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1. 이슈

거미랑 동거하기

"거미야말로 자신의 운명에 순명하는 진정한 자연주의자인지 모른다"

글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시인 박성우는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 걸으면 걷는 대로 /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라며 거미의 일상적 행태를 곡예와 같은 현대인의 삶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는 또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거미)며 거미와는 결코 동일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는 곤충생태학적 사실까지 보고했다.

         

그러나 횡성 예버덩문학의집에 기숙하고 있는 한 초라한 시인은 아예 목숨을 내놓는 거미를 보며 살고 있다. 도시에서만 살던 이 시인은 혐오스런 거미의 여덟 개 다리를 결코 좌시하지 않으며, 거미로 하여 상상되는 곤충의 인간계 잠입을 묵과하지 않는다. ‘목에 줄만 감지 않았지온몸을 던져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그 무모한 자살 행위는 반드시 응징하고야 만다. 빗자루를 들고 내리치거나 두루마리 휴지를 던져 그 혐오를 기어이 제거한다.

      

그런데 이런 응징을 매일 해야 한다. 책상과 의자와 옷걸이 등 꼭 필요한 간단한 도구만 구비된 문인들의 작업 공간. 기능적 필요를 최적화시킨 작은 방에서 거미는 너무 빨리 너무 뚜렷이 포착된다. 은신처가 없는 인간계에서 거미는 결코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특히 혐오에 민감한 이 둔각(鈍角)의 시인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러니 거미는 이 방에서 사라졌어야 한다.

      

, 아니다. 거미는 매일 나타난다. 내쫓아도 때려잡아도 고이 쓸어 담아 버려도 거미는 계속 나타난다. 이처럼 목숨을 거는 거미 군단을 이전에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눈앞의 거미는 내 생활의 전제조건인 양 날마다 눈에 뜨이니 어떤 식으로든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와 거미의 동거는 우정이 아니라 분노조절 혹은 혐오 조절에 가깝다.

      

거미만이 아니다. 이웃집 고양이는 아예 출입문 앞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다. 이 겁 없는 흰 고양이는 애교 섞인 울음을 울다가 자기 몸을 문에 막 비벼대기도 한다. 인간에게 무시당한 고양이의 관심 촉구 행동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전혀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 고양이의 행동을 주목하게 된 건 사실이다. 어디선가 강아지도 나타난다. 이놈은 뒷다리를 구부려 엉덩이를 낮춰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대며 아예 대놓고 친분을 과장한다. 언제 봤다고.

      

고양이와 개가 인간과의 오랜 친분을 과시하는 것이야 명실상부한 일이지만 거미와 나의 동거는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다. 나는 여전히 이 혐오스런 갑각체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자꾸 보게 되니 안타갑기도 하고 애처롭다는 생각도 든다. 비극적 운명에 비유되곤 하는 거미줄이미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완강한 거부 의사와 처절한 응징에도 끊임없이 자살 행각을 일삼는 이들의 무반성적 행동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거미야말로 자신의 운명에 순명하는 진정한 자연주의자인지 모른다.

  

  

  

[입력 : 2019-03-07]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more article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Copyright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기사

독자댓글
스팸방지 [필수입력] 왼쪽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포토뉴스

Future Society & Special Section

  • 미래희망전략
  • 핫뉴스브리핑
  • 생명이 미래다
  • 정책정보뉴스
  • 지역이 희망이다
  • 미래환경전략
  • 클릭 한 컷
  • 경제산업전략
  • 한반도정세
뉴시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