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뉴저지의 패션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둘째 딸이 휴가를 내서 여행을 같이 하기로 했다. 시작은 뉴욕이었다.
처음 계획은 14일 동안 뉴욕- 워싱턴- 나이아가라-퀘벡-뉴저지-뉴욕을 돌아오는 코스였다. 하지만 뉴욕에서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생각보다 둘러볼 곳이 많아졌다. 그래서 캐나다의 나이아가라와 퀘벡 여행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뉴욕-펜실베이니아-워싱턴-뉴저지-뉴욕을 둘러보는 코스로 정했다. 그 다음은 혼자서 서부여행을 일주일 정도 떠나기로 했다.
뉴욕의 맨해튼은 높고 화려했다. 이곳이 미국의 상업, 금융, 무역, 문화 예술의 중심지가 아닌가. 나는 뉴욕에 오면서 1988년에 개봉된 부르스 윌리스 주연의 "다이하드"를 떠올렸다. 뉴욕 경찰인 존 맥클레인 형사가 LA 휴가 중에 테러리스트들을 일망타진한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나는 영화 다이하드를 보고 나서 뉴욕 경찰하면 패기 넘치는 존 맥클레인 형사를 연상했다. 그런데 다이하드가 첫 개봉되고 나서 2001년 세계를 테러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9.11사건이 발생했다. 뉴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리스트의 비행기 충격으로 한순간에 사라지는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보아야만 했다. 뉴욕에 도착하고 나니 그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뉴욕 여행에 나선 첫날은 비가 간간이 뿌렸다. 뉴저지에서 버스를 타고 뉴욕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20여 분 정도의 거리였다.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뉴욕의 장대함이 눈앞에 펼쳐졌다. 버스터미널을 빠져나오자 바로 앞에 그 유명한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로고가 새겨진 건물이 탁 버티고 있었다.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인 이 신문은 1851년에 창간됐다. 퓰리처상을 90회 가까이 수상하는 저력 있는 신문사를 이렇게 보게 되니 중앙 일간지에서 오랫동안 카피라이터로 일해온 나로서는 감정이 남달랐다.
나는 딸과 함께 부근 커피숍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뉴욕 타임스 건물을 오랜 시간 내다보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자리를 옮겨 뉴욕커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기 위해서 브라이언트 파크를 돌아보고 부근에서 햄버거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리고 세계 뮤지컬의 중심 무대인 브로드웨이를 걸었다.
브로드웨이 극장에는 영화로 대박을 친 라이언 킹, 알라딘, 시카고 등 눈에 익은 작품들이 줄줄이 공연 중이었다. 딸아이는 뉴욕에 왔으니 뮤지컬 한 편은 보고 가라며 '알라딘'을 예매했다. 사실 난 시카고가 더 보고 싶었다. 아니면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흑인 여가수 티나 터너의 "Proud Mary" 콘서트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딸아이에게 이름도 모를 흘러간 가수의 콘서트를 보자고 할 염치는 없었다.
브로드웨이를 지나 타임스퀘어를 걸어서 갔다. 한낮인데도 타임스퀘어의 네온사인은 화려하고 발칙했다. 화면이 수없이 바뀌고 형형 색색의 컬러들이 전광판을 계속 달구고 있었다. 이곳에 노출되는 광고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과연 광고 효과는 있을까? 괜한 걱정도 해본다. 가끔 LG전자와 연세대학교의 전광판도 눈에 띄어 반가웠다. 그리고 신라면 광고판으로 도배한 관광버스도 지나다닌다. 신라면이 뉴욕커들에게 인기라더니 눈앞에서 보니 자랑스러웠다. 이곳의 명물로 알려진 네이키드 카우보이가 반나체에 기타를 메고 근육 자랑을 한다. 슬그머니 상체만 촬영을 했다.
타임스퀘어 광장은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화려하고 복잡했다.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이곳에 가면 타임스퀘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빨간 계단이 있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이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티켓도 저렴하게 구입하고 전광판 구경도 하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 비집고 앉을 여유가 없었다. 그냥 먼 발치에서 계단을 바라보며 패션의 중심지인 5번가로 향했다.
