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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론

진보성향으로 바뀐 헌법재판소, 7년만에 기존 판단 바꿔...종교계, 낙태죄 '헌법불합치' 유감 표명하며 개정 논의 적극 참여할듯

글  이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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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4월 11일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수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래픽=뉴시스

헌법재판소는 4월 11일 임산부와 의사 등이 낙태를 했을 때 처벌토록 한 형법 269조1항과 270조1항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만 당장 법의 효력이 없어질 경우 사회적으로 혼란이 빚어질 상황을 고려해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이날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이 헌법불합치로 판단했으며,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단순 위헌의 의견을 냈다.
 
낙태죄 처벌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전격적으로 나온 배경에는 시대 변화와 맞물려 재판관 구성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5명의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내는 등 다수의 진보 성향 재판관이 목소리를 내면서 2012년 헌재 결정이 뒤집혔다는 것이다.
   
이들 재판관은 낙태죄가 임신 기간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의사를 처벌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봤다.

 

지난 2012년에는 재판관 4대 4로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결국 합헌 결정이 났지만 7년 만에 과반이 넘는 위헌 판단이 나온 것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당시와 비교해 재판관 구성이 모두 달라진 만큼 이번 선고를 앞두고 지난 결정이 뒤집어질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최근 잇따라 헌재에 입성한 재판관들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면서 기존 결정이 바뀌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특히 재판관 9명 중 6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고, 실제 이중 5명이 낙태죄를 헌법불합치 또는 위헌으로 판단했다. 유남석 소장과 이영진·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이다.
 
유남석 소장은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추천된 김기영 재판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었다.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냈다.
 
헌재 사상 최초로 여성 재판관 2명이 동시에 재임 중인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선애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이은애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전효숙·이정미 재판관에 이은 세번째, 네번째 여성 재판관이다.
 
반면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합헌 결정이 난 후 7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선례의 판단을 바꿀 정도의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합헌으로 판단했다. 조 재판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으며, 이 재판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야당인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임명됐다.
 
두 재판관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는 중대한 공익이며 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몫으로 임명된 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은 의견이 엇갈렸다. 이번 선고는 오는 18일 임기를 마치는 이들의 퇴임을 앞두고 마련돼 두 재판관의 판단이 더욱 주목됐다.
 
낙태죄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 재판관과 달리 서 재판관은 위헌적인 규정으로 판단했다. 다만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것 자체가 모든 경우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곧바로 위헌으로 결정할 경우 법적 공백이 생길 수 있는 점을 고려해 법 개정을 주문했다.
  
조 재판관과 서 재판관이 헌재를 떠나면서 향후 재판관 9명 중 8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들로 채워지게 됐다. 문 대통령은 현재 문형배·이미선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지명한 상태다.
 
한편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린 것과 관련해 종교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에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천주교가 가장 먼저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고 평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도 대변인인 허영엽 신부를 통해 유감을 표했다.
 
보수 개신교계도 즉각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는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을 내렸는데, 인간의 결정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결정에 대해서 규탄하며,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주장했다.
 
1953년 법이 제정된 이래 66년 동안 낙태죄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이어져왔다. 특히 낙태죄 위헌청구소송 관련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는 꾸준히 낙태죄 폐지 반대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 이들은 "태아의 독자적인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낙태죄 폐지 반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종교계는 모자보건법을 들어 '자기결정권이 과도하게 제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해 왔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자 한국 종교계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톨릭 나라인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로 임신중지 합법화를 결정했다.
   
국내 일부 진보 종교계 역시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고 있다. 감리여성지도력개발원·기독여민회 등 6개 기독단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천주교 주류와 극우 개신교 세력은 이성애·가부장제 중심의 정상가족 담론을 내세워 임신중단을 불온하고 불경한 범죄로 낙인찍고 있다"며 "우리는 교회가 여성에게 순응적 인간상을 강요하며 여성을 소유물이나 소모품처럼 대해 온 종교적 관성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한편 헌재는 낙태죄 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낙태 관련법을 개정하도록 했다. 개선 입법이 없을 경우 2021년 1월1일부터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상실한다.
      
개정에 1년반 이상 시간이 남아 있어 그동안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계는 우선 여성과 태아를 낙태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천주교계는 낙태 합법화의 대안으로 미혼모에 대한 배려 확대, 남성에게도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대한 지원, 성·생명·사랑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강조했다.
   
한기총은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전광훈 목사는 "헌재의 판단을 강력히 규탄할뿐 아니라 절대 반대하며, 헌재의 결정이 끝이 아니라 이제는 태아와 생명에 대해서 전 국민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입력 : 2019-04-11]   이승주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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