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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슈

원천석과 노구소

"노구소의 노파를 향해 걸어가는 편도 6km의 시골길은 불안했다"

글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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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 원천석(1330-?)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인으로 당시 혼란한 정계를 개탄하며 개성을 떠나 치악산에 들어가 은거했다고 전한다. 농사를 지어 부모를 봉양하고 이색(李穡) 등과 교유하며 지냈다. 그는 어린 이방원의 스승이었고, 즉위한 태종이 여러 차례 벼슬을 내리고 불렀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급기야 태종은 그를 직접 찾아가 설득하려고 하였으나, 이를 미리 눈치 챈 원천석은 한 노파에게 자신이 간 방향과 반대로 가르쳐 줄 것을 부탁하고 떠났다. 그예 태종은 천석을 만나지 못했지만 계석(溪石) 올라 노파에게 선물을 주고 또 그 아들에게 관직도 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속인 사람이 임금인 것을 안 노파는 그 죄책감으로 인근 소에 투신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태종이 올랐던 계석은 태종대(太宗臺)로 노파가 몸을 던진 소는 노구소로 불린다. 예버덩에서 약 6km 떨어진 치악산국립공원 입구에 있다. 아직 초봄인데도 소는 여전히 사람을 잡아먹을 만큼 물이 많았고, 태종대는 기암절벽 위에 기품 있게 서 있었다. 지난해부터 강림면과 주민들이 힘을 모아 노구문화제를 연다고 하니 이곳 사람들에게 원천석과 노구소는 이미 중요한 문화콘텐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진사대부로 성리학 보급에 기여했다는 원천석이야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의 정치적 신념을 지키는 게 한편 정당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임금인지 모르고 속인 일을 두고, 그것도 지엄하신 선비님이 시켜서 한 일을 두고 목숨까지 걸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버덩을 다녀간 문인들은 노파의 죽음은 죄책감이 아니라 두려움이 원인이었을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지엄하신 선비도 단칼에 처단할 수 있는 게 절대군주이니 일리 있는 추론이다. 고사에 따르면 이 노파는 왕으로부터 선물도 받았고 아들은 현감 자리까지 얻었으니 거짓이 탄로 난다면 죽음을 면키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왕조시대의 백성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왕권은 하늘이 내린 것이라는 관념이 절대적 지위를 누린지 수천 년이었기에 산골 노파에게 임금은 인간이기보다 어떤 신적 존재가 아니었을까. 관우도 신이 되지 않았는가. 가끔씩 접하는 영상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현지지도 때 일부 북한 주민들이 보이는 환희의 눈물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죄책감이든 두려움이든 죽음은 결국 다른 게 아니지만, 노구소의 노파를 향해 걸어가는 편도 6km의 시골길은 불안했다. 대부분의 구간에 인도는 없었다. 도로는 자동차전용도로에 가까웠다. 보행자는 질척대는 산길이나 둑길을 걷거나 아예 자동차를 타고 다니라는 주문일 수도 있었다. 한적해서 오히려 더 쌩쌩 달리는 자동차와의 절대 불평등한 접촉을 회피하기 위해 나는 자동차 주행 차로를 마주보며 목숨을 걸고 걸어갔다.

  

  

  

 

 

 

 

 

 

 

[입력 : 2019-03-08]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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