5번가는 세계의 명품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럭셔리의 대명사 격인 거리이다. 비는 멎다 내리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거리가 한산했다. 세계에서 가장 핫한 이 거리에 자동차도 사람들도 많지가 않았다. 거리엔 행인보다 경찰들이 더 많아 보였다. 곳곳에 방송장비도 보인다. 여기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스마트폰을 검색하자 오늘 뉴욕 거리는 세계의 정상들이 모여 '유엔 기후 행동 정상 회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문재인 대통령도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용맹스럽다는 뉴욕 경찰의 모습은 수없이 볼 수 있었다. 기마경찰도 보고 허리춤에 경찰 메달을 단 미모의 동양계 여형사도 보았다. 우스운 것은 경찰관들의 몸짓이 생각보다 비대해 보였다.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는 식습관이니 경찰이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몸짓으로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처럼 범인을 좆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어떤 앳된 흑인 여자 경찰은 몸짓에 비해 훨씬 큰 경찰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하마터면 마주 보고 큰 소리로 웃을 뻔했다.
센트럴 파크는 맨해튼의 허파와 같은 구실을 하는 곳이다. 입구에는 꽃술을 단 마차들이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우선 공원 규모가 엄청났다. 직사각형의 면적이 3.41평방 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1800년대 중반 맨해튼의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처럼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조성됐다고 한다. 공원 안은 총면적의 8분의 1을 차지하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저수지를 비롯해 공원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벨베데레 성, 컨서버토리 가든, 센트럴 파크 동물원, 가수 존 레넌을 기념하는 스트로베리 필즈 등 명소들이 많다.
공원 안은 비가 그치고 강렬한 햇볕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주말 오후여서인지 공원 안은 조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부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바위 위에 앉아 독서를 하거나 명상을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공원 안의 모든 것들이 평화롭고 자유스럽다. 공원 안에서 밖을 보니 고층 건물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공원을 대충 둘러보고 나오니 경찰들로 거리는 삼엄했다.
맨해튼의 야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록펠러센터로 향했다. 록펠러는 누구인가? 석유 사업가이자 자선 사업가로 1800년대 후반 미국 내 95%의 정유소를 거느릴 정도로 엄청난 부를 쌓았던 인물이다. 그는 재계에서 물러난 후 시카고 대학에 수억 달러를 기부하고 록펠러 재단을 세워 자선사업에 몰두했다. 맨해튼의 야경은 록펠러 센터의 중심인 GE 빌딩의 70층 옥상에서 볼 수 있다. 이곳은 탑 오브 더 록(Top of the Rock)으로도 불린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와 함께 맨해튼 최고의 전망대로 꼽히는 곳이다. 1928년 존 D 록펠러 2세가 지은 21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밀집해 있는 록펠러 타운의 중심에 세워진 빌딩이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1층 로비에는 록펠러 가문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 안에는 우주를 연상시키는 영상이 빠른 속도로 펼쳐진다. 1분도 채 안 되어 전망대에 도달한다. 전망대 안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맨해튼의 야경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멀리 허드슨강이 살짝 보이고 주요 건물들의 모습이 눈부시다. 전망대 밖에서 오랫동안 서있기에는 바람이 강하고 춥다.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몇 장 찍는 정도다. 갖고 간 카메라는 무용지물이다. 전망대 앞이 유리로 가로막혀 반영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관람객이 계속 밀려오니 몇 분 동안 자리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다음날에는 자유의 여신상과 월스트리트 그리고 9.11 테러의 현장을 둘러 보기로 했다.
[입력 : 2019-11-16]
김용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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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 여행작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홍보실을 거쳐 중앙일간지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다. 이후 편집회사 헤드컴을 운영하며 국내 공공기관·기업체 사보 등 2000여권의 홍보물을 편집·제작해왔다. 현재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다.