암 치료가 연구 중이다.
크리스퍼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혁명으로 불리는 DNA 편집기술은 손상된 DNA를 잘라내고 정상적인 DNA로 대체하는 유전자 편집기술이다. 유전자 편집기술은 최근에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DNA 오류로 발생하는 질병 치료에 획기적인 진전이 기대된다. 그러나 체세포 유전자 치료를 넘어 생식세포 유전자 치료 혹은 개량에 DNA 편집기술이 사용된다면 지금의 인류와는 다른 종이 탄생할 위험이 있다. 이에 대한 윤리적 논란은 계속될 것이지만, 이를 막을 방법 또한 없다.
헬스케어 산업은 이렇게 주변의 모든 산업을 융합하고 분화하면서 성장할 준비를 마쳤다. 치료 중심의 병원과 제약산업에 바이오기술과 IT가 가세한 지는 이미 오래다. 바이오기술은 유전병 진단에서 치료에 이르는 분야까지 기술력을 키우고 있고, IT는 바이오기술과 결합해 질병의 진단과 예방, 치료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2030년이 오기도 전에 혈액 한 방울이면 암을 진단할 수 있다. 이제 인간의 손으로 인간의 수명을 완전히 바꿀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